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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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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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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날 사랑 23


BY 제인 2003-11-09

현주라는 여학생을 집에 데려다 주고 집으로 돌아온 고수는 같이 사는 친구가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을 보더니 옆에다 자기 노트북을 켜놓고 같이 게임을 한다.

두 사람은 저녁 먹을 시간이 지났는데도 게임에 몰두하느라 배고픈 것도 잊는다.

고수와 같이 사는 친구는 고수의 같은 과 친구였는데 벌써 졸업하여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그도 역시 지방출신이라 여의도에 직장을 갖게 된 후 그 근처에 아파트를 하나 전세내어 혼자 살고 있었다.

마침 고수가 군에서 제대하여 자취할 방을 구하는 것을 알고는 남는 방 하나를 그에게 세주었다.

둘이 나란히 앉아 한참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데 갑자기 친구의 컴퓨터가 서면서 캐릭터가 죽어버린다.

"아이, 또 그러네..."

"너 컴퓨터가 너무 후져서 그래."

"아냐 임마, 저쪽 서버가 거지같아서 그런거지."

"아이구, 야, 요새 누가 그런 사양 가지고 게임을 하냐?"

"하긴 이 컴퓨터 산지 오래되긴 했지. 아무래도 이번 월급타면 새로 하나 사야겠다."

"컴퓨터 사러 갈거면 나랑 같이가자. 봐서 할 수 있으면 내가 업그레이드해줄께."

"그래, 그래. 헌데, 이젠 이 게임 더는 못하겠다. 싫증난다."

"난 아직 재미있는데..."

"넌 군대가 있느라 못했지? 난 벌써 이 게임 몇년째야."

둘이서 이런 얘기를 나누다 고수는 언뜻 컴퓨터에 대해 뭔가 할 일이 있었다는 기억이 스쳤다.

"헉! 누나한테 가기로 했는데!"

"누나? 니네 누나한테?"

"아니, 우리 가게에서 일하는 누나. 아이, 오늘 여자만나느라 깜빡했네. 기다린다고 했는데."

고수는 얼른 방을 나가려다 다시 뒤돌아서 책상서랍을 뒤진다.

필요할 만한 소프트웨어들을 챙겨가기 위해서였다.

"나 갔다올께."

"밥은 안먹냐? 너 저녁도 안먹었잖아."

"나중에. 너 먼저 먹어."

고수는 후다닥 달려나와 택시를 잡아탄다.

택시 안에서 얼른 핸드폰을 열고 미연에게 전화한다.

"누나, 나 고수예요. 좀 늦었는데...지금 가고 있거든?"

-"지금? 이제서?"

"응. 한 10분이면 도착할 거 같은데, 어느 정류장에서 들어가야해? 나 택시타고 가고 있어."

-망원동 입구."

"그럼 정류장으로 나와 있을래? 나 집을 모르잖아."

-"그래, 지금 나갈께."

미연은 저녁때가 되어 갑자기 걸려온 고수의 전화를 받고 마중을 나간다.

집에서 10분 거리인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니 마침 고수가 탄 택시가 끽하고 선다.

"누나, 미안...늦게 왔는데, 그래도 괜찮지?"

"바쁘면 다음에 와도 되는데... 왜 그랬어?"

"아이, 컴퓨터 써야할텐데 빨리 고쳐줘야지. 집이 어디야?"

"거의 다 왔어."

미연은 고수를 안내해 집으로 들어갔다.

장미가 나와 고수를 쳐다보더니 꾸벅 인사를 한다.

"어? 누나 딸이야? 인사 잘하네? 이리와봐, 아유 이쁘다."

"아저씨도 이쁘다, 크크크"

"뭐? 하하하...너 이름이 뭐야?"

"한장미."

"귀여워라..."

미연은 먼저 고수에게 저녁을 권한다.

"너, 밥은 먹었니?"

"아니, 아직."

고수는 미연이 차려주는 밥상을 보고 입이 딱 벌어진다.

"와! 진수성찬이네? 누나, 나 줄려고 반찬했어?"

"그래. 시장보고, 고기 재놓고, 나물 무쳐놓고 그랬는데, 뭐 이제야 오니?"

"미안해...여자친구 만나느라고."

"어제 미팅한 여자?"

"음...."

고수는 입에 한가득 밥을 집어넣고 정신없이 먹는다.

그런 고수의 모습을 보고 미연은 안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친구랑 자취한다더니 남자애들끼리 잘 해먹지도 못하고 다니나보구나...'하면서 슬그머니 일어나 냉장고를 열어 새로 무쳐놓은 나물과 고기등을 따로 통에 담아놓는다.

고수는 "잘 먹었어, 누나"하고 인사하며 기운이 나는 얼굴로 싱글거린다.

식탁에서 일어나 고수는 할 일을 찾는다.

"컴퓨터는 뭐가 문젠데?"

"자꾸 서."

두 사람은 컴퓨터 책상에 나란히 앉았다.

"그런데....이게 뭐야?"

"그건 음악 만드는 프로그램이야."

"누나 음악 만들어?"

"아직 초보야."

"한번 들려줘봐."

"창피해."

"한 번 틀어봐~"

"알았어..."

미연은 그동안 만들었던 음악 몇개를 고수에게 들려주었다.

"어? 장난이 아닌데? 이거 다 누나가 작곡한 거야?"

"응."

"햐, 굉장하다."

"아이, 아직 별로 잘 못해..."

고수는 들어본 것 중 하나를 다시 들어본다.

"누나, 이 노래 진짜 좋다. 정말 잘 만들었어. 그런데 여기까지가 다야?"

"아냐. 아직 뒷부분을 못만들었어."

"제목이 뭔데?"

"제목도 아직...안 정했어."

"이 노래 다 만들면 나한테도 들려줘. 아...정말 좋다."

"알았어."

미연은 자기가 만든 음악에 대해 고수가 칭찬을 해주니 마음이 흐믓했다.

고수는 컴퓨터가 자꾸 서는 이유를 찾아준다.

"이거 봐...메모리도 적은데 태스크바에 뭐가 이렇게 많아? 이런 거 다 없애야 해. 그리고 시작프로그램도 웬만한 거 다 지우고, ....누나! 쓰레기통 좀 비워. 지저분하기는?"

"뭐? 참내...호호..."

"인터넷 하면 여기 임시파일도 자주 지우고, 한달에 한 번 정도는 디스크 클린업도 해야해."

"그렇구나."

"누나, 나랑 시간있으면 전자상가에 가자, 메모리 사러."

"...?"

"메모리가 작아서 쓰다보면 자꾸 서는 거야."

"그래?"

고수는 시스템 체크를 하더니 파일들도 깨끗하게 정리해준다.

"누나, 게임은 안해?"

"안 해봤는데."

"이거 함 해봐. 아주 재미있어. 내가 이거 깔아주고 갈테니까 나랑 같이 놀자."

"어떻게?"

"나는 우리집에서 하고 누나는 여기서 하고. 인터넷에서 만나면 돼."

미연은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지만, 미연이 알아듣던 말던 자기 맘대로 게임을 깔아놓고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일러주는 고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알았지? 내가 집에 가서 이따가 전화할테니까, 나랑 같이 놀기다."

"그, 그래..."

고수는 책상에서 일어나 가방을 챙긴다.

"나 갈테니까 이따 전화받어."

"응. 참, 너 이거 가져가."

"뭔데?"

"반찬이야. 가져가서 먹어."

고수는 조금 놀라와하고 또 고마와했다.

"잘 먹을께."

싱글벙글거리며 고수는 계단을 성큼 뛰듯 내려갔다.

미연은 고수의 천진하고도 조금은 제멋대로인 그런 행동에서 세대차이같은 것을 느꼈지만, 그를 보면 늘 재미있고 즐거웠다.

장미를 재우고 다시 컴퓨터에 앉아 뭐가 달라졌나 하고 살펴보고 있으려니 고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누나, 나야."

"응, 그래."

-"내가 아까 하라는 대로 해. 데스트 탑에 있는 아이콘 누르고...들어갔지? 아이디랑 패스워드 넣고 조인해봐."

"그래."

-"음...됐다. 거기 서있는 애 보이지? 그거 나니까 잘 쫓아다녀. 첨이니까 그냥 쫓아다니면서 구경만 해."

"그래."

전화를 끊고 미연은 고수의 캐릭터를 졸졸 쫓아다니며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구경했다.

칼로 찌르고 활을 쏘며 괴물들을 죽이는 게임이 잔인하긴 했지만 구경하다보니 재미가 있어 게임에 몰두하게 되었다.

이후로 두 사람은 종종 그렇게 인터넷으로 만나 함께 게임을 하고 놀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