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817

다시 만날 사랑 11


BY 제인 2003-11-03

박영준은 나이 겨우 서른 둘의 젊은 남자이지만 여지껏 만나는 여자가 없었다.

특히나 이런 연예계에서 잘생긴 여자들을 숱하게 많이 보아왔지만, 연애 감정을 느끼게 한 여자는 하나도 없었다.

영준은 회사일에 헌신하느라 그동안 여자를 여자로 생각할 틈도 없었다.

5년 전 작은 음반사를 차려놓고 지금의 중형음반사로 키워오기까지 거의 낮밤을 가리지 않고, 어떤 때는 거의 잠도 못자고 일을 해왔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에게는 가슴 아픈 실연의 상처가 있었다.

그것이 영준으로 하여금 무의식적으로 더욱더 여자들에게 무심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선아에게 야릇한 감정이 솟아남을 느꼈다.

정말 오랫만에 느끼는 연애감정이었다.

 

선아는 젊고 잘 생긴 사장님이 자신에게 호감이 있으나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갈수록 그에게 끌리고 있다는 것을 그녀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천진난만한 성격의 그녀는 레코딩 작업이 끝나면 영준에게 자주 데이트 신청을 하였다.

영준은 바쁘지 않은 시간이라면 언제라도 나가 주었고 점점 두 사람의 사이는 연인처럼 가까와져 갔다.

두 사람은 선아가 다니는 H대학 앞을 자주 돌아다녔고, 특히 미래클럽에는 자주 들르곤 했다.

 

 

한편 미연은 미래클럽을 그만두었다.

미래도 기쁜 마음으로 미연을 보내주었다.

미연이 일류대학까지 나와 이런 험한 일을 해온 것이 늘 마음에 걸렸었다.

다른 일을 소개해 준 적이 있기는 했지만 미연은 라이브 음악을 들으며 일하는 것이 너무나 좋다며 그만두려하지를 않았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새해가 들어서자 아이 핑계를 대며 그만두는 것이었다.

일을 그만두는 날, 미래는 미연에게 많은 액수의 퇴직금을 마련해 주었다.

"이거 너무 많다. 이러지마."

"너 이거 거절하면 절교할 줄 알아."

"그래도...반만 줘라, 얘."

"나 돈 많아. 돈 많은 사람한테는 이런 거 다 껌깞이야. 우리 대학 다닐때...나 돈 없어서 수업료도 못내서 쩔쩔매고 있을때...네가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서 내 수업료 내줬었지? 네가 그때 안도와줬으면 나 학교도 졸업 못했어. 그거 액수로는 이것에 비하면 몇 푼 아니었지. 하지만 이 돈의 몇 배, 몇 백배 가치가 있는 돈이었어. 너...내가 너 지금 어려운 거 아는데, 이 정도 도와주는 거 가지고 자꾸 뭐라고 하면, 네가 나를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 걸로 밖엔 안보여."

"이그, 말도 많다. 알았어, 알았어. 고마와."

"그런데, 이제 뭐 하려고? 다른 직장 구해놓은 거라도 있어?"

"아니...글쎄 잘 모르겠어."

"내가 하는 일이 이래서 너한테 도움이 별로 못되는 구나. 아예 너를 위해 회사 하나 차릴까?"

"회사 같은데 다니고 싶은 맘, 없는 거 알잖아. 그리고 집하고 먼 데로 출퇴근 하는 거 싫거든. 일을 해도 집 가까운데서 해야 장미한테 무슨 일 있으면 달려가지. 이제 곧 장미, 학교에 들어가잖아. 저녁시간에 되도록 일찍 들어가서 장미랑 저녁도 먹고 숙제도 봐주고  같이 놀아주고 그러고 싶어. 그런 거 다 맞춰 줄 일자리가 있을까 모르겠지만...일단 좀 쉬었다가 천천히 알아봐야지."

"그래, 일단 좀 쉬는 게 좋겠다. 그동안 너무 고생했으니."

"그리고 살아보니까, 생활비도 별로 안들더라? 이상하지? 전에는 왜 그렇게 돈이 많이 들었나 몰라...?"

"구색 맞추고 살려면 그렇지 뭐. 지금 너 보면 옷도 변변히 안해입는 거 같은데...사실 그렇게 아끼고 살면 생활비 들게 뭐 있겠니?"

"맞아. 욕심을 버리면 오히려 그게 더 편한 건가봐. 사고 싶은 거 없고, 꾸미고 싶은 맘도 없고 하니까 돈 들 일이 없어."

미래는 미연이 이야기 하는 걸 보며 '얘가 고생을 해보더니 철이 엄청 들었나보다'하는 생각을 한다.

미연은 정말 많이 달라져 있었다.

자랄때는 잘사는 편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결혼 후에는 명문대학을 나와 일류 대기업에 다니던 남편의 월급으로 남부럽지 않은 넉넉한 생활을 했었다.

한두달에 한번 씩은 꼭꼭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하고, 철마다 새로운 유행의 옷과 악세사리를 사러 쇼핑을 다녔던 그녀였다.

헌데 이혼 한 후 미연은 한 번도 미장원에를 간 적이 없었다.

생머리 그대로를 계속 길러 머리가 무척 길어졌다.

옷이나 화장품도 저가품만 사서 썼다.

그 흔한 명품 가방이나 브랜드 옷 한 벌 사지를 않았다.

월급을 받으면 생활비 빼곤 낭비하는 일 없이 모두 꼬박꼬박 저축을 하였다.

 

미연은 미래에게서 받은 퇴직금으로 전세를 하나 얻기로 하였다.

언니와 조카들이 엄마 집에 들어온 후 나갈 생각이 없는 지 두달 가까이 계속 머물고 있었다.

형부는 어디에서 뭘 하는지 연락도 없었다.

언니는 말을 하지 않고 있지만 두 사람은 이미 갈라선 것 같은 눈치였다.

친정 생활은 말이 아니었다.

장미는 사촌들과 어울려 노는 재미에 신이 났지만, 비좁은 공간에서 여러명이 계속 이렇게 부대끼고 살 수는 없었다.

부동산 중개소를 찾아갔더니 마침 친정과 가까운 곳에 값싼 다가구 주택이 나와있었다.

방 한칸의 작은 집이었지만 그런대로 살만한 곳이었다.

작은 욕실과 부엌이 실내에 딸려있어 생활하기 전혀 불편함이 없어보였다.

미연은 곧 그 집으로 이사를 했다.

이사한 첫날밤, 정말 오랫만에 장미와 단 둘이 꼭 끌어안고 잠을 잤다.

미연은 그리고 나서 한동안 집에서 푹 쉬었다.

그동안 참으로 힘들었다.

손가락들은 잦은 물일로 다 갈라지고 굳어 있었다.

손등과 손바닥은 나무껍질처럼 거칠거렸다.

앳띠고 예쁜 얼굴과는 달리 손은 숨김없이 그녀의 고된 삶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느새 1월이 지나 2월로 접어들었는데, 일할 곳을 찾으러 다녔지만 마땅한 곳이 없었다.

마음이 조금씩 초조해지고 있는데 2월 중반 쯤 되었을때 미래에게서 전화가 왔다.

"미연아, 너 요새 뭐해? 일자리는 구했어?"

"아니, 아직."

"그럼 시간 많지? 오늘 오랫만에 우리 가게에 놀러와. 나 오늘 잠깐 시간이 나서 들를려고 하는데, 와서 같이 차나 한잔 하자."

"그래"

미연은 오후 약속 시간에 맞춰 미래클럽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정류장에서 내려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맞은 편에 전에 없었던 선물가게가 보였다.

'사람구함'이라는 사인이 문에 걸려있었다.

미연은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가게에는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여학생이 있었다.

"여기 사람 구하나요?"

"네."

"주인 계세요?"

"아뇨, 지금 외국 나가셨는데 2주 후에나 오시거든요. 일단 여기에다 성함하고 연락처 적어놓고 가시면 돌아오셔서 연락드릴 거예요."

미연은 여학생이 준 종이에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주고 미래를 만나러 갔다.

 

3월초에 그 선물가게에서 연락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