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은이 그곳에서 지낸지 일주일쯤 지나서였다.
양장점 이씨는 방을 치우다가 우연히 구석에 떨어진 봉투 한 장을 발견했다. 봉투겉에는 받는 사람의 주소가 또렷이 적혀 져 있었다.
이씨는 어젯밤 영은이 펜으로 뭔가를 글적거리고 있었으며, 자신이 들어가자 급히 감추려 했던 것이 생각나서 살며시 봉투속의 편지를 훑어 보았다.
<엄마, 아버지,그리고 동생들 보렴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그러니까, 제 걱정 마세요. 그리고 식모살이하는 집에서는 나왔어요. 나온 이유는 다음에 말씀 드릴께요. 그리고 새로운 곳에 취직 했어요......... >
그렇게 적다 만 편지를 읽고 있던 이씨는 영은을 급히 불렀다.
-내 왜 거짓말 했냐?
영은은 그제서야 자신의 편지를 쥐고 있던 이씨를 보았다.
-저 죄송해요. 사실은 제가 집에 가족이 있지만 갈수가 없어요. 저번에 식모살이 하던집에서.........
영은은 이층양옥집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말해 주었다
-그래도 그렇지.
-그럼, 저 여기서 일 못하게 되는 건가요?
-왜 하고 싶냐?
-네.
-하지만 난 가족을 속이고, 거짓말 하는 사람과는 같이 일하지는 않는다. 네말대로 너가 그 믿음 없는 곳에서 일하수 없어서 나왔듯 내게도 중요한 건 신용이야. 사람과 사람에 대한 믿음........
그렇게 영은을 타이르듯 말했지만, 이씨는 영은을 이미 놓치고 싶지 않았다. 며칠동안 영은이 자신에게 보여준 성실함고 부지럼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씨는 한동안 아무말이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 가게문을 닫고 영은과 함께 소똥골을 다녀 왔었다.
이씨는 자신도 놀랬다. 문을 닫을 정도로 영은이를 곁에 두고 싶어 했다는 자신에게........
이씨는 영은의 부모님을 찾아가서, 영은이 자신의 가게에 취직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언제든 집에 일이 있거나, 가족이 보고 싶으면 보내 주겠다는 말고 함께
영은은 그렇게 해서 그곳에서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되었다.
*
영은이 그 양장점에서 지낸지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어느새 4년의 세월이 흘렀다.
다시 봄이 찾아 오고 영은은 어느새 스무살이 되었다.
양품점에서 상호가 바뀐 <금은실>옷가게
그곳은 거리의 화려한 봄처럼 오색빛의 옷들로 가득채워 졌다. 그 옷들은 영은의 정성스런 손길 하나 하나 묻어 있지 않은것은 없었다.
영은은 많은 옷들 중에서 고민하며 몇개의 옷을 쇼윈도에 걸어 놓고 있었다.
-어때요 아주머니......
이씨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영은은 키는 그다지 자라지 않았지만, 이미 스무살의 세련된 아가씨가 되어 있었다.
-제법이다. 눈썰미가 나 보다 더 좋은데.........역시 젊은 사람의 눈이 나은가봐.
-아니에요. 아직 아주머니 따라 갈려면 모랐는걸요......그리고 모든게 전부 아주머니 덕분이에요.
-그러냐? 근데 어제 잠꼬대 하더라 어서오세요 ...안녕히 가세요....
-정말요? 또요
-그게 다 프로가 다 됐다는 의미야. 난 밤에 잠자는 시간도 모자라는데 넌 꿈속에서 까지 옷을 팔고 있지 않냐?
참, 아이구 내 정신 좀봐........잠깐
-네
이씨는 가게의 재봉틀 구석쪽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영은에게 건넸다.
-이게 뭐에요.
-한번 풀어봐.
-와 이쁘다.저 주시는 거에요.
상자안에는 연분홍빛 원피스가 있었다.
-입어봐.큰건 아닌지 모르겠다.
-꼭 맞아요. 어떻게 이렇게 맞춘 옷처럼 꼭 맞을수가 있어요. 그리고 너무 이뻐요.
그옷을 입은 영은은 이리저리 거울에 비춰 보았다.
-너 몸에 맞췄으니까........너 잘 때 내가 몰래 사이즈 쟀지.안그러면 쪼그마한 너한테 옷이 맞겠냐.
-정말요. 그럼 일부러 절 위해 만드신 거에요.
-그래,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옷이야
-고마워요. 아주머니
-고마워 할 필요 없어. 앞으로 더 잘 하라는 뜻으로 주는거니까, 그옷에 니 어깨가 무거워.
-네. 잘 할께요.
영은이 고마워 한건 비록 옷때문만이 아니었다. 자신을 위해 옷을 만들어 준 따뜻한 마음이었다.
영은은 그런 이씨의 마음을 닮고 싶었다.
'몇 십년후 나도 저런 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