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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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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날 사랑 5


BY 제인 2003-11-02

"이혼을 해주겠다니? 내가 지금 당신한테 이혼해달라고 매달리고 있는 거야?"

"당신이 바라는 대로 다 해주겠다는 거야. 위자료 달라면 줄께, 얼만지 얘기해."

"위자료 얘기는 왜해? 내가 지금 돈바라고 이러는 거야?"

"그럼 뭐야? 이혼 얘기는 당신이 먼저 꺼냈잖아!"

"아니, 세상에....말 한마디 꺼냈다고, 그게 꼭 그렇게 하자는 거야? 당신, 지금 우리집안 꼴 좀 봐. 당신 왜 그래? 왜 그러는지 얘기좀 해봐...당신....나....싫어져서 그래? 응?"

"......."

"나 미워서, 그래서 지금 시위하는 거야?"

"그래. 누가 너 좀 데리고 가줬으면 좋겠다."

그 소리에 미연은 눈물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코가 매워져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였다.

남편은 상의를 집어들며 "이혼 수속 시작하자."는 말을 남기고는 집을 나가버렸다.

그리고는 계속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몇일 후 변호사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합의 이혼 서류를 준비중이니 사무실로 나와달라는 것이었다.

미연은 충격으로 머리가 띵하고 아파왔다.

아무리 먼저 이혼 얘기를 미연이 먼저 꺼냈지만, 그건 정말로 이혼을 하겠다기보다는 진지하게 지금의 결혼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자는 뜻이었다.

그런데 남편은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벌써 저만큼 앞서 진행을 하고 있었다.

미연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남편이 장난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남편이 벌써 몇일째 외박을 하고 있었지만 미연은 그가 몇일 친구집에 머물며 머리를 식히고 있나보나 싶어 그가 제발로 돌아올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변호사 사무실로부터 전화를 받고나니 더 이상은 가만히 앉아 기다릴 수가 없었다.

미연은 떨리는 손을 애써 진정하며 남편의 사무실로 전화를 하였다.

"주식회사 정영 인사과의 김영구입니다.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한진희씨좀 부탁합니다."

"....어디신가요?"

"여기 집인데요."

"엇....저....잠시만요."

전화를 바꾸는 소리가 저쪽에서 들리는가 싶더니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진희씨 부인되십니까?"

"예, 한진희씨 지금 자리에 안계시나요?"

"저....한진희씨 회사 그만두셨거든요..."

"네??? 언제요?"

"벌써 세 달은 된 거 같은데...집에서 아무 말 안했나보군요?"

"세, 세 달이요? 아니요, 아무 말 없어서....몰랐는데...어머...."

"죄송합니다. 지난 분기에 구조조정이 있었는데...."

"어떻게 그럴수가..."

"죄송합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네, 몸조심 하십시요."

미연은 정신이 멍해졌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 그냥 소파에 걸터 앉아 꼼짝할 수가 없었다.

십여분 지났을 때 밖에서 문두드리는 소리가 아련히 들리기 시작했다.

미연은 휘청거리며 일어나 문밖에 대고 소리쳤다.

"누구세요?"

"나야!"

남편의 누나의 목소리였다.

미연은 기운이 빠진 손으로 잠금쇠를 힘들여 돌리고는 손잡이에 자신의 무게를 담아 몸을 지탱하였다.

그런데 문을 바깥에서 힘차게 잡아당기는 바람에 몸이 바깥으로 딸려나가 넘어질 뻔 하였다.

문 밖에 서있던 남편의 누나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하는 사람이야? 뭐하고 있었어? 낮잠잤어? 초인종을 아무리 눌러도 안나온다 했더니..."

"어쩐 일이세요?"

비실거리며 쫓아들어가는 미연을 남편의 누나는 큰소리로 다시 나무라기 시작한다.

"이봐 올케, 지금 뭐 하는거야? 남편이 며칠씩 집에도 안들어오고 있는데, 어쩜 찾을 생각도 안해? 그리고 뭐? 이혼한다고? 남편 직장에서 떨려나니까 아주 신이 나서 이혼하자고 들었다며?"

"고모...그게 아니라..."

"사람 정말 잘못봤네? 어떻게 인간이 그럴 수가 있어? 지금 진희 꼴 좀 봐. 세상에...직장 짤리고, 이혼당하고....아휴, 정말 못봐주겠어!"

고모는 얼굴이 시뻘개져서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악을 썼다.

미연은 억울하여 울음섞인 목소리로 대꾸했다.

"고모, 전 몰랐어요. 이혼 얘기는 그래서 나온 게 아니구요..."

"그래서 나온 게 아니면 뭐야? 왜 잘 살다가 갑자기 이혼얘기가 나와?"

"누가 그래요? 진희씨가 그래요?"

"그럼 누가 그러겠어? 지금 진희 꼴이 어떤지나 알아? 얼마나 술을 마셨는지 곤드레 만드레가 되어서 새벽에 들어왔는데, 세상에 머리는 산발에다가, 알고보니 몇일씩 집에도 안들어갔다니...아니 이게 무슨 일이냐구?"

"거기 가서 그러던가요? 제가 진희씨 직장 짤린 것 때문에 이혼하자고 했다고요? 저요, 직장일 오늘에서야 알았어요."

"무어?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거야? 아니, 안 사람이 되어가지고 남편이 직장 그만둔 걸 몇달이 되도록 몰랐다니, 뭐한 거야, 그럼? 정신을 어따 쓰고 다녔길래? 뭐, 바람이라도 난거야? 엉?"

"???"

미연은 고모가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심하게 몰아붙이는 것이 억울하였다.

어떻게 대꾸를 해야 할지 몰랐다.

숨만 거칠게 씩씩거리다 소파에서 일어나 겉옷을 챙겼다.

"어딜가는 거야?"

"장미 데리러 갈 시간예요. 잠깐 계세요."

"장미? 그래, 장미는 어쩔거야? 이혼하면 장미는 어쩔거냐고?"

"누가 이혼을 한다고 그래요?"

미연은 신경질적으로 대답하고는 현관문을 쿵 닫고 나가버렸다.

미연은 장미가 다니는 동네 유치원까지 제정신이 아닌 듯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나한테 어떻게 그렇게 아무 말도 안하고...'

얼마전 미연이 학교 얘기를 꺼냈을 때 남편은 이미 실직 상태였던 것이었다.

그 상태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으니 화가 그렇게 났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자 남편에게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매일 아침 출근하듯 나갔다 지친 몸으로 들어오던 남편.

도대체 어디서 무얼하고 다녔단 말인가.

그리고 아내인 자기에게는 왜 아무 이야기를 안했던 것일까.

초라한 자신의 무게를 느낀다.

'나는 그 남자한테 아무 것도 아니었단 말인가? 아무런 의논 상대도 아니고, 마음을 나눌 가치도 없는...그냥 그런 남이었을 뿐이란 말인가?'

노란 유치원 모자를 쓰고 달려나오는 장미의 모습이 눈에 띄자 미연은 서러움이 울컥하고 솟아 눈물을 쏟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