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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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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뜰의 추억


BY 엄지공주 2003-07-28

일요일 오후,

주인여자는 외출중이라 집에는 영은과 그들 형제뿐이었다.

 

뒷뜰 수돗가에는 이불 두개가 담겨 있었고, 영은은 이미 빤 옷가지를 마당의 빨랫줄로 들고 왔다.

 

그 마당으로 진경이 무언가를 들고, 영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영은은 모른척  그 방향을 향해 옷을 털고 있었다.


-어휴 차가워.

짜쯩스런 진경의 말투


-어, 너 언제 거기 있었니? 몰랐네

영은은 능청스런 미소를 감추며, 그제서야 뒤를 돌아 보는 척 했다


-너야, 본래 둔하니까, 그것보다 너 내 숙제 좀 해 줘야 겠어

-난 그런거 할줄 몰라. 그리구 이집에 일 하러 왔지 숙제따위 하러 온거 아냐

........해야 겠어. 진경의 그런 말투가 영은은 늘 싫었다.

 

-뭐 이게.....숙제따위라구. 시키면 해야지. 안하는게 어디 있어.

책 읽고 감상문 쓰는 건데, 내가 지금 책 읽을 시간이 없거든. 책이랑, 원고지 마루에 두고 갈때니까,  올때까지 해 놔.

숙제 해 놓은거 보고 마음에 들면 노란 원피스 너 줄수도 있어.


‘줄수도 있다고. 준다는게 아니고......줘도 니건 안 입어’

 

-나 오늘 할일 무지 많아. 일 해 보고........

 

-아뭏든 해 놓는 걸로 알고 간다

 

진경은 영은의 불확신한 대답을  듣고서도 분명히 할꺼라고 믿었는지

분홍치마를 나폴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영은은 마루에 진경이 두고 간 책이 가끔 눈에 거슬렸지만, 묵묵히 일만 했다. 시간이 남아 돈다해도 아예 처음 부터 할 생각도 없었다. 

영은은 곧 이불을  빨기 시작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

진경은 무슨일이 있었는지 짜증스런 얼굴로 분홍치마속의 다리로 대문을 거세게 차고 있었다


-대문 열여져 있어.

안에서 들려오는 영은의 목소리


마당으로 들어온 진경

한눈에 들어 온 것은 자신이 두고간 마루에 그대로 놓인 책과 원고지였다.


진경은 마루 가까이 가서 이것저것 펼쳐 보다가, 아무것도 해 놓은 것이 없자 잔뜩 얼굴을 지푸리며, 마루위의 책과 원고지를 집어 던져 버렸다.

 

-이게 뭐야. 그놈한테 바람 막고........영은이, 이거는 숙제도 안 했놨다 이거지.


진경은 뒤뜰로 갔다.

빨래줄에는 아직 물기도 채 마르지 않은 하얀 이불과 옷가지들이 바람에 너풀거리고 있었다.


주위를 잠시 살피던 진경은 이불과 옷들을 손에 잡히는 데로 땅바닥으로 마구 떨어 뜨렸다.


-나쁜 계집애. 내말이 우습다 그거지.


그러면서 부엌의 영은에게로 가서 시침미를 떼며  말했다.

-너 빨래 다시 해야 겠더라. 바람이 불어서 이불이랑 옷 다 떨어 졌던데......


-여름인데, 무슨 바람이........

 

영은은 재빨리 뒷뜰로 가 보았다.


그곳에는 이미 떨어진 옷을 진우가 하나둘 주워 들고 있었다.

-진경이 짓이지


영은은 큰 대야에 다시 그 빨래와 이불을 담으며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내 이걸 그냥.........

 

그러면서 진우가 가려하자 영은이 막았다.


-그러지 마세요. 진경이 야단치는 거라면 그만두세요.

 

진우는 영은의 그말에 잠시 생각했다.

 

그렇게 된다면 또 영은이 힘들어진다는걸 알았기에......그래서 그대로 행동을 멈추었다.


-그래, 대신 내가 도와줄께. 내가 이불 헹굴테니까, 넌 옷들 헹궈.

-네. 고마워요. 오빠!

-그래. 너한테 그 소리 들어니까 기분 좋은데..........

-저두, 이말 하니까 기분 좋아요.


진우는 큰 대야에 온통 흙투성이인 이불을 넣은후 바지를 걷고, 신발을 벗은후 그안으로 들어가서 마구 밟고 있었다


-잘하지 않냐. 사실,아까 너 하던 거 봤거든. 이렇게 하는거 맞지

-네. 흙탕물만 씻겨 내려가면 돼니까, 그렇게 세게 누르지 않아도 돼요.


하나의 이불을 다 헹구고, 물기가 빠지도록 두었다. 진우는 이마에 땀이 맺혔다. 힘들다는걸 느꼈다.


‘이렇게 힘든걸 혼자서 저 아이 혼자서 다 했구나’

그  생각에 안쓰럽게 영은을 바라보는 진우


그때, 큰대야에 호수를 대고 있는 진우는 이마를 닦던 영은을 바라보자 장난기가 발동했다. 호수를 영은의 이마에 대며 뿌리고 있었다


-앗 차가워. 하지 말아요. 진우오빠!

-어때, 시원하지 않냐. 하하하


영은은 일어서서 도망가고, 진우는 그게 더 재미있다는 듯이 마구 뿌려대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있던 진경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왁자한 웃음소리에 일어났다. 창문을 열어 그 소리가 나는 뒤뜰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뭐야. 웃겨.  오빠 누가 지 오빠래는 거야. 땅콩만한게 어디 오빠한테 꼬리를 쳐. 나쁜 계집애. 식모 주제에........물 장난이나 해.

엄마는 대체 왜 아직도 안 들어오시는거야. 저꼴을 봐야 하는데........ 


-어휴 시끄러

진경은 이층 창문을 세차게 닫았다.

 

그순간 머리속을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진경은 야릇한 미소를 띄며 급히 아래층으로 내려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