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간호사가 소영의 어머니를 찾았고, 뒤를 따라간 어머니에게 김박사가 담배를 입에 물고는 숙연한 표정으로 맞았다. 하지만 고민을 하는 김박사의 모습이 역력하였지만 한두번 사람의 죽음을 알린 것이 아니기에 마음에 준비를 다시 가다듬어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네......"
이제 올 것이 온 것인가? 소영이가 쓰러지던 그 날부터 마음의 준비를 철저히 하겠다고 다짐한 어머니이지만 막상 이렇게 의사 앞에 서있자니 다리가 후들거리고, 가슴의 심박수는 가빠르게 상승을 했다.
"글세. 환자의 애인이 제 친구의 아들놈이더군요. 아시죠? 채원이라고."
"아?.... 그래요."
"네. 그러게 사람의 인연이란게 어떻게 어디서 연결지어질지 모르는 일이라구요. 그래서 요즘 환자에게 더 관심이 가더군요."
"고맙습니다."
"의사라는 직업이 어느 한 사람에게만 치중하면 안되지만, 의사도 사람인지라 팔은 안으로 굽는법 아니겠어요? 그래서 말인데...."
"네. 말씀하세요."
"제가 뵙자고 한 것은 다름이 아니오라 삼장이식이 없으면 한 달정도 밖에 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철렁. 가슴이 내려앉았다. 준비하고 준비된 마음이지만 막상 귀로 확인을 하는 순간 지금껏 알고있던 딸의 상태를.... 모든 것은 믿지 못하겠다는 마음뿐이다. 그리고는 눈물을 흘렸다. 아주 짧은 시간동안.... 그 흔적을 지우며 다시 마음을 가다듬어 입을 열었다.
"방법은 없는 것인가요?"
"말씀 드렸지만, 심장이식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소영씨와 같은 조직의 심장은 찾았지만 같은 조직의 환자가 더 있었습니다. 전 이희원 박사가 말했지만 그 환자 다음 순번으로 정해졌기에 어쩔 수가 없더군요."
"선생님. 그럼 어떡해야하나요? 제 심장이라도 줄 수만 있다면...."
말을 마무리 하지 못하고 다시 눈물을 흘리고 말았고, 김박사는 담배를 비벼끄고는 한 모금의 녹차를 마셨다. 그리고는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건넸다.
"어머니의 마음이 모두 같겠지만, 조직 또한 같지 않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혹시 기적이라도 일어나서 장기 기증자가 극적으로 나타날 지도 모르구요.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기도드리라는 말 밖에 하지 못하겠군요."
"기도로 살릴 수만 있다면 저는 잠도 자지 않고 기도만 드릴테지만, 이 순간순간이 딸에게는 죽음의 문턱으로 다가가는 것이잖아요. 흑흑흑."
"죄송합니다. 저도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조금씩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것이 좋을 듯 싶어서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
김박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라졌고, 한참을 그 자리에 있다가 일어나 세수를 하고는 다시 밝은 얼굴로 딸의 병실문을 열고 들어갔다.
3일이 지난 오후 3시 30분쯤 채원의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이채원입니다."
"아버지다. 너 지금 바쁘냐?"
"아뇨. 30분 후에 프리젠테이션 시작이니깐. 지금은 괜찮아요."
"그래. 그럼 오늘 늦게 끝나니."
"왜요."
"응. 너하고 할 이야기가 있다. 시간 괜찮으면 청담동에서 저녁이나 같이했음 하는 데."
"한 8시 정도면 될 것 같은 데. 너무 늦지 않을까요?
"그 시간 정도면 적당하겠구나. 그럼 있다가 청담동 솔가에서 보자꾸나."
"네"
쵸코릿에 대한 카피를 쓰느라 3일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한 채원에게 아버지의 전화는 뜬금 없었지만, 오늘 일이 마무리되는 것이라 오랜만에 아버지와 술자리를 가져야겠다고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