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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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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나날


BY 엄지공주 2003-10-27

 

가게안의 영은은 옷을 정리하다 말고,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런 영은을 주인여자는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하던 재봉틀을 멈추며 영은에게 다가 섰다.

 

-너한테 옷 줬다는 그 남자때문이냐?

 

-...........

 

-니눈이 반짝이고 있는 걸 보니 그런 모양이구나. 니 얼굴에 씌여 있어. 나 지금 연애중이라구

 

-정말요. 그렇게 보여요.

 

-맞긴 맞는 구나. 나도 참 너만 할때가 있었는데........나까지 기분이 좋아 지는걸.

 

고개를 끄덕이며 걱정스레 말하는 영은

 

-그런데 그집에서 아마 절 안 받아 주실꺼에요

 

-왜 너만한 처녀가 어디 있다고...........착하고 이쁘고 부지런하지. 단지 키가 좀 작다는게 흠이 지만.........뭐 키 커봐야 뭐 하니...........하늘 뚫을 것도 아닌데..........

 

-그것보다.........사실은 그 남자........예전에 제가 식모살이 했던 집 아들이거든요. 그리고 다시 만나게 된거구요

 

-아 그러냐...........그렇담  정말 인연인게로구나. 벌써 몇년의 세월이 지냈는데.............너희들이 좋으면 됐지. 앞서 걱정은 말거라. 중요한건 너희둘의 마음만 안 바뀌면 되는거야

 

-정말 그럴까요? 그러면 될까요?

 

-걱정말............양반은 못 되겠구만

 

주인여자 앞으로, 영은의 뒤로

언제 왔는지 진우가 와 있었다

 

-안녕하세요

 

진우의 목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선 영은

 

-아니 언제 왔어요

 

영은을 보며 그냥 미소로 대답하는 진우, 주인여자를 보며

 

-잠깐만, 이 아가씨 빌려 가도 될까요?

 

-글쎄, 영은이는 대여로가 비싸지만, 오늘만 봐 주지.

 

-네  고맙습니다.

 

 

 

 

-참 좋으신 분 같아

 

가게서 나오던 진우가 먼저 말을 건넸다

 

-네 정말 좋으신 분이에요

 

-그럼 너 그때부터 계속 저기서 산거야?

 

-네

 

-이렇게 가까이 있는줄도 모르고.........왜 한번도 찾아오지 않았냐. 마음만 먹었다면 찾아올수도 있었을텐데............하긴 우리 엄마와 진경이가 너한테 한걸 생각하면.........

 

-아니에요. 다 잊었어요. 모두 지난일 인걸요

 

그때 진우가 살며시 영은의 손을 잡았다.

영은은 머리속에 있던 불안하던 마음을 애써 잊은채 그 따스한 손길을 뿌리치지 않았다.

 

 

 

두손을 마주 잡으며 걷던 그들 뒤로 차가 한대 지나가고 있었다.

그차의 뒷자리엔 진경과 그녀의 어머니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진경은  머리를 의자 깊숙이 파 묻은채, 차창밖을 무심결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후 그녀의 눈에 두손을 잡고 나란히 걸어가던 두 여인의 뒷모습이 들어 왔다.

 

부러운 눈길로 그들 연인앞을 어느새 스쳐 지나가던 진경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멀어지는 백미러속에 두 연인이 진우와 영은의 얼굴이었기에..........

 

-어머머, 어떡해, 오빠하고 영은이 아니야, 아니 어쩜 이 기집애가...........

 

-아휴 깜짝이야. 갑자기 왠 호들갑이냐. 오빠하고 영은이라니.........

 

옆에 있던 그녀의 어머니도 그말에 멀어지는 그 두사람을 확인하고 말았다

 

-아저씨,저기 오는 사람 오빠 맞죠. 그렇죠.

 

- 맞네. 사모님 차 세울까요?

 

-아뇨, 그냥 가요

 

-아니 엄마, 왜 그래.......

 

어머니의 의외의 말에 당황한 진경

 

그러나, 주인여자는 그 시선을 애써 잊으며 뭔가를 결심한듯 했다.

 

 

 

-참 그때 연못속에 붕어들 잘 지내고 있죠

 

영은과 진우가  생선가게 앞을 지날때 영은이 갑자기 생각난듯 물었다.

 

-아니 너가 떠가고 얼마후에 한마리가 죽더니, 또 얼마후에  두마리가 다 죽었어

 

-정말요? 오빠가 잘 좀 돌봐주지 그랬어요

 

-아마 그때 나도 누군가가 떠나서 슬퍼서 돌봐줄 정신이 없었거든

정신을 차렸을때는 이미 늦어구.......그러니까, 이젠 너나 정신 없게 하지마

 

-오빠나 그러지 말아요.

 

시장터로 가는 길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수집에 영은의 발걸음이 멈췄다

 

-왜 국수 먹고 싶니?

 

얼마후 그들앞으로 따뜻한 국수가 놓여 졌다

진우가 나무 젓가락을 반으로 나눠 영은이 앞으로 놓아 두었다.

언젠가 이 자리에서 아버지와 함께 먹던 국수가 생각난 영은은 그런 국수를 하염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어쩌면 영은은 처음부터 국수가 먹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국수집에서 아버지와 함께 먹던 그 시간을 되새김질 하고 싶었는지 몰랐다

 

-너 왜 그래, 배 안고파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버지 생각이 나서요. 언젠가 오빠집에 식모로 있을때 아버지를 시장에서 만난적이 있었는데, 아주머니가 장 보라 주신 돈으로 아버지 국수를 사 드렸거든요

 

-정말 그런 비리가 있었단 말이지.

 

-네

 

-그래두 너가 행복해 보여서 다행이야

 

-맞아요. 저 지금 행복해요. 상점안의 옷들을 진열하고 손님들에게 맞는 옷을 골라 주며.......그리고.......

 

-그리고, 다음에 내 얘기가 들어가는거 맞지.

 내가 있어서 더없이 행복하다고........

 

영은은 말 없이 웃어 주었다.

정말 그렇다고.........오빠가 있어 주어서 너무 행복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