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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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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층 양옥집 사람들


BY 엄지공주 2003-07-22

상구댁과 영은이 도착한 곳은 소똥골에서 그리 멀리 않는 읍내의 중심가에 자리한 이층 양옥집이었다.

 

상구댁이 벨을 누르자, 주인여자가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들을 마루로 올라오게 했다.


-이애군요. 열다섯살 이라면서....... 대개 어려보이네.

 

우유와 커피 한잔을 테이블위에 올려 놓으며, 주인여자가 영은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영은도 그 여자를 바라 보았다.

 

어딘가에 차가움과 도도함이 느껴졌지만, 주름이 잡기 시작한 사십대 여자의 고운 얼굴

 

-얘가 키도 작고 어려보여서 그렇지 뭐든 시켜주면 잘 할 꺼에요.

-그거야 시켜봐야 알테고...........아뭏든 수고하셨어요.

 

-이거 얼마 안돼지만 차비라도 하세요

 

주인여자는 봉투 한 장을 상구댁에게 건넸다.

 

-뭘 이런걸.........

그러면서 상구댁은 슬며시 봉투를 받아 넣고 이미 신을 신고 있었다.


-잘 있거라. 영은아! 이 아주머니 말씀 잘 듣고.......잘해야 한다.

-네


상구댁이 나가자, 여자는 영은을 데리고, 마당으로 나왔다.

-짐들고, 날 따라 오거라.


마당을 지나, 구석 모퉁이를 돌아 뒤뜰로 갔다.

 

뒤뜰은 그다지 넓지는 않았지만, 작은 화단이 있었고, 그 옆으로 연못이 있었다.


그 연못 맞은편에 작은 방이 하나 있었다. 여자는 방문 앞에 멈춰 섰다.

 

-여기가 앞으로 너가 지낼 방이다.

들어가서 짐 정리하고 안채로 오거라. 난 부엌에 있을 테니.......

-네.


옷을 갈아 입은 영은은 방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맞은편, 연못안의 물고기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와 잠시 그쪽으로 다가섰다. 자세히 보니 붕어 세 마리가 그 작은 연못에 헤험치고 있었다.


영은이 안채로 들어가자, 주인여자는 집안과 할일을 대충 설명해 주었고, 지켜야 할 것도 얘기했다.


-항상 여섯시에 일어나서 마당부터 쓸고 부엌으로 와.

마루에서는 조용히 걷구. 절대 뛰면 안된다. 또, 집에 불났는 일 말고, 절대 큰소리 내서는 안돼. 그  어떤일이던간에.........

내가 밖에 외출 하는 일이 자주 있으니까, 혼자 있을 때 낯선 사람한테는 절대 문 열어주지 말고........다른건 차차 말 할꺼구. 혹시 너 궁금한거 있으면 물어보거라.


-저 근데, 중학교 보내 준다고 들었는데........

-어 그거.......

여자의 갑자기 안색이 굳어졌다.


-일 좀 하다가....내년이나 되면......

-네.

 

영은이 바랬던 대답은 아니었지만  부정을 하지 않는다는것에 만족했다.


-그것보다 좀 있으면, 우리애 들 올 시간이니까, 이층 올라가서 방 좀 치우고 마루 닦거라. 끝나거든 부엌으로 오구.

-네



잠시후 앞치마를 맨 영은은 걸레를 들고, 이층으로 올라 갔다. 온통 나무빛깔의 바닥은 깔끔했다.

-닦을게 뭐가 있다구.


이층에는 두개의 방이 나란히 있었다.

영은은 인형 하나가 걸려진 안쪽 문부터 열었다.


세트로 된 분홍빛 이불과 케텐

책꽂이의 많은 책들과 책상, 침대, 옷장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자신의 시골 방과는 너무도 다른 방. 마치 다른 세계에 온듯한 영은은

멀뚱하게 서서 방을 훑어 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창문을 열어 젖혔다.

햇빛 사이로 바람이 틈틈이 들어 왔다.


아래를 바라보니 뒷뜰이 한눈에 들어 왔다. 연못이며, 자신의 방문과 화단들이 .........

 

-우와 멋진걸.

이층 건물에 올라와서는 처음 느끼는 기분이었다.


곧 침대에 걸쳐진 잠옷을 주워 들어 옷걸이에 걸었다.

바닥에 떨어진 책이며, 큰 물건등을 대충 정리하고 걸레질을 해 나갔다.


그러다가 닫혀진 옷장문 사이로 옷의 끝자락이 끼여 있는 것을 보았다.


영은은 걸레질을 하다말고 옷장문을 열어 젖혔다.

- 와! 이쁜옷 대게 많네.

 

영은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꽃무늬 원피스를 몸에 갖다대며, 거울앞에 섰다.


그때 였다. 방문이 확 열리면서 영은 또래의 한 여자아이가 들어왔다. 이집딸 진경이었다.

 

진경은 책가방을 책상에 확 벗어 던지며 영은을 잔뜩 노려보았다.


-야 너 누구야! 누군데 내방에 들어와서 함부로 내옷을 만지는 거야.

 

그러면서 그옷을 확 뺏어 들었다. 그때 진경은  자신의 발밑에 축축한 뭔가를 느꼈다.


-이건 또 뭐야. 어휴 더러워!

그제서야 자신이 바닥에 걸레를 밝고 있다는 걸 알았다.


-너 우리집에 온 식모니? 누가 걸레 만진 손으로 내옷 만지라 그랬어. 그 옷 당장 빨아와. 아휴 더럽게.....


그러면서 옷을 확 집어 던졌다. 그옷은 영은의 얼굴을 덮어 버렸고, 영은이 옷을 얼굴에서 떼어 내며 말했다.



-내가 사실 일부러 그런게 아니고.......

-됐어. 내방에서 당장 나가줘. 그리고 내 허락 없이 함부로 내방에 들어오지마. 기분 나쁘니까.


영은은 옷과 걸레를 주워 들고 방을 나왔다.

 

-어휴. 나쁜 계집애. 내가 참는다.

그리곤 주먹쥔 손으로 문에 대며 몇 번 때리는 시늉을 했다.


그때, 학교에서 막 돌아와 서 있던 진우와 눈이 마주쳤다.

진우는 그런 영은의 모습을 힐끗 바라보는 이내 옆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옷은 뭐야

부엌으로 영은이 들고 온 잠옷을 보며 주인여자가 물었다.


-네 이거.......

 

영은이 우물쭈물하고 있자, 진경이 부엌으로 들어오며 앞서 대답하고 있었다.


-엄마! 그거 내가 빨라고 한거야.

- 이거 새옷이라 한번도 안 입었잖아.

-그래도 빨아야 돼. 글쎄 제가 걸레잡은 손으로 내옷 입으려고 하잖아.

........더러워서 빨아 달라고 한거야. ..... 뭐 저런애가 다 있어.


-어휴. 별나기는.....영은이 너 정말이냐?

 

주인 아주머니는 영은을 쳐다 보았다.


-네. 입어려고 한건 아니고, 그냥 대어 보았던것 뿐이에요.


-아뭏든 너 조심하거라. 진경이 방이든, 이 집 어느곳 물건이든 함부로 손 대지 말어.  깨끗이 청소만 하고 그자리에 그대로 두면 돼. 알았니?

-네

-다시 이런일이 있을 때는 가만 있지 않을 테니까........

 

그러면서 주인여자는  밖으로 잠시 나갔다.


-나 물 한잔 만 줘.

진경은 식탁 의자에 다리를 꼬며 앉았다.



-응, 잠깐만 기다려.

영은은 사기컵을  들고 진경이 앉은 자리앞에 거의 다가섰을 때 였다.


진경이 영은의 다리를 일부러 거는 바람에  물컵이  허공으로 날아다니더니

' 쨍그랑'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이 나고야 말았다.


-앗! 차가워. 이게 뭐야.........

그때, 부엌으로 다시 들어서던 주인여자의 얼굴로 물이  튀고 있었다.


-어휴, 넌 이런 심부름도 못하니? 그러면서 무슨 일을 한다고 그래.


-쯧쯧.........여자가 칠칠 받기는...... 넌 왜 그리 조심성이 없냐!

그리고 진경이 너두...... 물은 니가 떠 먹도록 해. 니 물 떠 받치라고 식모 들인거 아니니까.


-아......알았어. 난 가까이 있으니까 떠 달라고 한건데


-죄송해요. 아주머니

그러면서 영은은 진경을 바라보았다



진경은 그런 영은의 시선을 피하려는 듯 물을 마시며, 다른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앞으로 조심좀 하거라.  저 컵 당장 치우지 않고 뭐하고있어


영은은 깨어진 컵 조각을 주섬주섬 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