유선아와 그녀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양쪽으로 손목을 잡혀 질질 끌려와 차에 실렸다.
집으로 향해 달려가는 차안에서 두 모녀는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다.
"조용히 좀 해!! 집에 가서 얘기하자."
화를 벌컥 내는 아버지가 무서워 더이상 묻지도 못하고 두 모녀는 집으로 가는 동안 오늘 일어난 일의 원인에 대해 각자 상상을 해야할 따름이었다.
집에 도착하자 아버지는 선아를 소파에 앉히고는 물었다.
"너, 그 녀석하고 언제부터 사귀었냐?"
"...저를 데뷔시켜 주셨어요."
"둘이 깊은 사이냐?"
"아버지..."
"어떤 사이냐고 묻잖아!!"
"그분하고...결혼하기로 약속했어요."
옆에서 엄마가 거든다.
"얘네들 그런 사이 아녜요. 그 사람 점잖은 사람이라던데..."
"아버지, 저 그사람 사랑해요.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거예요?"
아버지는 노기어린 얼굴로 선아와 선아의 엄마를 번갈아 쳐다보며 말을 잇는다.
"그 녀석의 집구석은 마귀의 집안이다."
"???"
아버지는 "그 여편네는!"하고 소리높여 지르더니 잠시 숨을 고르고 목소리를 한 단계 낮추어 말을 이었다.
"그 여편네는 너의 할아버지의 첩이었어."
"네???"
모녀는 깜짝놀라 입을 다물지 못한다.
"너의 할머니는 그 여자때문에 쓰러져 병이 드셨고 그것때문에 돌아가셨다. 나한테는 철천지 원수나 다름없는 여자야. 더러운 화냥년 같으니라구! 너 어쩌다가 그런 화냥년의 자식하고 사귀었냐?! 그 놈은 분명 지 애비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생알거다. 알겠니? 그런 호로자식한테 어떻게 내 딸을 주란 말이야!!!!!?"
선아의 아버지의 목소리가 노발대발하여 천정이 쩌렁하고 울렸다.
"어머....세상에....그런 일이...얘야, 큰일날 뻔 했다."
어머니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선아에게 다행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선아는 충격을 받아 방으로 돌아가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유선아의 아버지 유학선은 지난 일을 한시도 잊을 수가 없었다.
유학선의 아버지는 일찌기 장관을 지냈던 사람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공히 명성있는 가문의 출신으로서 주변 사람들에게 품위와 모범을 보여주던 그런 분들이셨다.
그런 어느 날 화목했던 가정에 변화가 왔다.
아버지의 잦은 외박으로 어머니의 심기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머니는 아버지로부터 전과는 다른 태도를 느끼고는 사람을 시켜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였다.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아버지에게 여자가 생겼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충격을 받고 쓰러져 몸져 누웠다.
그런 어머니를 보고 화가 난 유학선은 아버지의 여자를 만나러 갔다.
아버지와 헤어지라는 말을 하러 간것이었다.
대궐같이 큰 집에서 아라비아 공주처럼 묘한 가운을 걸치고 있던 그 젊은 여자.
청렴하다고 소문난 아버지 곁에서 자기 어머니는 늘 검소하고 묵묵하게 가정을 꾸려오셨는데, 나이가 대학생 정도밖에 안되어보이는 그 어린 여자는 마치 여왕처럼 지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녀를 본 순간 유학선은 분노가 치밀어 대뜸 그녀의 뺨을 때리고 온 집안의 물건들을 집어던지고 박살을 내었다.
그 일이 있고나서 영준의 어머니와 유학선의 아버지는 결별을 하였다.
그때 유학선의 아버지는 영준의 어머니에게 많은 위자료를 지불해야했다.
그리고 쓰러졌던 유학선의 어머니는 불행하게도 풍이 들어 반신불수로 지내다 얼마 후 세상을 떠나셨다.
유학선은 지난 일을 생각하며 다시금 이를 갈았다.
'우리 어머니를 돌아가시게 만든 년, 네 년이 가진 재산은 모두 우리집에서 가져간거지...네 이 놈, 악마의 자식아, 너를 그냥 두지 않겠다, 두고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