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무슨 일일까?
영은은 그날이후, 쇼윈도 밖의 지나가는 사람들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아이를 업은아줌마, 나이든 아저씨, 젊은연인...........
그 많은 사람들속에서 진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가게 문이 여러번 열렸지만, 역시 진우는 한번도 찾아 오지 않았다.
그렇게 한달이 다 지나고 보슬비가 내리던날
그렇게 기다리던 진우에게 연락이 왔다.
-영은아! 전화 받어. 진우 총각인데.......
영은은 하던 일을 멈추고 얼른 뛰어가서 수화기를 받아들었다.
-여보세요. 진우씨
왠지 힘없이 보이는 그의 목소리였지만 영은은 너무도 반가웠다.
-나 청림다방인데, 지금 나올수 있어. 꼭 할 얘기가 있어
-지금요.......
가게서 급히 나온 영은은 쇼윈도에 잠깐 멈춰서서
분홍빛 원피스를 입은 자신의모습을 비추어 보면서 들뜬 마음으로 보슬비조차 느끼지 못한채 급히 발길을 옮겼다.
며칠만에본 진우의 얼굴은어디 아픈사람처럼 창백해 보였다.
-어디 아파요? 안색이 안 좋아요. 혹시 내가 야단치려고 하니까, 괜히 겁나서 그러는거죠
대체 어떻게 된거에요. 한달 동안 연락도 없이........
-그게.........우선 차부터 시키지
가까이에서 그렇게 말하는 진우를 바라보던 영은
먼곳에 있는 듯한 거리감이 느껴져 왠지 모르게 불안해 하고 있었다
-그날, 많이 기다렸지. 미안해 못가서..........
-아니에요. 얼마 안 기다렸어요. 일이 있어서 조금 기다리다가 갔어요
그때 테이블 위로 두잔의 커피가 놓여 졌다
-마셔.
-네
-영은아! 우리.......있잖아.
평소와 다르게 심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너무 낯설다
-우리.........아무래도 그만 만나야 될거 같아
찻잔을 들고 있던 영은의 한손이 흔들리다 멈췻했다
-무슨일........있어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영은의 떨림과 불안을 모르는지 진우가 뭔가를 결심했다는 듯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다시 말을 이어 갔다
-나 곧 멀리 떠나.공부하러........그때 얘기했지. 의사가 되기위해.......여길 떠나야 됐어
-나 기다릴께요. 오빠가 공부 다 할때까지 여기서 기다릴께요
-아니, 기다리지마. 나 다른 여자와 결혼해서 떠나는거야
'다른 여자와 결혼해서라고.'
영은은 싸늘한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이세상 모든것이 멈추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혀 한동안 아무말 할수 없었다.
-진우오빠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거에요. 제가 잘못 들은거죠
-아니
처음보다 더 차가워진 목소리, 냉랭한 진우의 시선
-내말 잘들어. 내꿈을 이루기 위해서 너를 포기하기로 했어 그래서........
-그래서 의사때문에 날 포기 한다는 거에요. 왜 내가 있으면 의사가 안되는 거죠
날 떠나야만 의사가 될수 있나요. 그 여자가 있어야만, 의사가 될수 있나요. 진경의 말이 모두 사실이었군요
-제가 돈 벌어서 학비 보태 줄께요. 뒷바라지다 해줄께요 저 자신있어요
-영은아! 곧 결혼해. 어머니를 설득할수가 없어. 내겐 그런 용기가 없어
-한달동안 연락 없다가 이제와서 한다는 얘기가 떠나겠다고요......그것도 다른여자와 결혼해서........그걸 나 보고 믿어라는거에요. 진우씨 그런 사람 아니잖아요. 그렇게 비겁한 사람 아니잖아요
-아니 난 비겁해. 그러니까 너도 날 잊고 깨끗이 다른 사람 만나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그렇게 살아줘.
-그때 나한때 믿어라구, 날 포기 안한구 해잖아요
-미안해
-날 사랑하기는 했나요? 아님 진경이 말처럼 그전 호기심이었던가요
-..........
-왜 대답을 못하죠
-........널 사랑한적없어. 그러니까 날 잊어줘
'날 사랑한적 없다고. 거짓말. 거짓말이야. 제발 거짓말이라고 말해줘요'
영은은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마음속 자신은 어떻게든 진우씨를 붙잩아야 했지만 냉정한 말인 내뱉어지고 있었다 자존심이었을까?
-오빠 정말 나쁜사람이군요. 지난 한달 동안 가슴 조마해하면서 하루하루를 불안속에서 보냈는데 그사이 다른 여자와 떠날 준비을하고 있었다구요. 더구나 날 사랑한 적이 없다구요. 그럴께요. 당신 같이 나쁜 사람 깨끗이 잊죠.
영은은 눈가에 젖어 흐릿해지자 자신도 모르게 일어서서
뒤도 돌아 보지 않은채 뛰어나오다가 힘없이 주저 앉고 말았다
'이게 내몸인가.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몸. 온모의 에너지가 모두 빠져 나가는 느낌
그러면서도 어쩌면 그다 다시 뛰쳐 나와 다 거짓말이라고, 잘못했다고 말해주기를 막연히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는 결국 나오지 않았다
'정말 사랑이 이런거구나. 슬픔이었구나. 기쁨은 너무도 잠시였는데.........'
영은은 비오는 거리를 걷고 있었다
빗물이 흐른 뺨위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래 용서하지 않을 테야.
얼마후, 영은은 옷가게 문을 겨우 열었고 안에 들어오자 쓰러지고 말았다
밖에서 저마치 건물뒤에서는 진우가, 비를 맞으며 그런 영은을 바라보며 힘없이 돌아섰다
그의 눈가도 빗물과 함께 젖어 있었다.
-미안하다 영은아! 날 용서 하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