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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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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날 사랑 24


BY 제인 2003-11-09

H대학의 봄 축제는 인근 다른 대학들과 동시에 열기때문에 그 일대 전체가 축제 인파로 거리마다 꽉꽉 채워졌다.

사람들은 환한 웃음속에 남녀끼리, 또는 친구들끼리 짝을 지어 돌아다니며 즐거운 초여름을 만끽하였다.

고수는 학교 축제에 초대한 현주를 맞아 미술 전시회장으로 향했다.

두 사람은 축제로 고조된 분위기에 휩싸여 어느새 다정하게 손을 잡고 있었다.

고수의 작품도 끼어있는 디자인 전시회가 열리는 본관에서는 각 층마다 학생들의 작품을 구경하러 온 인파로 붐비었다.

회화과는 3층, 디자인과는 4층, 조소과는 5층...이런 식으로 열리는 이 전시회는 미술계의 큰 행사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중요한 전시회였다.

졸업반 학생들의 우수작품들은 미술 전문잡지에 소개되었고, 그로 인해 그들의 진로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기 때문이다.

고수는 현주와 이야기를 나누며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3층에 올라갔을때 계단을 내려가려는 한 여학생과 마주쳤다.

"어? 선아구나? 너도 이번에 전시하니?"

"응. 오빤 지금 보러오는 거야? 그런데 이제보니 참, 오빠 제대했었구나? 정말 오랫만이다."

고수가 선아랑 오랫만에 마주쳐 인사를 나누기 시작하는데 양복을 말끔하게 입은 젊은 남자가 선아의 뒤에 나타났다.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오빠, 다음에 또 봐."

"그래."

선아는 고수에게 눈웃음을 보내며 그 남자의 팔장을 끼고 계단을 내려갔다.

'맞아....저 사람은 누나가 사랑했다는 그 남자잖아?'

고수는 선아 옆에 있는 그 남자가 층계를 내려가 보이지 않을때까지 계속 내려다보았다.

현주는 고수가 선아의 뒤를 계속 바라보는 줄로 알고 질투가 났다.

"누구예요? 후배?"

"응, 같은 서클 후배였는데..."

"예쁘네요?"

"응, 예쁘지. 학교에서 유명한 애야. 예쁘고, 집안 빵빵하고, 노래도 잘해."

"사귀었었어요?"

"그냥 후배일 뿐이야."

두 사람은 전시회를 구경하고 난 후 해질무렵까지 여러 행사들을 보러 돌아다녔다.

그리고 학교 앞에 나와 이른 저녁을 먹었다.

현주는 고수에게 이웃 U대학교에 가자고 제안했다.

같은 기간에 축제를 하는 그 학교에서 오늘저녁 가요콘서트가 있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그리로 향했다.

U대학은 미연이 졸업한 학교로서 규모가 큰 명문사립대학이었다.

대학들 중 가장 큰 노천극장을 가지고 있었고 축제때면 어김없이 그곳에서 대형 콘서트를 열곤했다.

두 사람은 많은 관객들 사이를 헤치고 노천극장 뒷편에 자리를 잡았다.

고수는 현주를 차가운 나무벤치에 앉힐 수 없어서 가방에서 소형 스케치북을 꺼내 자리에 깔아주었다.

출연하는 가수중에는 한창 잘나가는 인기가수들도 있었고, 젊은이의 축제엔 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중년 가수들도 끼어있었다.

하지만 어느 가수가 나와도 이런 축제콘서트에서는 대환영이었다.

이런 학교 축제 콘서트는 또한 신인가수의 홍보장으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다음 출연할 가수는 바로 얼마전에 데뷔하여 아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유선아씨입니다. 무대로 모시겠습니다."하는 진행자의 안내가 야외극장에 울려퍼졌다.

"어? 선아잖아?"

"아까 학교에서 본 그 여학생?"

"응. 쟤가 언제부터 가수를 했지? 몰랐는데?"

선아는 밝고 신선한 노래를 불렀다.

현주는 그 노래를 알고 있다고 했다.

"아, 저 노래, 요새 인기있는 노래야. 좋죠?"

"그러네? 쟤가 전부터 노래를 잘 불렀었는데, 결국은 가수를 하는구나..."

공연이 끝나고 사람들은 모두 흩어져 내려갔다.

공연이 끝나고 나면 항상 노천극장을 뜨지 않고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남녀 커플들이었다.

조명이 걷힌 컴컴한 노천극장 객석에 띄엄띄엄 앉아 늦은 밤 헤어지기 전에 애정표현을 나누고 싶은 자들이었다.

그중에는 고수와 현주도 끼어있었다.

고수는 현주의 어깨에 자신의 팔을 얹고 현주를 자신에게 기대도록 하였다.

현주는 달콤한 분위기에 마음이 노곤해지는지 고수에게 편안히 기댄채 미소를 띄고 있었다.

"오빠, 그런데...졸업하면 뭐할거예요?"

"취직해야지."

"어디?"

"광고회사같은데..."

"그런데 가면 월급많아?"

"그렇대. 그대신 아주 바쁘대."

"그럼...언제 결혼할 거야?"

"결혼? 난 결혼 안할 건데?"

현주는 자세를 바로 잡으며 고수를 곁눈으로 올려다보며 묻는다.

"왜?"

"그냥....난...독신주의자야. 넌?"

"난 학교 졸업하면 바로 결혼할 건데."

"너 대학나와서 취직안하고 그냥 결혼할 거야? 그럼 대학은 왜 다녀?"

"오빠, 무슨 말이 그래요? 대학은 왜 다니냐니?"

"그렇잖아. 그냥 시집갈 거면 뭐하려고 큰 돈쓰고 공부해? 대학에서 시집 잘가는 법이라도 가르치냐?"

"어머?"

"내 말이 틀렸냐?"

현주는 뾰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고수는 달빛에 비친 현주의 얼굴이 하얗게 윤곽을 드러내자 예쁘다는 생각이 들어 만져보고 싶어졌다.

그는 현주의 어깨를 감싼채 그녀의 얼굴을 잡고 입을 맞추려했다.

순간 현주는 고수의 손을 뿌리치며, "오빠, 하지마!"하고 화를 내었다.

"왜? 싫어....?"하고 고수는 멋적은 듯 물었다.

그러자 현주는 "나 그런 여자 아냐."하며 일어서는 것이었다.

"그런 여자라니?"

"집에 갈래."

"내가 뭐 어쨌는데? 내가 언제 뭐라고 했어?"

현주는 화를 내며 노천극장을 내려갔다.

고수는 그녀의 갑작스러운 변덕에 당황스러웠다.

그는 그녀 뒤로 바짝 쫓아가며 물었다.

"내가 뭘 잘못했어? 왜 그래? 내가 입맞추려고 해서 그래?"

"몰라."

대학 정문 앞에 다다르자 현주는 대기하고 서있는 택시들 중 하나를 잡아타고 떠나버렸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수는 사라져가는 택시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