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식 날이라 정신없이 시끄러웠고, 사람들로 곧 터질 듯한 학교는 몸살을 앓았다. 어디에 숨어 있던 사람들을 모조리 데리고 나와 쏟아 부은 것 처럼 거리도, 학교도, 사람들 물결로 일렁였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입학을 축하하는 무리들이 여럿이고, 독불장군을 비롯해 여기저기 사람들 뿐이었다. 카메라의 후레쉬가 터질 때마다 입가에는 가득 웃음이 번졌고, 서로에게는 알 수 없는 경계심을 느꼈다. 화창한 봄날 만큼 화사한 학생들로 분비는 캠퍼스는 개성과 객기가 동시에 공존하는,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장터를 연상시켰다. 부모님께서 먼저 집으로 가신 후에 현정과 나는 학교를 한바퀴 둘러 보고 있었다. 그녀도 나도 스스로 뿌듯해 하며 연신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우리의 작은 수다가 이어지고 있는 동안에 술렁이던 학교도 잠시 평온을 찾는 듯 했다. 입학식을 무사히 마친 학생들은 속속 귀가를 서두르고 있었고, 나도 현정을 재촉해 교문을 나오던 길이었다. “야 니 영은아이가? 누군가 뒤에서 나를 부르고 있는 게 아닌가. 낯익은 음성에 뒤를 돌아 본 순간이었다. 긴 팔을 휘휘저으며 멀리서 걸어오는 남자가 보였다. “야 니.. 정영은? 맞재. 내다 모르겠나? 독고 진” 그의 테너식 사투리 한 마당에 사람들의 시선이 순간 집중되었다.그는 초등학교 동창 독고 진이었다. 한눈에 나를 알아본 그의 기억력도 대단했지만, 단숨에 그의 목소리를 알아차린 나도 의지의 한국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고 진? 그 코 찔찔이?" "그래 내다, 그 장난꾸러기. 우와 진짜 반갑데이" 그의 사투리가 한순간 나를 초등학생으로 만들어 버린둣 했다. 주위는 오랜만에 상봉한 초등학교 동창을 기꺼이 축하해 주었다. 그가 악수를 청했고, 나는 현정을 소개했다. "문현정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고개를 약간 숙인 현정의 목덜미에 야한 떨림이 느껴졌다. 그 떨림이 무엇인지 알수는 없었다. 현정은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산뜻하고 맑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특별히 화를 내는 법도 없었고, 온순하고 차분했다. 물처럼 잘 스며들고, 있는 듯 없고,없다고 생각하면 늘 그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그녀의 모든 것이 나와는 상반되었지만, 그래서 우리는 더욱 잘 어울리는 동무가 되었다. "어디 좀 들어가자. 다리아프다." 내가 내쳐 그들을 끌었다. 우리는 학교 앞의 조그만 커피전문점으로 들어갔다.그곳은 명절을 앞둔 큰 댁처럼 어수선하고 발 부칠 때가 없었다. 그 사일 비집고 들어가 우리 셋이 마주보며 앉았다. 사소한 이야기들이 오갔고, 진과 나는 그저 물끄러미 서로를 보고 웃다가 누가 랄 것도 없이 부모님의 안부를 물었다. "은아. 예전에 어머님께서 니 크면 내한테 시집 보내 준다 카시던데,, 어머니는 안녕하시재. 참 아버님도 안녕하시나? 궁금하다. 못 뵌지 하도 오래되서리.." 그는 말끝을 흐린다. 가만히 보면 그는 이제 예전의 장난꾸러기 아이가 아니다. 잘 기른 머리는 단정히 손질되어 있고, 물 날린 청바지에 흰색 셔츠를 골라 입을 줄 아는 청년이 되었다. 내가 기억하는 그와 너무도 틀린 것이 사실이지만, 싫지는 않았다. "잘 계셔. 가끔 너 묻더라.근데 편지는 왜 안했어?" 현정을 잠깐 쳐다본다. 그녀의 시선은 진의 아담의 사과에 멈춰 있는 듯 하다. 아닐 수도 있고. "현정씨는 원래 말이 없는 갑네요. 아까 부터 한 마디도 안한 거 알아요? 우리가 말할 기회를 안 준 것 같아서 미안시럽네요." 화제로 부터 소외되어 있던 현정을 끌어 들인 그의 배려에 잠깐 감사했다. " 아니예요. 재밌어요. 둘이 할 말이 많을 것 같아서." 그녀도 말 끝을 흐린다. '우리가 말할 수 없는 건, 흐릴 수 밖에 없는 그 말은 무슨 말일까?' 하고 생각해 본다. 우리의 웃음이 높았다가, 낮아졌다가, 잦다가, 끊기다가 끝없이 이어진다. '우리 인연은 인연인 갑다. 어떻게 학교에서 이래 만나노. 그래 한번은 어떤 모양으로도 만나 질 줄 알았다." 진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난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에전에 그 목소리 크고, 잘 나가던 영은는 어디갔노? 인제 서울사람 다 됐다 이말이재.? 그렇다. 내가 그랬던가. 그의 궁금증은 더욱 증폭되었고, 이러다가는 날을 세울 것 같았다. " 그만가자. 늦었어. 낼 또 만나면 되지. 진아 이거 연락처" 마음은 축제를 알리는 에드벌룬처럼 둥둥 떠다녔지만, 현정도 나도 집으로 돌아갈 시간 이었다. 내 마음 만큼 현정의 마음도 만만치는 않은가 보다. 그녀의 입가에 끊이지 않은 미소는 묘한 느낌을 주었다. 인연의 시작은 운명적인 우연이라더니,, 참 길고도 짧은 입학식이었다. '진아 만나서 반갑다. 고맙고'마음은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아줘서..되풀이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