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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와 방학생활


BY 영원 2003-09-20

 

아지트에선 아지트 모범생으로, 학교에선 내 마음이 가는대로. 이중생활이 매일 반복되었다. 이젠 기말고사만 보면 두 달간의 긴 방학에 들어가는데. 마음이 두 갈래다. 방학이 기다려지면서도, 두 달 동안 그의 얼굴과 나를 향한 시선들을 못 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개강일이 기다려진다. 공주병의 실체인가?

다가오는 기말고사 준비로 한창 바빴지만 그 와중에도 그를 향한 나의 안테나들은 곤두서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비상연락망을 새로이 작성한다고 종이를 돌렸는데 그의 삐삐번호가 보였다. 순간 ‘나도 삐삐를 하나 장만할까?’라는 생각과 동시에 결심을 해 버렸다. 아지트의 규칙에 또 위반되는 줄 알지만 그래도 삐삐를 하나 개통하면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혹시나 그의 안부인사 메시지라도 올 것 같은...


시험이 다가오는데도 시간을 할애하여 삐삐를 구입하러 끝내는 가고야 말았다. 그것도 제일 비싸고 또 체면에 예쁜 걸로 하나 개통했다. 그리곤 그 다음 날 바로 내 비상연락망을 다시 적었다. 회사 전화번호가 아닌 나만의 번호로.


“어? 예진이 삐삐샀나?”

“우와. 함 보자.”

여기저기서 관심을 보였다. 물론 그도.

‘하~ 이젠 뭔가 좀 안심이 된다. 기말고사만 잘 치르면 방학 준비 끝!’

혼자 이런 생각에 씨익 웃었다.


드디어 기말고사. 꾸준히 준비했기에 다행히 어렵진 않았다. 마지막 한 과목 시간.

‘이 답안지만 제출하면 이젠...’

난 일부러 답안지를 늦게 제출했다. 그와 비슷하게 나가려고. 그가 일어서서 제출하고 나가자 나도 따라 나섰다. 잔뜩 기대에 부풀어...

그러나 그는 벌써 뒤도 안 돌아보고 뭐가 그리 바쁜지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이렇게 허무할 수가! 최소한 방학동안 잘 지내라는 말 한 마디라도 할 줄 알았는데... 엉뚱하게 내 뒤를 따라 나온 다른 남학생들에게 인사를 받았다.


‘그래도 아직 희망은 있다. 삐삐!’

스스로 위안하며 아지트로 돌아왔다. 아지트로 돌아와 그 동안 못 했던 대청소와 빨래를 했다. 조금은 속이 후련하고 시원해 졌다.

‘아~ 방학 동안 뭐하지? 촌스럽게 공부할 순 없고.’

난 고민끝에 이런저런 동아리에 가입했다. 물론 아지트 내에서.

그렇게 방학 동안에도 나름대로 바쁘게 보냈다. 잠자고 있는 나의 삐삐를 잊으려고 더욱 열심히 생활했다. 끝내는 나의 희망도 깨지고 방학 내내 삐삐는 한 번도 울리지 않았다.


‘이렇게 허무하고 억울할 수가...’

‘삐삐야.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