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때이른 더위가 시작된 6월초
아파트 단지안에 자리잡은 검도장에서는 어린 아이들의 우렁찬 고함 소리가 들려온다.
아이들의 부모로 보이는 어른들은 조금이라도 좋은 자리를 잡아 자식들의 시합 모습을 사진에 또는 캠코더로 담으려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이다.
어색한 모습으로 현준도 카메라를 목에 걸고 자리를 잡았다.
인근에서 제법 크다는 도장이건만 사람들은 이미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이게 뭐야…. 간만에 쉬는 휴일인데…….”
“야, 정우 좋아하는거 안보여? 삼촌 온다고 얼마나 신나했는데….
임마, 정우는 아빠보다 삼촌이 더 멋지단다….흑흑흑..”
가슴을 치며 과장되게 슬퍼하는 현우를 보면서 현준도 할 말을 잊었다.
“알았어… 참… 그나저나 형수는 어디 있는거야?”
“ 너 안보이냐? 저기 가장 앞자리 차지하고 앉아서 마구 열광하는 저 아줌마의 모습이. 흡사 광신도 처럼 보이기도 하고….”
형수 뿐만 아니라 여기 모여있는 모든 아줌마들은 다 광신도 처럼 보였다.
갑자기 자신이 왜 이곳에 와야 했는지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날마다 바쁜 회사일로 항상 정신없이 보내야 했다.
실상 오랜만에 찾아온 휴일에 이게 무슨짓인지……
“ 정우 나온다… 잘 찍어….. 나 간다…”
사람이 자식 앞에서는 다 똑 같은 모습인 것 같다.
가사 소송을 전문으로 하는 – 형과 형수 모두 이혼 전문 변호사라고 생각하지만 – 현우와 순옥은 꽤나 이름이 알려진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둘 모두 법정안에서는 절대 물고 안놓치기로 유명해 불독으로 불리고 있지만 오늘만은 그간 쌓아온 이미지를 모두 부셔 버리기로 작정을 한 것 같았다.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정우는 아빠를 닮아서 또래들 보다 키가 커보였다.
그래도 아직 어린 조카가 호구까지 갖추고 죽도를 들고 서 있는 모습이 제법 근사해보인다.
카메라 렌즈로 정우의 모습을 잡아 당기 면서 조금 뒤에 서있던 여자의 모습이 현준의 카메라 렌즈 속으로 따라 들어왔다.
조금전에 끝난 경기를 치룬 사람인 것 같다.
사실 워낙에 동작이 빠르고 죽도 부디치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서 현준도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던 경기아닌가.
설마 경기를 했던 선수가 여자일거라곤 생각못했었다.
아직도 가슴이 들썩 거리는 모습이 꽤나 힘든 경기였던가 보다.
손목 보호대를 빼고 호면을 벗는데 땀이 뚝뚝 떨어진다.
하긴 이 더운 날씨에 아무리 에어컨이 빵빵히 돌아간다고 해도 저 무거운 호구를 다 갖추려면 상당히 더우리라.
정우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어린 녀석이 지르는 기합 소리 쳐놓고는 상당히 힘이 들어간다.
아직 서로 장난 치는 것 같아만 보이는 경기가 제법 큰 죽도 소리를 내면서 이어져 가고 있었다.
정우 녀석을 쫒아 이리 저리 옮겨가던 카메라 렌즈가 처음 그 자리로 다시 돌아왔을 때 그 뒤에 잡히는 사람은 긴 생머리를 한 여학생의 모습이었다.
젖은 머리카락을 얼굴에서 털어내며 아직도 가쁜 숨을 고르고 있는 그녀의 이마에서 다시 땀이 떨어지고 있었다.
순간 그는 자신도 모르게 땀을 닦고 있는 주인공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탁 탁 탁”
죽도 소리에 정신이 다시 돌아온 그는 다시 정우의 모습을 향해 렌즈를 돌렸다.
경기가 끝나고 인사를 하고 들어가는 녀석을 확인한 후 다시 뒷자리의 그 여학생(?)을 찾아 보았으나 이미 자리를 떠난듯 했다.
혼자 몰래 무언가 보다 들켜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여름이 이제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