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에 시원한 빗줄기가 쏟아진다.
'에휴..대체 이눔의 여름은 언제 물러가려나..'
여름을 제일 싫어하는 나...
그나마 여름이 좋은 이유는? 정전기가 없어서..
남편 와이셔츠 목 부분만 빨수 있어서(반팔이니까..)
뭐 그 정도뿐이다..
그럼 내가 제일 좋아하는것은...?
움....많지..그중 제일 좋은것은 인현왕후다..
엥? 왜 하고 많은것중에 인현왕후냐구?
좋은걸 어떻해.....
그 착한 심성..어여쁜 얼굴..(물론 직접 뵌적은 없지만..)
장희빈에 맞서 속을 끓이면서도 국모로서의 위엄을 잃지않는 그 모습..
얼마나 대단하고..멋진지..
움....
내가 이런말을 꺼내기라도 하면, 사람들은 고리타분하게 생각하겠지만,
난 인현왕후가 정말로 좋다.
오죽하면 책도 인현왕후 전만 3권이나 있다..흐흐..
앗? 감상에 젖은 사이,세살박이 딸애가 슬금슬금 거실로 나온다.
"엄마... 민이 잘 자고 일어났어요...."
"오..그랬니..? 잘했네....."
휴우....말은 이렇게 해도, 비와 함께 나의 달콤한 시간은 버얼써
저만큼 가버렸구나..
민이의 손을 끌고 동네 시장에라도 나가야겠다.
오늘 저녁은 또 뭘 한다냐..휴우....
"민아..얼른 요리 잘 하는 로보트가 발명되면 좋겠다..그치?
그럼 얼마나 좋을까..우리 민이랑 매일 놀아주고.."
"응...좋겠다..로보트.."
뭔지도 모르고 딸은 맞장구를 쳐댄다.
시장으로 가는 길목에 작은 지하도를 건너야 한다.
가끔 나물이라도 파는 할머니들이 보이더니만, 오늘은 없네..
엥? 그런데..지하도 중간쯤에 허름한 옷을 입은 한 할머니가 앉아계신다.
'나물이라도 파시나..?'
민이 구경이라도 시켜주려고 다가섰는데 나물은 보이지 않는다.
다시 돌아서는데 할머니의 음성이 나를 잡아끈다.
" 새댁.....나좀 보오.."
" 네에? 저요..? "
난 새댁이 아니건만.....지나가는 사람은 나뿐이다.
"할머니..왜 그러세요...?"
"흠.......인현왕후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구만..."
"네엣? 그, 그걸 어떻게..아세요.."
"후후훗...나는 다 안다오.."
할머니는 너털 웃음을 지으며 옆구리 작은 지갑에서 뭘 하나 꺼내시데요.
그건 허름한 비녀였죠..
"이거라도 하나 사면 좋은일이 생길텐데....."
"넷? 이게 뭐에요..?"
"이건.....인현왕후의 물건이라오....사가에 폐위 되었을때에
사용하셨던 물건이지..이걸 가지고 있는다면, 그분을 만나볼수도
있을테구....."
"네? 그게 정말인가요..? 이 이게..."
할머니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인현왕후의 물건이라니..
그것도 반의 반값도 안되는 애들 껌값에 팔겠다니..
당근 반찬값 투자해서라도 사리라 마음먹었죠..
드뎌 작은 비녀를 하나 손에 들고 왔지요.
민이가 만지고 싶어했지만, 우는애를 달래가며 높은곳에 올려두었지요.
다들 잠이 든 시간.....
저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장롱위에 올려두었던 상자를 꺼냈지요.
까맣고 작은 비녀.....
이걸 정말 인현왕후가 사용했던걸까..?
에이....아니겠지..
그 할머니..장난치신건가..?
아니, 그러기엔 너무 진지했는데 말이지......
할머니의 말이 생각났지요..
"인현왕후를 만나고 싶으면, 이걸 손에 꼭 쥐고 세번만 마음속으로
그분의 이름을 불러보시오..
그럼 만나게 될테니...
참, 돌아오는길은 그분이 알려줄게요..
책속에 길이 있을테니..
참, 그분께 드리고 싶은거라도 가방에 담아두구려..
큰 힘이 될지도 모른다우.."
웃음이 났지만, 너무도 진지한 할머니의 모습이 생각나
시험삼아 한번 해보기로 했지요.
커다란 가방에 이것저것 주섬주섬 담았지요.
야시시한 잠옷에 ,향이 좋은 향수 두개 등등....
그리고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자리에 누워서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죠.
'음.....이거 안되면 당장 할머니한테 가서 따져야지..'
세번째 인현왕후를 부를때에.......
갑자기 번쩍 하더니만, 저는 정신을 잃고 말았지요....
악.......이게 뭔일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