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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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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날 사랑 18


BY 제인 2003-11-07

영준은 미연의 집으로 전화를 했다.

몇일을 계속 전화를 해봤지만 전화벨만 계속 울렸다.

미연의 집근처로 가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집이 어딘지 몰라 헤메기만 할 뿐이었다.

처음 만나 밤을 지낸 뒤 그녀를 태우고 올라와 내려주었던 그곳은 한적한 동네 어귀 어느 곳이었다.

그 다음부터는 그녀가 원하는 대로 혼자 귀가하도록 해주었었다.

'집이라도 알아두었으면 집으로 찾아가 이야기를 해볼텐데...'하며 진작에 집을 알아두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였다.

학교로 찾아가보기로 하였다.

학과 사무실로 가서 조교에게 물었다.

"김미연씨 집주소 좀 알 수 있을까요?"

"어떤 관계이신가요?"

"그냥...친군데요...꼭 만나야하는데 연락이 안되어서요..."

"가족관계가 아니시라면 저희는 그런 정보 드릴 수가 없는데요."

"꼭 만나야하는데, 알려주시면 안될까요?"

"글쎄...안되겠는데요."

"그럼 수업시간이라도 좀 알려주시겠어요?"

"김미연씨가 몇학기죠?"하며 조교는 대학원 세미나 스케줄을 들쳐보았다.

"2학기생인데요."

"아...마침 지금 수업중인데요.....한 시간 있으면 끝나요. 상경관 303호 강의실인데 기다려보시던지요."

"네, 고맙습니다."

영준은 상경대 건물 앞에 서서 미연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한 시간이 지나자 건물 안에서 학생들이 계단을 따라 내려오기 시작했다.

진희의 모습이 보였다.

그 옆에 미연의 모습이 있나 살펴보았지만 미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두 나와 학교 정문밖으로 사라질때까지 계속 서서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미연은 거기에 없었다.

영준은 마지막으로 명민에게 물어보기로 하였다.

명민은 미연과 가까운 편이니까 무슨 소식이라도 알고 있을지 몰라서였다.

명민이 기거하고 있는 학교 뒤 고시원 하숙방으로 찾아갔다.

책을 들척이고 있던 명민은 영준이 방문을 두드리고 들어오자 "어? 너 여기 웬일이야?"하고 묻는다.

"응, 그냥 지나던 길에 들렀어. 고시 준비는 잘 되고?"

"아이구 모르겠다, 나두..."

"열심히 해."

영준은 바로 미연에 관해 물어보기가 멋적어 공연히 딴 소리를 하면서 방안을 두리번거렸다.

허름한 하숙방 벽에 양복 한 벌이 세탁소 비닐에 쌓인 채 걸려 있었다.

"웬 양복이야? 어디 결혼식이라도 가냐?"

"응. 내일 친구 결혼식이야."

"누구?"

"진희. 너두 알지? 경영대학원 다니는 애."

순간 영준은 눈 앞이 캄캄해졌다.

"누, 누구하고?"

"누구긴 누구야, 미연이지."

"내일 결혼을 한단말야?!"

"에그, 그것들이 사고를 쳤잖아, 글쎄. 배불러지기 전에 한다고 무지 서둘러하는가봐, 자식들."

영준은 정신이 아찔해서 쓰러질 것만 같았다.

"너도 시간있으면 내일 같이 가자. 급하게 하느라 청첩장도 제대로 못돌렸다던데...친구들끼리 서로 연락해서 가주기로 했거든. 가서 애들 만나서 밥이나 한끼 같이 먹자."

"어...그, 그래...어딘데?"

"강남에 있는 환상예식장. 몇시더라...? 아, 2시다."

"2시....그래, 그럼 봐서 가보지 뭐."

 

다음날 영준은 미연의 결혼식장으로 갔다.

가슴이 쓰려서 자기도 모르게 씩씩거리며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다.

사람들은 예식홀에 시간맞춰 도착하려고 바쁘게 건물안으로 걸어들어가고 있었다.

영준은 차마 건물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건물밖 담벼락에 기대서서 멍하니 먼 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한시간....두시간...시간이 흘렀다.

영준의 얼굴은 차가운 겨울 날씨에 푸르스름하게 얼어버렸다.

젊은 남녀들이 몰려나오는 소리가 왁자지껄하게 들려왔다.

때를 맞춰 예식장 입구 앞에 신혼부부를 데리고 갈 승용차가 와서 섰다.

영준은 몸을 건물 옆에 바싹 붙여 숨기고 미연이 나오나하고 엿보았다.

웃음소리 가득한 남녀 일행들 속에 끼어 미연과 진희가 나왔다.

미연의 얼굴이 보였다.

야윈 얼굴에 눈물이 범벅이 되어있는 것이 멀리서도 보였다.

아직도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 계속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있었다.

옆에 서서 미연을 붙들고 있던 미연의 엄마는 "얘, 그만 울어라. 아이고, 아들을 낳으려나, 왜 이리 울어?"하며 웃음띤 목소리로 꾸짖었다.

신랑 신부가 오른 그 차는 친구와 친지들의 손인사속에 멀리 사라져갔다.

 

영준은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일이 현실로 자기 눈앞에서 정말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하객들이 모두 떠나 잠잠해진 후에야 그는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는 예식장 건물을 떠나 혼자서 정신없이 길을 걸었다.

미연의 눈물로 얼룩진 얼굴이 눈앞에서 계속 아른거렸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계속 걷다보니 어느새 날은 어둑해지고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눈이 영준의 머리에 쌓이기 시작했다.

어깨위에도, 코끝에도, 차갑게 쌓였다.

한참을 걷다가 문득 스텐드바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데나 덜썩 앉아 술을 시켰다.

평소에 술을 잘 마시지 않아 양주 한잔이면 취할 것을 그는 연거푸 여러잔을 마셨다.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기운이 뜨겁게 올라 기운이 빠져버린 고개를 두 팔에 푹 떨구고 앉아 눈물을 뚝뚝 흘렸다.

한참을 그러고 있었더니 웨이터가 그를 깨우려고 어깨를 흔들었다.

영준은 괴로운 듯 일어서서 돈을 내고 나와 다시 걸었다.

취해서 비틀거리며 집까지 계속 걸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자정이 넘어서였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집안의 더운공기가 영준의 차가운 얼굴에 확 스쳤다.

순간 영준은 정신을 잃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