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 - 5>
폭포처럼 쏟아지는 도준의 말을 듣고 있는 내내 우석은 자신을 괴롭히는 어떤 생각 하나로부터 계속 발목을 잡혀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바로 아련과 도준의 관계가 어느 선까지 진전 되었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우석은 중간중간 도준의 말을 자르기도 하였으나 도준은 연신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을 토해 내기에 급급해 있었다. 물론 우석이 보다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기로 작정을 하였다면 단 번에 답을 얻어 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석은 차마 그렇게까지는 할 수가 없었다. 자꾸만 되풀이 해서 확인하려는 자신이 도준 앞에서 너무도 못나 보일 것 같았고 그런 못난 모습은 결국 도준이 하는 말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도준이 말하는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대충 두 사람의 관계를 미루어 짐작할 것도 같았기 때문이었다.
우석은 어느 정도 체념하려는 자신을 보면서 역시 한계를 느꼈다. 어떤 가치를 뛰어 넘을 수 없는 자신의 사랑. 그것이 자신의 한계였던 것이다. 만약 두 사람의 관계가 정말 자신의 상상만큼 진전된 것이라면 우석은 더 이상 아련을 만나서 자신과의 감정을 확인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역시 제대로 된 가정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은 정숙한 여인으로 성장할 수가 없는 것이군! 역시 아련이와 난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기엔 너무나 다른 세상에 존재하고 있었어.' 하는 생각의 틀 속에 갇힌 자신의 모습도 함께 보았던 것이다. 그 한계는 분명 부끄러움으로 우석을 괴롭게 했다.
그리고 도준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바로 자신의 그런 이기적인 사랑을 질책하는 것이었기에 우석은 제대로 한 번 반박하지도 못한 채 그렇게 깊은 혼돈 속으로 빠져 들고 말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