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결혼해서 사는 동안 적지 않은 '싸움의 빌미'를 제공한 사람은 시부모님이었다.
이혼 후에도 가장 나를 힘들 게 했던 부분중에 하나도 바로 시부모님이었다.
물론 친정부모님은 그전이나 지금이나 내가 딸로서 행복한 삶을 살기를 누구보다 바라시는 분들이셨고 결국 남편과의 끝을 고했을 때도 아무 말씀 없이 그저 나의 결정에 순응하신 그런 분들이다.
하지만 시부모님들은 조금 달랐다.
결혼해서 몇 년간 아이가 없는 우리를 늘 걱정하셨고 백방으로 몸에 좋다는 아이 낳는다는 비법이란 비법은 다해서 가져다 주시는 분들이셨다.
그러던 차에 우리가 이혼하려는 걸 알 게 되셨을 때 그 분들의 반응이란 정말로 대단한 정도가 아니었다.
얼르기도 하시고 야단치기도 하시고 반대하기도 하시고 역정을 내기도 하시면서 우리의 이혼에 대해 당사자인 우리보다도 더 흥분하셨던 거였지만 장난인 남편은 그저 '죄송합니다, 그렇게 하기로 했어요.'외에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장남에게 항상 많은 자부심을 가지고 계셨던 그 분들에겐 은연중에 아이가 없는 것이 나의 책임인 쪽으로 몰아가고 계셨지만 그래도 아들의 인생에 이혼남의 경력이 남는다는 것이 더 큰 이슈가 되셨던지 끝까지 우리의 이혼을 막으려 하셨던 분이었다.
정이 많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다소 즉흥적인 시부모님들은 사실 낙천적이시고, 나를 맏며느리서 잘 보살펴주시고 사랑을 주신 것 임에는 틀림없었다.
남편과의 헤어짐에도 어머님이 안타까워하심은 불구하더라도 정작 마지막 그분들을 뵈었던 날에 눈물을 흘리신 분은 뜻밖에도 아버님이셨다.
한동안 하늘만 쳐다보시던 아버님은 마지막 나의 인사에 그저 '어허..그것 참... 미안하다... 미안해..허... 아가 건강하거라' 라고 하시며 말을 못이으시고 눈물을 보이신거였다.
그래서였을까?
홀로서기를 시작하느라 정신없이 지냈지만 어버이날 친정 부모님의 선물을 고르면서 시부모님이 생각나서 선물코너 구석에서 난 한참을 울었었다.
부모님이라는 존재는 이리도 자식의 마음을 찡하게 하는 대상이었던걸...
그 땐 난 그것마저 몰랐었던 모양이다.
공사가 막바지로 가면서 리노베이션 축하리셉션에 대한 행사로 한참 바쁘던 점심에 나를 찾는 전화가 왔다.
"네, 우연우입니다."
"아가..나다."
"아버님?"
회사 로비의자에 시아버님이 앉아 계셨다.
일년만의 만남이기도 했지만 이미 더 이상 뵐 수도 없는 분이 눈앞에 계시니 전남편을 만날 때보다 마음이 더 콩닥거렸다.
그 동안 아버님은 많이 수척해 보이셨다.
새벽마다 운동에 기체조에 나이에 비해 훨씬 건강하셨던 분인데 우리의 결말로 인해 연로하신 부모님을 저리도 상하게 한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어떻게... 그간 안녕하셨어요? "
"음, 너 바쁘지? 점심이나 같이 먹으려고 들렀는데 시간되냐?"
식사가 끝날 때까지 말씀이 없으신 전남편의 아버지를 마주 대하고 있으니 갑자기 왈칵 눈물이 났다.
밥상에서 우는 것이 얼마나 볼상 사나운 일인지 알고 있었지만 현실이 갑자기 너무 크게도 다가오는 것 같아 자제가 어려운 지경이었다.
"저..어머님 많이 편찮으시다고 들었는데... 죄송해요."
"울지마라, 아가... 어째 사는 건 괜찮니? 내가 갑자기 찾아와서 놀랐을 게다.. 한동안은...
나도 너희가 헤어지는 것을 용서하기가 어려워 그 놈도 집에서 쫓아내고 아가한테도 너무 섭섭했던거 허허.. 내가 늙어서 그래. 노여운 걸 잘 못참지...
근데 어느날 부턴가 문을 열고 아가 네가 들어올 거 같은 게야.
나도 주책이지.네가 아버지,하고 날 부르러 올 것 같은거라, 할멈은 네가 나간 후로 말이 통 없어졌다.
밤마다 울기도 많이 울고 어제는 나보고 그러더라, 아가 너 한 번 만나보라고.. 아들놈이랑은 상관없이...
우리가 네가 너무 보고 싶어서 말이다...누가 잘못을 했건 너희 나름대로 오죽하면야 이혼까정 했겠냐만은 우리가 이 나이까지 살아보니 그게 꼭 그런 것만이 아니야...
사실 지 새끼들 낳고도 헤어지는 세상인데 너희야 몸 가벼운 사람들이고 아직 젊으니 얼마던지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겠지만 서도..
너도 그 조강지처,조강지부 그 말 알지?
쌀겨지개미 같이 먹은 사이말이다.
암만 생각해도 이건 아니지 싶어. 아가. 우리가 그 간 너를 많이 부담 준 거 안다. 할멈이랑 약속하고 나왔다. 더 이상은 그런거 신경 안쓰기로.. 하늘이 주시면 생기는 거고 안생기면 뭐... 요즘은 길도 많이 있고 너희가 아이없어도 괜찮다면야 우리는 상관 없구나. 내가 보장하마.. 아가 한 번 다시 잘 생각해 볼테냐?
그 녀석이야 너도 알다시피 하나밖에 모르는 놈이라 아직도 회사에선 이혼한 줄도 몰러. 지금 대답하지 말고 한 번 생각이라도 해보렴. 응 아가?"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려운 발걸음을 하셨을 이 어른.
완고하고 보수적인 그 아버님이 지금 너무도 간절히 나의 마음을 돌이키고 싶어 하신다니 믿기가 어려웠다.
그다지 잘 해드리지도 못한 며느리를 마주 대하시고 단지 한 번 만 더 생각을 해보라는 말을 하시려고 이 곳까지 찾아오신 이 어르신에게 얼마나 어려운 발걸음이셨을까?
나의 친정아버지가 전남편을 찾아가서 이런 상황을 연출하신다면 나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오버랲되었다.
마음이 갈갈이 찢어지는거 같았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었지만 부모님들은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주연급 조연이었다.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갈 시간까지도 나는 해야 할 말을 찾지 못했다.
한사코 점심값도 아버님이 내시고 식당에서 서비스하는 박하사탕의 껍질을 까셔서 아버님은 묵묵히 내 입에 넣어주셨다.
"아버님... 죄송해요."
"바보같이. 또 우냐? 남들이 숭본다. 내 말 알아들었지, 다시 한 번 만 잘 생각해봐라? 응? 늦겠다 들어가."
아버님은 서둘러 내 등을 두드리시고는 지하철 입구로 사라지셨다.
택시를 혼자서는 절대로 안타시는 아버님을 그래도 조금이라도 편하게 가시게 해드리고 싶었는데.
어느새 어르신은 사라지시고 안보이셨다.
이미 점심 시간은 10분이나 지나있었지만 난 사무실로 발걸음이 옮겨지지가 않았다.
하늘은 왜 그렇게 파랗고, 사람들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생글거리며 나를 스쳐 지나갔다.
내가 서있는 이 땅이 왜 그렇게 낯설게 느껴졌을까?
마치 이런 막막한 순간에 속한 사람은 나밖에 없는 양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멀게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