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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자눈썹에서 펭귄입술까지


BY 영원 2003-09-12

 


중간고사는 무사히 끝났다. 다행히 어렵지는 않았다. 왠지 좋은 결과가 나올 것같은 느낌에 하루하루 수업시간이 즐거웠다. 이젠 정말 대학생이라는 게 실감나는 것 같았다. 시험을 잘 봐서인지 공부는 더욱 열심히 했지만 또 한편으론 마음의 여유가 조금씩 생기면서 나의 외모에 대해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주변을 둘러봐도 나의 옷차림과 비슷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커트머리에 맨 얼굴로 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게다가 팔자 눈썹인 나는 ‘화장’이라는 것에 민감하게 되었다.

‘눈썹을 한 번 밀어봐? 휴~우.’

‘아냐 괜히 매일 눈썹 그리느라 시간만 낭비할 거야’

이 두 가지 생각에 며칠동안 쓸데없는 고민에 빠져있었다. 그걸 보다 못 한 같은 방 은진 언니는

“이리와. 내가 밀어줄께.”하고는 눈썹 미는 칼을 꺼냈다.

“으~응. 언니 너무 많이 밀지마!”

“야~ 정말 팔자네.”

쓱쓱쓱 밀고는 거울 한 번 보여주고 또 쓱쓱쓱 밀고는 아이브로우 펜슬로 그려주고 하며 한참을 보냈다.

“와. 이제 더 이상은 안 되겠다.”하고는 보여주는데

“언니! 내 눈썹 다 어디갔어?”

“그래도 앞에 조금은 남겨두어야 그릴 때 쉬워.”


눈썹 시작하는 곳에서 1㎝도 못 되게 남겨놓고 몽땅 밀어버린 것이다. 정말 눈앞이 캄캄했다. 거울을 보며 눈썹을 그렸다 지웠다 연습 해봐도 팔자눈썹만 못 했다.

‘앙. 정말 어떡해. 낼 학교가야 되는데. 언니한테 매일 그려달라고 할 수도 없고...’정말 난감했다. 이럴줄 알았음 학교 다니기 전에 연습 좀 해 두는건데...

드디어 학교 가기 1시간 전이다. 틈 날 때마다 종이에 눈썹 그리는 연습을 해봤다.

‘음. 이 정도면 그래도 봐 줄만 하겠지. 누가 내 눈썹만 보겠어?’하며 내 자신을 위로하면서 학교가는 회사 버스에 올라탔다. 내가 늦게 와서인지 차는 바로 출발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책이 아닌 펜슬과 거울을 꺼내 드디어 작품을 그리는데 ‘덜컹’하는 진동과 함께 내 눈썹도 ‘찌익’.

‘헉! 이런 복병이 있을 줄이야. 아. 어떡해. 가만히 있어도 못 그리는 눈썹. 차까지 덜컹거리니... 큰일났다’

정말 울고 싶을 정도로 난감했다. 그러기를 벌써 50분 정도. 이제 10분 후면 학교에 도착하는데 눈썹은 아직이고 아지트로 되돌아 갈까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놈의 눈썹때문에.

오늘 난 처음으로 내 외모에 대해서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

‘에라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한 번 그리고 말자.’라는 생각으로 정성껏 천천히 그렸다.

‘에헤. 그래도 다행이다. 젤 잘 그린거 같네.’혼자 만족해하며 버스에서 내렸는데 강의실에 가서야 나의 형편없는 그림실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강의실에 들어서면서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괜스레 혼자 창피해서 고개숙이고 자리에 앉았다. 부지런히 책 꺼내어 책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 때,

 

“예진이 왔어?”

“아...네. 일찍 오셨네요”

 

김현민씨가 웃으며 인사했다. 나도 고개들며 대답했는데 핸섬한 김현민씨의 미소에 눈썹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그것도 잠시

 

“예진아. 좋아하는 사람 생겼니?”하며 엉뚱한 질문을 하고는 씨익 웃었다.

‘뭔가 있는거 같은데. 왜 저렇게 웃지?’

잠시 후 커피맨 박덕만 씨가 들어오며 나를 보고는

 

“어? 갈매기 두 마리가 날아가네”하며 웃고 지나가는게 아닌가.

그제서야 난 그 웃음의 의미를 확 깨달아 버렸다.

‘아차. 내 눈썹! 우앙’어디라도 숨고 싶었다.

‘이게 아닌데. 김현민 씨가 얼마나 웃었을까?’정말 너무 창피했다. 수업도 대충 듣고 아니 들리지 않았다. 수업 후 바로 내려와 대기해 있는 회사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안에서도 누가 볼세라 얼굴을 창 밖으로 돌리고 있었다. 아지트에서 금지된 가요를 들으며...

아마도 이 때부터 가요와 팝송을 즐겨듣게 된 것 같다.

‘아. 내일부터 김현민씨 얼굴을 어떻게 보지. 창피하다. 너무 창피하다.’

‘난 정말 못 생긴 걸까? 나도 화장을 해야 되나?’

밤에 침대에 누워서도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 자꾸만 떠올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래도 밀려오는 피곤에는 어쩔 수 없었는지 눈이 스르르 감겼다.

그 다음날. 신이 날 돕는 걸까 휴강이 되었다. 평소 같았음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아지트로 돌아갔을 건데 오늘은 나도 모르게 학교 밖으로 향하고 있었다. 화장품 사러...

모아두었던 비상금 탈탈 털어 점원의 설명을 상세히 듣고는 ‘메이크업 베이스’와 ‘트윈 케익’을 사고야 말았다. 기숙사에 돌아오자마자 세수하고는 한 밤중에 화장 연습을 했다. 기초 바르고 오늘 사온 것들 바르고 두드리고, 기러기 눈썹 그리고 마지막으로 졸업선물 받아 모셔두었던 ‘립스틱’을 꺼내 입술을 완성시켰다.

‘우앙. 이게 아닌데?’거울 앞에 웬 펭귄 한 마리가 앉아있는 듯 했다. 얼굴은 허옇고 눈썹은 기러기요. 입술은 얇아 펭귄같고. 절망적이었다.

‘화장은 할수록 는다던데. 낼부터 열심히 연습해봐?’하며 세수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미 눈썹이 공개되었기에 조금은 배짱이 생겼다.

 

화장품 장만 후 첫 날.

“예진아. 얼굴이 넘 창백하다. 뭐 발랐나?”

둘째 날.

“예진아. 기러기 날개가 부러졌다.”

며칠 후.

“예진아. 쥐잡아 묵읏나?”

거의 한 달이 지난 후 이젠 아예 드러내놓고 얘기했다.

“예진아. 오늘은 넘 두껍게 발랐대이.”

“니 무슨 일 있나?”


그래도 난 꾹 참고 꿋꿋이 연습했다. 다행인 것은 아직까지 나를 대하기 어려워 했기에 내 또래들은 말을 걸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최소한 나보다 3살 이상 된 내 표현대로 ‘아저씨’나마 되어야 나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거의 한 달이 지났어도 화장 실력은 엉망이었지만 그래도 내 나름대로는 괜찮았다. 여자들이 화장하는 건 ‘자기만족’때문이라고도 했던가. 화장한 내 얼굴을 보며 조금은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예쁘다기 보다는 ‘지적’으로 보인다고 해야되나? 살짝 화장만 해도 이미지가 확 바뀔 수 있다는 생각에 재미도 느꼈다.

 

아지트에선 슬슬 변하기 시작하는 나를 감시하는 눈들이 생겨났다. '신앙이 흔들리면 외모부터 달라진다'는 관념에 박혀있는 아지트인들이라 나의 화장하는 모습은 그들을 못마땅하게 만들었다.

‘음 이제부턴 정말 조심해야 될 것 같군.’ 힐끔거리며 쳐다보고는 수군거리는 모습들을 보며 학교에서가 아닌 아지트에서 바짝 긴장하였다. 순간 나도 놀랐다.

 

 

‘이 마음은....이런 행동들은....나도 변해가고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