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은을 실은 버스는 어느새 큰길을 벗어나, 시골길을 덜렁거리며 달리고 있었다.
차창밖으로 시선을 고정한채 바라보는 영은
그러면서 주인여자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집에서 연락이 왔어. 아버지가 쓰러지셨대. 며칠동안 다녀와. 마음 정리도 하고......
천천히 푹 쉬었다가 오렴. 그리고 진우 총각은 그냥 잊어버리거라. 너가 쓰러진 다음날, 갔더니 아무도 만날수가 없었어. 이미 일주일전에 이사를 갔다던구나.'
'사랑이 이렇게 짧게 내앞을 지나가 버리다니......정말 사랑한거는 맞는건지......가슴이 이렇게 아픈데.......'
자꾸만, 추억을 더듬는 영은의 마음은 착찹했다.
그러면서도 가슴 한 구석에 구멍이 뚫린듯한 진우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은 떠날줄 몰랐다.
어느덧 소똥골에 멈춰선 버스
가방을 든채 급히 버스에서 내려 걷는 영은
눈앞에 펼쳐진 들판은 온통 황금빛이고, 언덕 아래 노란 들국화가 다복다복 피어 있었다
'여긴 이렇게 풍성하고 넉넉한 가을인데, 내마음은 왜 이렇게 추운거지'
얼마를 걸었을까?
냇가에 물 흐르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 지더니 저만치 고향집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앞에서 깨를 털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이자 영은은 애써 밝은 얼굴을 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얼마후,
아버지는 누운채, 영은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의 야위고, 병든 얼굴을 바라보자, 조금전까지 진우를 생각한 자신이 원망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잊어버리자. 그의 말대로 잊으리라고......
-내가 널 시집 보내고 죽어야 하는건데........
아버지는 말씀을 겨우 힘겹게 하셨다
-또 그 말씀이세요. 너희 아버진 눈만 뜨면 저소리를 하신대니.........
-아버지 저 시집 안 갈꺼에요. 가족들이랑 평생 살꺼에요
아무뜻 없이 건넨 영은의 말은 아버지의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너 지금 무슨소릴 하는게야.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도 하구 아이도 낳구 해야지 살아있는 동안 너 결혼해서 사는걸 볼수만 있다면........
아버지는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영은은 아버지의 눈가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조심스레 닦아주었다.
-그렇게도 제가 시집가는 거 보고 싶어세요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는 아버지
마당의 어머니는 고추를 널다말고, 영은이 나오자 기다렸다는듯이 말했다
-너희 외삼촌이 사는 마을, 옆 동네 총각이라는데....... 몇해 지켜보았는데 그만큼 성실한고 선한 사람이 없다 던데, 어찌 한번 만나 볼테여
-엄마두 제가 시집갔으면 좋겠어요
-무슨 소리야. 당연히 가야지
-엄마두 그 사람 봤어요
-난 보지는 못했지만, 외삼촌이라면 믿을 만한 사람일게야. 비록 촌에서 농사를 짓고 있지만........난 너가 비록 가진것 없는 집에 가더라도 너만 바라보며 아껴주는그런 사람과 결혼했으면 한다
-아버지처럼요........만나볼께요
-그럴테야 너가 싫다면 굳이 만나진 않아도 돼
-아니에요.
-그럼 내가 외삼촌한테 연락해 보마. 좀 쉬거라. 피곤할텐데.......
영은은 결혼하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얼굴을 보며 더이상 혼자 살겠다고 고집 부릴수 없었다
자신의 생각을 접으며 아버지가 살아 계실때 결혼을 하리라 결심했다
그 작은 결심이 그렇게 빠른시간에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 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