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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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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1


BY 안젤리나 쫄티 2003-08-13

너무도 청명한 가을이 왔다.

코앞에 다가온 입시지옥도 코스모스의 연약한 꽃잎을 감추진 못했다.

점심시간이면 우린 여전히 코스모스 꽃밭에 누워 담배연기를 품어대고 있었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가끔씩 난 그 무리들을 벗어난다는 점.


민지와 나만의 보금자리에서 꿈같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다.

학교 뒷산으로 향하는 오솔길의 한적한 곳을 발견하고 우린 그곳에서

자주 밀회를 즐겼다.


거긴 운동장가에 핀 코스모스완 비교도 되지 않는 최상급의 꽃들이 피어있었다.

우연히 그곳을 발견하던 날 민지가 얼마나 기뻐했던지...


오늘도 미리 와 있던 난 민지를 위해 매점에서 라면박스를 구해다

풀밭에 잘 깔아놓고 민지를 기다렸다.


민지가 도착하면 우린 함께 누워 흘러가는 구름과 새파란 하늘을 감상했다.

민지는 내 팔베개를 무척 좋아했다.

가끔 내 품속을 파고들어와 깜빡 잠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러면 난 민지의 향기에 취해 담배 필터가 다 타들어가는 줄 모르고 넋 놓고

있다가 입술을 데인적도 있었다.


비 오는 날에도 우린 그곳에서 커다란 우산 속에 들어가 꼭 끌어안은 체

비구경을 하기도 했다.

하루하루가 마냥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체육시간이었는데 다른 반과 합반하게 되었다.

체육복을 갈아입고 운동장에 모이자 1반 아이들이 보였다.


단상에 오르신 체육샘은 배구공들을 내려놓으시고 우리들을 둘러 보셨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반대항 배구시합 한판 어떠니? 

원래 배구인원은 6명이지만 9명으로 하자.  각 반들은 대표선수 9명을 선발하고

당번들은 나와서 네트 체크하고 코트 정비하도록.”


우쒸...... 귀찮아.

운동을 좋아하는 나지만 오늘은 영 몸이 좋질 않아 뒤로 슬금슬금 빠져나갈

궁리를 하다 반 아이들의 사나운 눈초리에 걸려버렸다.


헉..... 젠장,  꼭 이럴때면 날 찾다니....


선수로 뽑힌 우리들은 체육샘에게 간단한 경기규칙을 숙지한 후 각자의 코트로

돌아가 섰다.


나야 당근 빠따루 주 공격수다.


오른쪽 공격수인 난 네트를 사이에 두고 상대편을 노려보고 섰다.

흐음....


“삐~~~~익”

선생님의 호각소리에 경기가 시작됐다.


각 반 아이들의 응원소리에 귀가 멍멍한 가운데,

1반에서 평범한 서브가 날아왔다.

리시브의 제왕 진희가 안정감 있게 토스해 올려준 볼을 가운데 섰던 희정이가

재빨리 상대팀의 가운데를 향해 강스파이크를 때렸다.


“야~호.  선취득점이다.   와~”

우리반 아이들은 폴짝폴짝 뛰며 난리가 났다.


그러나 상대팀의 반격도 만만치가 않았다.

그들도 높은 키를 이용해 블로킹으로 쉽게 한점을 따갔다.


상대팀은 운동이라면 절대 지지 않는 막강파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의 짜임새 있는 공격은 눈부실 지경이었다.


점수차가 많이 벌어지면서 경기는 점점 일방적으로 흐르기 시작.


또 한순간 방심했던 난 왼쪽에서 날카롭게 넘어오는 강스파이크에 정통으로

머리를 맞아버렸다.

눈앞이 번쩍할 만큼 강한 스파이크였다.

‘어쭈, 살살하려 했더니 성질 건드네?’


후근거리는 머리를 감싸쥐고 왼쪽 스트라이커 얼굴을 찾았다.

‘어라?  레즈클럽 백장미??’


백장미가 도도하고 건방진 표정으로 나를 비웃고 있었다.

그 옆에는 유명세가 엇비슷한 신보람도 같은 표정.....


타깃이라....

흐음..... 도전을 받아주지.


난 그들을 싸늘하게 노려본 후 제자리로 돌아갔다.


서브맨을 돌아보다 응원석에 서있던 얼음공주 민지와 눈이 마주쳤다.

민지는 걱정이 가득한 눈으로 나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난 민지에게만 보일 듯 말 듯 살짝 미소 지어주곤 전의를 불태웠다.


저쪽으로 넘어간 공이 백장미에게 닿자 백장미는 또 나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네트너머로 손을 뻗어 블로킹을 시도했지만 공은 내 손을 빠져나갔다.


어느 샌가 뒤를 받치고 섰던 진희가 리시브하고 옆에 섰던 미정이가 때리기

좋게 낮은 높이로 내게 살짝 토스해 줬다.

미정이가 채 공을 받아 올리기도 전에 붕 떴던 난 공이 뜨자마자 손바닥으로

힘차게 때려 꽂았다.


예기치 않은 나의 시간차 공격에 백장미는 손도 대보지 못하고 흘려버렸다.


“이야~~ 재영이 초필살기가 드디어 나왔다.  너희들 죽었어. 각오해라 1반”

우리반 아이들은 목이 터져라 응원을 보내기 시작했다.


처절한 응징의 댓가를 치르게 해 주지!!


난 미정이와 눈빛교환을 한 후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 뒤부터 우리 팀으로 넘어오는 공은 모조리 내 앞으로 넘기도록 지시하고

일단 백장미의 얼굴부터 꽂았다.


그 다음엔 가슴, 허리 순으로 조근조근 아작을 내줬다.


배구공에 맞아 처참하게 찌그러진 백장미가 신보람의 귀에 뭔가를 쑥덕이는 게

보였다.


그러자 신보람이 뒤에 아이들에게 뭔가를 소리 치고 그 뒤 공격은 의도적으로

나에게만 퍼붓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쏟아지는 매서운 공격을 다 막아내기엔 조금 벅찼다.


점수완 아랑곳하지 않고 경기가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선생님만 모르고 있을 뿐 응원하던 반 아이들에게까지 퍼져 그야말로 분위기가

험악하게 변해버렸다.


“장재영 짱!  장재영 짱!  장재영 짱!...”

8반을 외쳐대던 아이들이 한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댔다.


난 신보람을 매섭게 노려봤다.

우리 쪽으로 공이 넘어오자 미정이가 페인트모션으로 같이 떠줬고 난

신보람을 향해 다이렉트 킬을 날렸다.


나의 강한 스파이크를 온 몸으로 맞은 신보람은 엉덩방아를 찧은체 쭉 미끌려

넘어져 버렸다.

그러고도 한동안 일어서질 못했다.


감히 내게 대항한 죗값이다.


순식간에 주위가 싸~해지고 상대팀은 두려운 눈으로 나를 힐끔거렸다.


몇 초가 흐른 후 우리 반 아이들은 함성을 질러댔다.

옆에 있던 미정이가 갑자기 내 엉덩이를 툭 치더니 씽긋 웃는 거다.


난 나도 모르게 같이 웃다가 싸늘한 민지의 시선을 느껴야 했다.

‘윽....’


곧이어 난 다시 한번 신보람의 얼굴에 강스파이크를 먹이고 백장미와 신보람을

향해 무차별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얼굴이 시뻘겋게 퉁퉁부은 신보람과 백장미는 비틀거리며 겨우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완전히 넉다운이 된 상태였다.


“또 까불래?”


경기종료를 알리는 선생님의 호각소리가 울리자 우리 반 아이들은

승리의 함성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2점차로 우리반 승리.


미정이가 “캡짱, 잘했어.  정말 잘했어.  진짜진짜 멋졌다구.” 하면서

나를 갑자기 꽉 끌어안는 것이다.


“우악, 야, 안돼.  떨어져”

난 행여 질투의 화신 민지가 볼까봐 얼른 미정일 밀어냈지만

미정인 쉽게 떨어질 기세가 아니었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전부 몰려와 나를 감싸안고 난리도 아니었다.

“야, 별거 아닌 시합가지고 왠 난리들이야.  누가보면 국제경기라도 치른줄

알겠다.  으휴,  쪽팔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