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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릴 수 없다면 ..이 쓰디쓴 기억만이라도 거두어 가 주시오 “
5부.
[ 아악! ].
성은의 소리 없는 비명.
성은의 등줄기 뒤를 치는 찢어지는 듯한 아픔.
천문의 검에 베인 의원이 가졌을 고통스러움이 그대로 성은의 몸속으로 전달되었다.
성은은 두 눈을 부릎뜨며. 하아…하아…하아…가뿐 숨을 내 뱉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숨이 멈출 듯 심장이 벌컥 벌컥 비정상적으로 뛰고 있었다.
두다리에 힘이 빠져 나가며 식은 땀이 흘러내렸다.
자신도 모르게 허리가 뒤로 휘는 성은.
놀라며 성은의 허리를 받혀 안는 민준.
성은은 가물 가물해지는 의식속에서 사력을 다해 민준을 움켜 잡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스르르 풀어지는 손.
“ 성은씨! 성은씨! 정신차려요!! 대답해보세요! “
성은의 의식속으로 메아리 처럼 희미하게 들리는 민준의 목소리.
성은씨…..성은씨…..성은씨….
*
민준은 성은의 고서점 다락방에 와 있었다.
난생 처음 들어와 보는 성은의 다락방.
하늘거리는 흰색 광목 천 커튼 사이로 언듯 언듯 보이는 밤 하늘의 별
다락방 벽에 걸린 목검.
“ 제가 알기로는 현재, 성은씨는 혼자 살고 있습니다. “
성은을 눕히고 , 약을 먹이는 동안 닥터 한의 말이 떠올랐다.
“ 만나는 친구들은 없습니까?. “
닥터 한은 고개를 가로 저엇다
“ 그럼 부모님들은요? “
“ 그녀의 기억 속에 없었습니다”
순간. 민준의 가슴속에서 불끈 솟구치는 슬픔.
민준은 언성을 높이며 소리쳤다.
“ 아니. 부모도 없단 말입니까?!!! “
“ 성은씨…는 전생을 기억하는 대신. 자신의 과거에 대한 기억은 잃고 있는 상태입니다.
“ 그럼, 고서점은 언제부터 하고 있었던 겁니까?. “
“ 그것까지는 모르겟습니다. 하지만 , 가끔씩 전생의 기억과 연결된 어떤 행동들을 만나거나.
전생과 관련된 어떤 유사한 느낌. 분위기에 처해 있을때는 그것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상황일수록 쇼크상태에 빠져 듭니다 . “
“……………!! “
민준이 그녀에게 튕겨드는 빗물을 막아주었던 그 순간 ,
도대체 성은이 기억해낸 것이 무엇이라는 말인가?!!
“ 사실 전생과 관련된 최면요법을 시작한 이래 성은씨 같은 환자는 처음입니다.
저역시 , 가끔은 ………..”
“ 가끔은 뭡니까?. “
“ 가끔은 성은씨가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때도 있습니다 “
민준은, 아득해지며 닥터 한의 다음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 하지만…정신병자라기에는 …글쎼요…전생과 관련된 것외에는 아주 정상적이니 말입니다… “
민준이 다급히 그녀를 받아 안았을 때. 민준은 하마터면 뒤로 넘어질 번 했었다.
성은의 무게는 민준이 생각하는 보통 20대의 성인 여자가 가질수 있는 무게가 아니였다.
너무나도 가벼웠다.
그녀가 얼마나 가벼운지를 느낀 바로 그 순간.
성은이 두 눈을 크게 부릎 뜨고 고통스러운 얼굴로 비명을 내지르던 바로 그 순간이 , 빠르게 되감기는 필름 처럼 민준의 뇌리를 강타했었다
그때 그녀가 내지르는 비명은 소리가 없었다.
단지, 곧 숨이 넘어갈 듯 입만 벌린채 허억- 허억- 하는 숨소리만 났었다
소리 없는 비명.
위험한 순간에 처하면 누구라도 소리를 내지를텐데 말이다….
그 소리가 사라진….여인.
민준은 , 머리카락이 땀으로 흥건한채 잠든 성은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았다.
그녀가…안스러웠다… 민준은
미혼모이던 부모에게 버림 받았던 12월의 어느 겨울
2살 박이 자신의 모습을 성은에게서 보는 듯
가슴이 아팠다
' 당신이나 나나 고아나 다름 없군 그래... ".
.
민준이 성은의 곁에서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는지도 모른채
성은의 악몽은 계속되어 지고 있었다.
성은은 싸늘하게 식어버린 자신의 연인이자 자신의 목숨을 귀히 여겨 준 의원의 시신을 끌고 와 주술사 앞에 놓았다 .
“ 어서, ! 이 사람을 살려내시오! .”
놀라 두 눈을 크게 뜨며 무릎을 꿇는 주술사.
“ 성주님….죽은 자를 살려낼 방도는 제게 없습니다…그것은 천령계의 법도를 어기는 일이고
천령계의 왕만이 죽은 자의 목숨을 허락하실수 있습니다. 주술사는 인간입니다요…성주님…!! “
“ 살릴수 없다면..! “
성주는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스르륵…
성주는 ,청검을 빼내 주술사의 목줄에 갖다댔다
.
목줄이 서늘해지는 주술사.
성주를 아는 주술사는 죽음을 받아들이겠다는 듯 순순히 두 눈을 감았다
“ 크흐흑….! “
그러나 , 청검을 땅 위로 내려 꽂으며 무릎을 꿇는 성주. 성주 흐느끼고 있었다
“ 할수 없다면……이….쓰라린 기억 만이라도 걷어가주련?! …제…발…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남은 시간동안
이 아프고 사무치는 기억을 가지고는 한날이라도 더 살수가 없다.
.........할수 없다면 …네가 ..할수 없다면 ……!!! “
푹-! 성주, 자신의 청검으로 자신을 베어버렸다.
“ 서..성주님!! “
주술사는 새파랗게 변해 부르 짖었다
주술사를 보며 희미한 미소를 짓는 성주.
“ 내가 ..죽으면,,, 이 …기억과 평생 살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더냐 ….흐흐흑….님의 곁으로 갑니다 “
벌컥 벌컥 검뿕은 피를 솟아 내는 성주.
“ 성주님. 쓰겠습니다요!! 성주님.! 부적이든 주문이든 쓰겠습니다. 제발! 성주님 정신 차리십시오! “
주술사는 울부짖었다
성주야 말로 자신의 친딸은 아니지만 평생을 자신이 가르치고 키워온 딸이나 마찬가지가
아니였던가?. 성주가 자신의 복부를 향해 내찌른 칼끝은 주술사의 가슴을 후벼팠다.
“ 내가 죽더라도..써라! 혹시라도….내가 ….내가 ..저지른 업보 때문에..저주 받을 영혼이라면….환생해서도 이 아픈 기억을 가지고 태어날지 …..누가…누가…아느냐….”
잠결에 성은의 눈물이 주루룩 베게위로 떨어져 내렸다.
눈을 감은 채로 서럽게 흐느껴 우는 성은
“ 흐흐흐흑….흐흐흑,…. “
“……………..성은씨……”
민준은 잠결에 흐느껴 우는 성은의 눈물을 닦아내며 이마를 쓸어주었다.
민준은 바로 이순간, 어린시절. 공원의 나뭇가지위에서 갑자기 떨어져 내렸던 새둥지를 떠올렸다.
그속에는 단 한마리의 이제 막 알에서 깨어난 새끼 새 한 마리가 떨며 있었다
분홍색 여린 살결이 듬성 듬성 자라나기 시작하는 새 깃털 틈속으로 보이고
그 새끼 새는 알속의 수분에 젖어 있었다.
성은의 모습이 그 애처로운 새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 일까?.
이렇게 갑작스럽게.
이렇게 예고도 없이.
나를 붙잡으며 위태롭게 세상에 나와 있는 성은씨는 누구인가요…?
당신은 소리내어 웃을수도 없고
소리내어 울수도 없고
소리내어 사랑한다는 말도 고백 못하겠군요.
누구든 , 가지고 있는 그 소리가 당신에게는 없습니다.
한 사람을 가슴에 품으면 그 사람으로 인해 다른 세상이 보이는것일까?.
민준으로서는 지금까지의 생에 단 한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말을 할수 없는 사람들의 소리를 잃어버린 고통이 처연하게 다가왔다.
그랬다
민준은 가슴속에 성은을 품고 있었던 것이엿다
민준이 고서점에서 성은을 처음 본 그 순간 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