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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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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그 끈을 놓다 1-6


BY 푸른배경 2003-10-10

  "그래. 너 말대로 지난 일이야. 하지만 너가 누구의 여자였다는 걸 내가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잖아."
  "상관없다며. 지난 일 다 상관없다며....."
  "내 머리속에서 잊혀져야 상관없는 일이지. 지워지지 않는 데 어떻게 상관이없어. 네 얼굴만 보면 정환이 그 재수없는 자식의 얼굴이 떠어르는 데 어떻게 상관이 없어."
  "나쁜놈."
  "뭐. 나쁜놈. 그래 이렇게 꿈을 찾아서 떠나겠다는 사람 붙잡는 넌? 너는? 좋은 년이냐?"
  헉, 속으로 채원은 괴로워했다. 너무 심한 말까지 던진 것이 후회스러웠지만 그래도 하던말을 멈추지 않고 계속 내뱉었다.
  "채원과의 잠자리를 넌 잊었어? 잊었냐고?"
  "너무 치사하고 유치하게 나오는 거 아냐? 이 나쁜 새끼야."
  "그래 그러면 그렇지 순진한 척하더니 입에 욕을 끝내 다는구나! 달어!"
  병실 밖에서 부르르 떨던 소영의 어머니는 손에 쥔 음료수 캔을 꽈악쥐며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문을 벌컥 열며 소리를 질렀다.
  "너희 지금 모하는 거야? 너희만 이 병원에 있어? 상스러운 말이 왜 오고가야 하는 데? 어?"
  소영은 고개를 숙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고, 채원은 다시 등을 돌려 창 밖을 보며 말을 꺼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무슨 어머니. 내가 밖에서 듣자하니 헤어지자며? 그러면 우리 딸과의 인연도 끊긴 것인데. 무슨 어머니? 그리고 소영아! 너 왜이리 사람이 독해졌어? 채원이 말 못 들었어? 꿈이 있다잖아. 호주에가서 공부하고 돌아온다잖아."
  "흑흑흑....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인데. 호주에 갔다가 돌아오면 다시 나한테 돌아온데? 그게 아니잖아."
  말을 끝내며 엄마 품으로 얼굴을 묻고 울었고, 어머니는 등을 쓰다듬으며 다독였다.
  "그것은 아니지만. 사랑은 잡아두는 집착이 아니야. 그 사람의 행복이 거기있다는 데 왜 잡아둬.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구. 어?"
  '한 달. 그래 한 달.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데, 채원이도 그렇게 멀리 가있는 것이 낳을 것이야. 그래야 소영이의 비보도 듣지 않을 것이고. 그래. 저렇게 떠나게 하는 게 낳은 거야. 이 바보야. 넌 얼마 남지 않았는 데....., 그 짐을 채원이에게까지 주고 가는 것도 무심한 것이잖아. 다행인 것이라고 지금이라도 그 마음을 정리한다는 것이.....' 머리로 그리고 가슴으로 생각을 소영의 어머니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보내지 않겠다고 우기는 소영의 얼굴을 한 대 때리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죄송합니다. 어머니."
  "채원아. 죄송할 것도 없고, 소영이와의 연이 여기까지인가 보구나! 그만 나가 주겠니!"
  아주 차거운 투였다. 그 속에는 채원에게 남을지 모를 미련의 싹을 두지 않는 것이 좋다는 생각도 담겨있었다.
  "가긴 어딜가. 나를 두고 어딜 가냐구? 흑흑흑...."
  "네. 저도 이러고 싶지는 않았지만......"
  채원은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옷걸이에서 베이지색 외투를 집어들며 나가려는 채원에게 눈물을 닦아며 한츰 가라앉고 침착한 어조로 소영이가 입을 열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만 할게."
  "뭔데?"
  "나를 잊지는 말아줘. 다른 사람과 결혼하더라도 나를 기억해 달란 말야."
  "왜? 내가 너를 계속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데. 인연이 끝나서 헤어짐이 왔다면 지난 것은 모두 잊혀지는 거야. 설령 잊혀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잊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고. 마지막까지 힘들게 잡지말라고. 이럴 수 밖에 없는 나도 힘들어. 제발, 사랑이 그런 것이 아니잖아. "
  "사랑? 이렇게 나를 떠나겠다는 사람의 입에서 그런말이 나와? 나오냐구."
  "그래. 내 인간성이 그만큼 밖에 안된다. 미안하다. 미안해."
  채원은 축 늘어진 어깨를 보이며 돌아섰고, 소영은 어머니의 품에서 떨어져 침대에 누으며 이불을 머리까지 올리고는 한없이 울기 시작했다.
  이제서야 링거줄에 피가 고인 것을 본 어머니는 간호사를 부르러 병실문을 나가 간호사에게 갔다.
  병원 밖으로 나온 채원은 연신 입으로 속삭였다.
  "미안하다. 그래 잊지는 않을게......."
  그 쓸쓸한 발걸음을, 그리고 지난 시간의 흔적을 지우려는 듯 떨어진 낙엽들이 쌓였다. 그리고 채원의 모습은 결국 한 점으로 사라져 갔다. 소영이의 슬픈 눈물만 남겨둔 이 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