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지? 해운대까지만 태워달라고 할까?’
“예진아?! 예진아?! 내 말 안 들려?”
“네?! 네~에. 저기요~”
“뭐~ 내가 집까지 태워다 줄까?”
“음. 그래 주시면...”
얼버무리는 나에게 그는 웃으며 윙크로 대답했다.
‘휴~ 다행이다. 먼저 말해주어서. 그런데 큰일이네.’
아지트 근처까지만 데려다 준다 해도 누군가 볼지 모르는 일인데 정말 살얼음판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아직 근처도 안 갔는데 가슴이 콩닥거린다. 아지트인에게 들킬까봐. 가는 도중에도 김현민씨는 계속 아지트에 관한 질문과 간간히 나의 관심사와 진로에 대해 물었다. 마치 선생님이 학생 상담하는 기분이었다. 아지트의 규칙 모두는 말할 수 없어도 적어도 당장 코 앞에 닥친 관련규칙은 알려주어야 된다는 생각에 이성에 대한 아지트의 규칙을 조심스레 말하였다.
“그런 게 어딨어? 예진아 너 왜 거기서 사니? 그냥 나오지. 답답하지 않아?”
“아뇨. 제가 택한 길이고 만족해요.”
“신앙이야 그렇다 쳐도 일하며 공부하는 거 장난아닐건데...더구나 그런 규칙들 속에서...”
“회사에서 많이 배려해 줘서 괜찮아요.”
“그래도 남자인 나도 일하며 공부하려니까 정말 집에 가면 완전 녹초야.”
“몸은 그래도 뭔가 해내고 있다는 자부심에 좋아요.”
애써 좋은 말로 대답하는 동안 아지트의 근처에 다다랐다. 이젠 슬슬 나도 모르게 차 밖을 두리번 거렸다. 지나치는 사람들 중에 아지트인이 없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찾는 내 모습이 그의 눈엔 어떻게 비쳤을까? 벌써 들킨 양 얼굴까지 벌게져서 나의 행동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졌을 것이다. 아지트가 더 가까워오자 낯익은 얼굴들이 몇몇 보일 때마다 난 자동적으로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려 피했다.
“저기서 내릴께요! 더 이상 들어가면 위험해요. 죄송해요. 여기까지 데려다 주셨는데...”
“응. 괜찮아. 조심해서 들어가. 여기 지역이 너무 외졌다.”
“네. 그럼 안녕히 가세요. 월요일에 학교에서 뵈요.”
“응. 그래. 얼른 들어가.”
난 조급한 마음에 아지트 정문까지도 못 가고 근처에서 내렸다. 그는 무척이나 궁금했는지 인사를 마치고도 고개를 쭈욱 빼어 아지트를 둘러봤다. 벌써 어두운 저녁이어서 가로등마다 환한 불이 들어와 있었다. 아지트의 야경은 정말 멋있는데 처음 본 그에게는 더욱 경이롭고 신비롭게까지 느껴졌을 것이다. 낮에 보면 허름한 기숙사와 줄지어 있는 회사건물들. 그래서 산으로 둘러싸인 요새같이 보이지만 밤이면 멀리서 보기에, 반짝이는 불빛들로 아름다운 경치를 내뿜는 아지트. 또 아지트까지 들어오려면 꼬불꼬불난 도로를 달려야 한다. 드라이브 코스로는 딱이지만 조금은 으스스한. 어두운 숲에서 뭔가 툭 튀어나올 것 같아 소름도 쫙 돋고.
암튼 그와 헤어져 기숙사로 가는 내 발걸음은 무척 가벼웠다.
무엇보다 들키지 않고 무사히 아지트에 돌아온 것과 나의 마음을 흔드는 그와 데이트는 아니지만 반나절을 같이 있었다는 사실이 흥얼흥얼 콧노래까지 부르게 만들었다. 기숙사로 돌아와 워크맨을 반 가격에 산 걸 자랑하고 싶었지만 그 과정이 불순?해서 차마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대신 일기장에 적었다. 물론 그에 대한 얘기는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이런 게 ‘사랑’이란 걸까?
아지트에선 사랑이 죄악의 시작 조건인데. 그래도 내 마음이 이렇게 요동치는데... 과연 내가 끝까지 이 아지트에 남을 수 있을까? 아님 나도 중도하차하는 건가?
아~ 어지럽다. 하루종일 날아갈 듯한 기분이 아지트로 돌아오니 다시 숨막히고 답답해진 듯 하다.
이러면 안 되는데...아직은... 아직은...
“저에게 힘을 주소서. 유혹을 이길 수 있는 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