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그렇게 춥던 겨울을 계속 자리를 보전하고 계셨다.
잠깐씩 정신이 드실때면 누군가 찾는듯 하셨고 이내 슬픈표정과 기쁜표정이 교차되시는 듯 했다. 그녀는 그런 어머니의 표정 속에서 이승과 저승의 징검다리를 교대로 건너는
듯 가슴이 메어옴을 느끼며, 한없는 자괴감에 몸부림 쳤다.
어느새 돌이켜 보면 여자로서 아름다운 신혼을 몽땅 빼앗겨버린 그녀는 세월의 덧없음을
어머니의 모습 안에서 이미 찾아버리고 앞으로의 남은 생에 대한 희망이나 용기,애착등...
조차도 그녀 자신의 것이 아님으로 깨닫고 받아 들이고 있는듯 했다.
"그래, 인생이란 별것도 아니야, 그냥 주어진대로 그냥 그렇게 살다가 가면 되는 거야"
그녀는 지극히 소극적인 삶을 단순히 받아들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그럭 저럭 아이들의 겨울 방학이 끝나갈 무렵 어머니는 마지막 고비를 힘겹게 넘고계셨다.
"엄마? 엄마 저왔어요,"작은 고모는 마치 어머니가 아무일도 없으신것 처럼 방안으로
들어서며 어머니를 반갑게 부르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무런 반응 을 보이지 않고 허옇게 눈을 뜨신채 이미 돌아가신모양 이었다.
"엄마, 엄마?.... 엄마,,.........."
이미 어머니의 사망은 예견되어 있었지만 막상 돌아가시고 보니 여간 황당한일이 아닐수 없었다.
" 야, 우영아, 우영아 이리 들어와봐. 엄마가 언제 이렇게 되신거냐?"
그녀는 빨래를 널다 고모의 호들갑에약간 짜증이 나는듯 했으나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방안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어머니를 방금 씻겨 드리고 그것들을 빨고 있는 사이 어머니는 이승에서의 인연을
말끔히 정리 하신것 이었다.
그녀는 쓰러질듯 현기증이 났다.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
아무런 반응이 없는 어머니를 흔들며 그녀는 오열 하기 시작 했다.
"어머니 저만 두고 어딜 가시는 거예요. 어머니 저도 데려가 주시기로 약속 했잖아요."
그녀는 마치 천둥치는하늘 마냥 그렇게....... 그렇게 오열하고 있었다.
고모는 그런 그녀를 감싸며 "어떻게 어떻게" 만 연거푸 쏟아내었다.
어머니의 모습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순수 했으나 뭔가 미련은 남아 있는듯 한편으로
지극히 슬픈 모습이기도 했다.
한집안의 딸로 태어나 한남자의 아내로출가하여 9남매를 생산하시고 그중에 3남매를 간신히 건지신 어머니는 당신의 삶을 어떻게 생각 하시며 사셨을까?
그리고 장성한 아들을 잃을때는 어떤 심경이셨을까?
그 아들의 자식인 손주를 떠나 보낼때는 또 어떤 심정이셨을까?
남은 아들의 두집살림에 그아들 조차 곁에 두지 못하고 마음으로만 품어야 하실땐 어떤 심정으로 지내셨을까?
만감이 교차하는듯 그녀는 마치 어머니가 된것 처럼 어머니의 일생을 한통의 필름을
순식간에 돌리듯 그렇게 어머니를 생각하며 뜨거운 눈물을 한없이 흘리고 있었다.
" 어머니 ,어머니 이제 저는 어떻게 살아요. 어머니 조차 안계시면 저는 누구를 의지
하고 살아요. 어머니 저만 두고 가시면 어떻게 하나요, 어머니 저도 데려가 주세요."
그녀는 삶에대한 모든 것이 벽에 부딪친듯 머리속이 공허하기 까지 했다.
고모는 전화기를 들더니 사촌 시숙에게 연락을 하고 있는것이었다.
"효원 아범이야? 엄마가 엄마가 돌아 가셨어. 빨리 좀 와봐."
그리고는 마침내 고모도 울기 시작 하였다.
그녀와 고모는 속으로 는 가장 통하는 입장이었는지도 ....
그녀는 아이들을 깨웠다. "우영아 , 아빠네 집에 가서 아빠 한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빨리 알리고와. 우영아? 얼른 갔다와."
고모는 소리쳤다." 그만둬 그자식 한테는 알리지도 말어."
뜻밖의 고모의 말에 그녀는 놀라고 있었다.
고모는 다시 얘기했다.
"내가 그동안 너에게 말은 안했는데 엄마가 걔네들때문에 돌아가신거야."
"당연히 아들이니까 모셔야 하는데 그 기집년이 못모신다고 해서 어머니가 충격으로 쓰러지셨던거야. 그냥 말하기 좋아서 이렇게 지냈지, 자네한테는 미안하구 고마워."
그녀는 고모의 뜻하지 않은 고백에 지난 시간의 설움이 더욱 세차게 밀려오고 있었다.
" 어머니 어머니 저는 이제 어떡 해야 하는지 말씀이라도 속 시원히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