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 집--------------------------
"오늘 무슨 일 있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영숙이가 내게 물었다.
"왜 일찍 들어오면 안되나요?"
난 비아냥 대듯이 깐죽댔다.
"아, 아니......"
당황스러워하는 영숙의 표정이 재미 있었다.
'언제가 후회할 거다'라는 오기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그게 무슨 말 버릇이니, 어머니한테?"
어느 새 나타만 아버지가 엄하게 나한테 말했다.
"나에게 도체 어머니가 몇 분이야? 아이구 난 복도 많네!!."
여전히 깐죽대면서 내 방으로 들어 와 버렸다.
밖에선 아버지와 영숙이의 실랑이가 들렸지만 난 음악을 틀어 버렸다.
그 년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참 별 일도 다 있다며 노트북을 열었지만 자꾸자꾸 그 노출증의 모습이 떠올랐다.
생각보다 일찍 눈이 떠졌다.
부랴부랴 씻었다.
내 발걸음은 다른 때보다 가벼웠다.
아버지와 영숙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어제, 태몽 비슷한 걸 꾸었는데......"
"경사났네, 경사났어!"
문 밖을 나서는 데도 아버지의 애교섞인 웃음소리는 끊이질 않는다.
어머니 이민경의 그늘진 얼굴이 스치는 듯 했다.
사무실-------------
"웬 일이십니까? 이렇게 일찍 출근을 하시다니."
박비서는 정말 놀란 눈치다.
아무 이유도 없이 출근에다가 그것도 정시 출근이니 놀란 만도 할 것이다.
"공식적인 자리 아니면 그러지 마, 창피하다."
"미안,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
"그럴 일이 있어."
"어제 아버님하고 밀담이라도 오갔니?"
난 순간 불쾌한 감정이 확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내 표정을 보더니 철용이는 순간 당황스러워 했다.
"너 때문에 그런 거 아냐. 그 얘기는 나중에 하자. 오늘은 처리할 문제가 생겼거든."
"차비서님, 안녕하세요? 차 한 잔만요."
애교섞인 나의 목소리에 차비서는 철용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느냐는 듯 눈짓으로 묻고 있었다.
아침에 아버지가 영숙에게 부린 애교 떠는 목소릴 흉내내고 있는 내 자신이 우스웠다.
하지만 웬지 기분은 좋았다.
차비서는 나를 유심히 살펴보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기분 좋은 일 있으신가요?"
"사장님과는 관계가 없으니까 제에발 그말 만은 NO."
"오늘 구매부와 간담회가 있는데, 참석 해 보실래요?"
"아니요, 그보다는 인사기록카드좀 볼 수 있을까요?"
"어느 부서요?"
"어, 그러니까......"
난 순간 난감했다.
"그걸 알아야 하나요?"
"한 두 사람도 아닌데요. 이름을 말씀 한다든지 아님 부서를 말하면......."
"그럼 박비서 좀 들여보내 주세요."
"찾는 사람이 있으신가봐요?"
사실 어제까지는 어느 여자한테도 이름을 알려고 설령 안다고 해도 기억해 둘려고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 어제, 그러니까 당구장에서 나와 집으로 오면서 그 년에 대해 무지하게 궁금해진 것이다.
철용이가 들어왔다.
"인사기록카드를 찾았다며?"
"어제 지하 식품매장에서 본 그 여자 있잖아."
"누구?"
'하, 자식! 거 있잖아, 노출증! 아니 그 튀김 먹던 여자."
철용이는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이트에서 봤던 여자, 니가 먼저 알아봤잖아!"'
"오케이, 알겠어."
"빨리 알아봐!"
"왜 당한 거 있어?"
"내가 그 년한테 당할 게 뭐가 있냐? 재수 없어서 그래."
철용이는 이해 못하겠다는 듯 했지만 곧 내가 뭘 원하는 지 금방 알아차렸다.
난 그 년이 무척 궁금했다.
마치 신데렐라 같았다.
재투성이에서 공주가 된 것처럼 달랐다.
나이트와 회사!!!!!
신데렐라는 신발이라도 있었으나 난 신발도 없다.
그나마 손바닥 안에 있다는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느끼는 이 흥분감을 어떻게 주체 해야할 지 난감했다.
노트북을 폈다가 다시 닫았다.
난 일단 비서실로 갔다.
"박비서 갑시다."
"????"
다음 편은 ---------- 갖고 싶은 페라가모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