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낮엔 아지트에서 일하고 오후엔 야간 대학교에 다닌다. 혼자 학비에 생활비까지 벌어가며 대학까지 공부할 생각이다. 우리 집이 가난한 것도 아닌데 이 길을 고집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바로 종교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야 신앙보다는, 앞서 언급했듯이 내 자신에게 도전하고파 이 길을 택했지만 지금은 사정이 조금 달라졌다. 이 길을 가고자 내 자신에게 도전해야 된다. 내가 아지트에 길들여지며 독실한 신앙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신앙을 버릴 순 없었다. 그렇다고 학문에 대한 욕심도 버릴 수 없었다. 나의 몸이 힘들지라도 신앙과 대학을 모두 택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야간 대학교를 택한 것이다.
아지트를 떠난다는 건 종교를 버리는 것이라는 규정이 있다. 아지트에 있는 회사를 그만두어도 종교를 버리는 것이다. 신앙에 더 비중을 둔 나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낮엔 일하고 오후엔 아지트 밖에 있는 학교로...
그렇다. 아지트엔 대학이 없다. 그 외의 것은 다 있는데 자급자족이 가능할 만큼의 시설과 인력과 자원은 있는데 대학교는 없기에 밖으로 나가야 했던 것이다. 바깥세상과 거의 단절되다시피 한 아지트에서 3년을 골수 모범생으로 살아온 나는 밖에서의 대학생활이 그저 신기하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따름이었다.
아지트의 중요한 규칙을 간단히 얘기하자면 첫 째. 신앙은 생활이다. 일상생활에서도 자율적으로 자기 양심에 거리낌 없는 신앙생활을 하고 새벽 예배와 주일 예배, 그 외의 각종 모임 때의 예배는 꼭 참석해야 한다. 어길 시엔 엄중한 처벌과 기회를 3번까지 준다. 그래도 어기면 퇴출!
둘째. 이성문제를 엄격히 다룬다. 이성 간에는 스킨 쉽이나 대화는 물론이고 눈을 마주쳐서도 안 된다. 만일 발각되는 시엔 엄중한 처벌과 경고를...그리고 3번의 기회. 지켜지지 않으면 아지트 퇴출! 만일 긴밀한 남녀관계가 있었다면 경고 없이 바로 퇴출이다.
셋째. 일과 신앙 그리고 생활은 하나다. 회사 일에 충실해야 하며 그에 대한 대가에는 마음을 두어선 안 된다. 신앙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이기에 다른 것에 사심이 있어선 안 된다. 그래서인지 사실 월급은 한 달 생활하기에 딱 맞는 정도이다. 그래도 아지트의 복지가 워낙 잘 되어있고 모든 물가가 밖의 세상과는 비교가 안 되게 저렴했으므로 그 쥐꼬리만한 월급이 남아 저축도 하였다.
이 세 가지가 젤 큰 항목인데 이 규칙들에 동의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였다. 누구의 강요도 없으며 강제라는 건 있을 수 없다. 양심에 맡길 뿐. 하지만 이 규칙들을 지키며 아지트에 살기로 동의한 사람들이라면 철저히 지켜야 했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이었고 특히나 골수분자였다.
아지트는 정말 자연환경이나 사람들 모든 것이 깨끗하다. 오염되지 않았고 사람들 또한 선량하다. 그래서인지 위의 규칙들을 어길 시엔 퇴출되기 전에 자진해서 먼저 아지트를 떠났다. 그렇게 아지트는 지켜지고 있었다.
음...아지트는 아무리 설명을 잘 해도 직접 살아보지 않고는 이해하기 어려운 곳이다. 암튼 이런 규제 속에서 살아온 내가 대학생활을 잘 할 수 있을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그 것도 남학생들만 버글버글한 속에서 아지트의 양심 규칙을 지킬 수 있을지... 아무래도 나도 모르는 사이 이중생활을 하게 될 것 같다. 학과에서 속칭 왕따가 되지 않으려면... 아지트에선 신앙인으로, 학교에선 적당히 타협할 줄 아는 나 자신 본연의 모습으로. 내 본연의 모습이 어떤지 궁금하다. 빨리 본격적인 학교 생활이 시작되었음 좋겠다. 하루하루가 왜 이렇게 더디게 가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