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둑어둑 어둠이 내려 앉은 공원은 희미한 가로등불과 스산한 바람만 가득 맴돌고 있었다.
선아는 7시를 조금 넘긴 시간 까지 건우가 오지 않자,,,,걱정스러운 마음이 조금씩 들기시작했다.
'무슨일이지? 약속을 안지키는 애는 아닌데....'
선아는 연신 손목의 시계를 쳐다보며,,,조금씩 시려오는 발을 잠깐씩 동동 거렸다.
7시 30분이 조금 넘자,,,,저 멀리서 건우의 모습이 보였다.
선아는 어두운곳에서 걸어오는 건우의 처진어깨를 보며,,한눈에 별로 좋지 않은 일이 건우에게 일어낫음을 직감적으로 선아는 느낄 수가 있었다.
-너 지금 머하자는 거야? 최소한 약속시간은 지켜줬어야잖아....
선아는 무척 화가 난것 처럼 건우에게 쏘아붙였다.
-미안해,,,,사실은 아까부터 와 있었어....
건우는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채,,,,신발 끝으로 땅바닥을 부비고 있었다.
-뭐야? 그럼 진작 말을 하지, 뭐하구 있엇어?
선아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기가 원했던 말이 어쩌면 건우 입에서 나오지 않을것 같았다.
'만약....다른 이유라면,,,뭘까,,,,,'
건우는 선아가 쏘아붙이는 말에도 아무런 댓구도 없이 고개만 떨군채 바닥만 부비고 잇었다.
-건우야, 일단 나 지금 너무 춥거든. 어디 들어가자.
-그래,,,
선아와 건우는 커피숍에서 마주 앉아 있었다.
커피숍 직원이 커피를 가지고 올때까지도 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앗다.
선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날 만나자고 한 이유가 뭐니?
-저기....
-말해....
-저기....선아야,, 사실은 너한테 부탁이 있어서 만나자고 했어.
-......
선아는 건우가 부탁이있다는 말에...자신이 그동안 기대했던 말들이 순식간에 허공으로 흩어짐을 느꼇다.
그리고 도데체 그 부탁이 뭔지...몇달동안 잊고 지내다가 갑자기 나타나 부탁이 있다는 건우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선아는 담배 한개피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리고 말하기를 머뭇거려하는 건우에게 담배를 찻잔 앞에다 밀어 주었다.
-말해바,,,부탁이라는게 뭐니?
건우는 선아가 밀어준 담배갑에서 담배 한개피를 꺼내 물었다.
그리고,,,,하얀 담배 연기를 무릎사이로 불어냈다......
-선아야,,,,사실은 연희가 아이를 가졌어.
선아는 기가 막혔다. 선아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이유가 없었다.
'흰 원피스 이름이 연희 였군,,,,'
-너희 둘 사이에선 있을 수 있는 일 이자나.... 안그래?
선아는 아무일도 아니라는듯 말을 했다.
-그래,,,
-근데 뭐가 문제야? 아이를 지울려구 그래?
-아니, 아이는 낳을꺼야.....
-그럼 그렇게 해...
선아는 갑자기 화가 울컥 치밀어 올랏다.
-그런 이야길 왜 날 불러서 하니? 너한테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여?
-선아야...사실은...연희집에서 우리 사이를 부모님이 반대를 하셔.
그래서,,,,그냥 우리 둘이 나와 살려구 해.
-그래서?
-내가 아직 학생이라,,,,연희를 돌봐줄 곳이 없어. 며칠 연희를 데리고 여기 저기 돌아 다녔지만,,,,마땅히 있을 곳이 없더라....
그래서,,, 너한텐 정말 염치 없지만,,,,너 밖에 생각 나는 사람이 없었어.
너라면 날 꼭 도와줄수 있을거 같았어,,,,선아야 부탁이야,,,,,
내가 조그만 방 하나 구할때까지만 연희를 너희 집에서 좀 돌봐줄수 없겟니?
-너 미쳤구나?
선아는 더이상 건우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건우의 얼굴에 따귀라도 한대 날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건우의 얼굴을 보니 너무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건 자신도 알수 없는 일이었다.
선아는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나왔다.....
선아는 자신의 다친 마음보다 .... 한때는 몸을 부비고,,,,사랑의 말을 나누었던 남자가,,
자기에게 와서 또 다른 여자를 부탁하는 저 남자의 모습이 너무 가슴 아팠다.
-넌 내 생각은 전혀 안중에도 없구나,,,,나도 나름데로 너를 그냥 편하게 친구처럼 생각하려고 노력했어, 넌 내마음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니?
-미안해,,,선아야,,,,
더이상 선아는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연희를 데리고 잇어야 할 이유도 없었다.
선아는 자리에서 일어 났다.
-니가 저지른 일이니까, 니가 알아서 해. 그리고 이제 우리는 모르는 사람이야,,,,너 같은 애,,,,, 이제 정말 잊을 수 있겠다,,,,잘가,,,,
선아는 흐르는 눈물을 닦앗다.
그리고 이제 건우란 남자를 영영 잊어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어쩌면 오랫동안 원망하고 미워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돌아서는 순간,,,,,그 자리에 연희가 서 있었다.
선아는 연희와 건우를 번갈아 쳐다봤다. 지독했다.....
건우는 이미 연희를 선아에게 부탁하려고 같이 왔던 것이다.
건우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한방울,,,,,두방울,,,,,
-언니...선아 언니 맞죠?
연희가 말했다.
-언니 미안해요....저 때문에 오빠가,,,,,
연희는 작은 손가방 하나를 들고 있었고...어깨에는 건우의 잠바처럼 보이는 옷을 걸치고 있었다. 아까 공원에서 건우가 추워 보엿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오빠 이제 그만 가자.....
연희는 건우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선아에게 미안한듯 고개를 약간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리고 둘은 커피숍을 빠져 나갔다.
선아는 머리속이 텅텅 비어왔다.
'도데체...이게 뭐야,,,,나보구 어쩌라구,,,,,'
선아는 건우와 연희에게 왠지모를 미안함과 걱정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잠깐만,,,,건우야~!
선아는 뛰어나가 건우와 연희를 불렀다.
-언니....
-선아야......
-후..... 며칠동안만이야,,,,,따라와.
선아는 이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마음 한편으로 편안함이 느껴졌다. 모를 일이었다.
선아는 한달 전 작은 방을 얻어서 독립했다. 그것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선아의 방은 두명이서 누우면 뒤척일 공간 조차 부족할 만큼 작은 방이었다.
가구라곤 작은 책상 하나와 행거,,,그리고 작은 냉장고와 21인치 TV 가 고작이었다.
-앉어.
선아는 양손에 작은 손가방을 들고 아직까지 건우 잠바를 어중충하게 걸치고 서 있는 연희에게 말했다.
연희는 잠바를 내려놓고 그 자리에 앉았다.
처음으로 선아는 연희를 가까이서 보게되었다.
저번에 흰원피스를 입고 있었을때 보다 더 야위고 헬쓱한 얼굴이었다.
연희는 아마도 지금 입은 옷차림으로 쫒겨낫으리라.....
보진 않았지만,,,,선아는 대충 파악이 되었다.
선아는 자기의 츄리닝 한벌을 내 주었다.
-편하게 입어,,,,
-고마워요, 언니.....
선아는 연희가 옷을 갈아 입도록 방에서 나와주었다. 그리고 주방 한켠에서 담배 한개피를 입에 물었다.
'이거두 끊어야 되는데..... 안도와 주는군,,,,,'
연희가 문을 열고 나왔다. 체구가 작아 보였는데....츄리닝은 그런데로 연희 몸에 맞아 보였다.
-왜 나왔어?
-언니도 옷갈아 입어야 될거 같아서요.
선아는 방으로 들어가 이불과 요를 폈다.
-너 먼저 자...내 걱정은 하지 말구....
선아는 세들어 사는 사람들과 같이 쓰는 평상에 나와 앉았다.
겨울 하늘은 여름 하늘보다 별이 많이 보인다.
그래서 선아는 겨울 밤 하늘을 이뻐했다.
'난 미친년이야,,,,자존심이라곤 눈꼽만큼도 없고,,,,병신,,,,,바보,,,,,,,건우 나쁜자식....'
선아는 자기가 하는 행동이 주제넘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뭔데...뭐때문에.....아,,,,바보같이....거절하지도 못하고...'
저 산 넘어,,,별이 하나 둘씩 져서 넘어갔지만,,,겨울밤은 너무 길었다.
아직도 동이 터올려면 한참이 지나야 했다. 선아는 꽁꽁 언 몸을 움츠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연희는 며칠동안 어디서 어떻게 지냈는지...피곤한 얼굴로...새근새근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연희의 자는 모습이 너무 평화로워,,,,,어디 한군데 찝어 욕을 할 수가 없었다.
선아는 이불을 연희의 가슴까지 끌어 올려 덮어 주었다.
28살 선아의 겨울은 너무도 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