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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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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희의 그남자


BY 이마주 2003-10-16

<솔희의 그 남자>

 

영월에서의 블랙홀을 통과하고 집에 온 나의 전화기엔 또 솔희의 숨넘어가는 메시지로 채워져있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그녀의 남자가 궁굼하기도 하고, 이런 복잡한 마음으로 혼자 있다가는 명에게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이 느껴질까 두려워 솔희를 만나기로 했다.

"이건 정말 영화였다구, 갑자기 그의 전화를 받고 만난거잖아, 학교에서 정장입은 채로 약속장소로 나갔어. 그남자 먼저 와있더라. 그것도 너무 예쁜 장미를 들고 말이야, 꼭 블룸에서 산 것처럼 아주 멋진 꽃다발이었지. 근데 날 보고 조금 놀란거 같았어.

처음 싱글즈에서 봤을 땐 내가 꽤 야하다고 생각했었나봐.
여자다운 차림의 날 보더니 당황해 하더라구, 근데 그게 더 효과적이었어. 더 좋아하는거 같았거든. 암튼 너도 알잖아, 그렇게 다시 만나게 되면 넘 어색한거...

근데 '미안했어요. 그 날은 너무 바쁜 때였고, 생각해보니 우리가 갑작스레 그렇게 함께 한데에 나 자신도 당황이 되고. 그래서 급한 마음에 솔희씨 가방에서 명함하나 들고 나왔어요. 그 날 바로 연락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잘 나지 않기도 했고 또 회사에 어려운 일이 있어서 약속을 해도 지키지 못할거 같았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는거야. 너무 멋있지 않니?"

 

"근데 다시 보니 어때? 그 날도 또 뭐야. 그 매직이 펼쳐지던?"

"사실 다시보니까 그렇지는 앟았는데 생각보다 나이가 많더라, 39이래."

 

"뭐야? 그럼 유부남아니야?"

"여기서 내 운명이 결정난다는거 아니냐, 그 사람 총각이래. 일하느라고 혼기를 놓쳤대. 너무 딱 아니니? 이미 속궁합은 맞춰놨겠다, 우리 서로 처녀총각이겠다. 그 사람 스타일을 보니 나랑 취향 비슷하겠다. 당장이라도 그 사람이 결혼하자면 난 오케이야. 물론 그런 티는 안냈지, 내가 뭐 어린애니?

고향은 부산이고 부모님은 아직도 고향에 사신대. 나보고 뭐하냐고 물어서 양호선생이라고 했더니 웃더라, 근데 웃는게 거의 살인적이야. 얼마나 잘 웃는지 꼭 소년같애. 은근히 보조개까지 들어가고...

그러면서 자기도 그 나이 먹도록 그렇게 충동적인 적이 없었대. 날 보는 순간 세상이  멈춘거 같았다는거야. 뭐 듣기좋은 말인지 뭔지는 몰라도 그렇게 말해주니 기분은 짱이더라. 연우야, 나도 이제 선수생활 은퇴하는 날이 가까운 거 같아,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화려한 싱글생활이여 안뇽~~ 빨리가라, 빨리.."

 

솔희는 한껏 가슴을 부풀린 비둘기처럼 들떠있었다.

어린시절에 늘 엉뚱한 그녀의 모습이 다시금 되살아난거 같아 정말 귀여웠다.

항상 새로운 것에 목말라 하던 솔희는 우리와는 조금은 틀렸다.

 

지극히 현실적이기도 하지만 그건 그녀의 직업이 말해주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의 재량안에서 누군가를 만나지 못한다면 선볼 때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여성이길 원했다.

늘 평범한 우리와는 다른 선택을 해왔던 아이. 그 친구가 행복해 한다는 건 나의 행복의 일부이기도 했다.

 

"기집애, 그렇게 좋아? 그래 뭐하는 월급장이래? 이름은? "

"맞다맞다, 그래서 너 빨리 만나려고 했는데, 그사람도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 다닌대. 이름은 정민호래, 너 혹시 알아? "

 

"누구? 정민호? 우리 실장하고 이름 똑같네, 뭐 정민호 ? 정말 정민호야?"

"니네 실장이라고? 말도 안돼...동명이인이겠지. 설마 그 칼날일려고? 진짜야?

야야, 너 그날 받은 장미 혹시 핑크색으로 손잡이는 흰색이랑 핑크색 리본으로 되있고 100송이 아니었어?"

방바닥에서 일어나서 침을 튀며 내가 소리를 지르는 통에 솔희는 어리벙벙해 보였다.

 

"그리고 되게 마르고. 얼굴은 차갑게 생기고 ,또 .또 . 그날 검은 색 수트에 안에도 검은 셔츠 입고 그랬니?  키는 180쯤되고, 응?  맞어? 너 그 남자랑 만난게 언제지?"

"열흘전 금요일이야, 야. 진정해. 정말 정민호가 너의 실장이야? "

 

달력을 뒤지면서 생각이 분주해졌다.

실장이 강남의 주차장으로 나와 함께 차를 가지고 간 날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한 번도 솔희의 남자가 칼날이라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다.

순식간에 모든 퍼즐이 들어맞았다. 아무리 우연이라고는 하지만 이건 좀 심했다.
솔희와 나는 서로 얼굴을 보고 데굴거리며 웃었다.

 

"니가 말하던 그 재수없는 칼날이 민호씨라고? 말도안돼!"

"뭐? 웃는게 소년같다고? 보조개가 들어가? 그건 더 말도 안돼."

 

솔희가 만난 사람이 실장이었다니 놀라기는 했지만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자기의 일에 그렇게 책임감있는 사람이기에 솔희를 사랑하는데도 온 정성을 다 할 것이다.

 

"그사람이 그러더라. 순서가 바뀌어서 우리는 시작됐지만 그만큼 더 소중히 만나보자고. 연우야, 나 잘하는거니?"

"그럼, 우리 실장 좋은 사람이야. 일하나 하는거 보면 그사람을 알잖아. 단정하고 좋은 사람일거야, 솔희야. 너무 잘됐다. 한 번 예쁘게 잘 사귀어봐. 내가 팍팍 밀어줄께."

 

"연우야, 고마워. 사랑해. 친구야."

"나도. 넌 나처럼 실패하지 않을거야, 사랑하는 친구야."

인생길을 가는데 함께할 사람은 배우자, 가족외에도 친구가 차지하는 부분이 많다고 나는 확신한다.

우리의 10대 20대를 지나 서른 넘어 여자로서의 모습을 나누는 솔희와 나의 관계는 정말 너무도 소중하고 귀한 만남이기에 이 친구의 행복을 위해 나도 조금은 개입할 수 있다는게 여간 기쁜 일이 아니었다.
 

그가 나의 상사라는것만 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