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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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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열다섯살에, 소똥골을 떠나다.


BY 엄지공주 2003-07-21

  

저녁에 영은모가 조용히 영은의 방으로 들어 왔다.


-너,거기 간다고 했다며......

영은은 어머니의 뜻하지 않는 조용한 목소리가 의외였다.


큰소리로 야단이라도 칠줄 알았지만, 이미 말릴수 없다는 듯 담담했다. 하지만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네. 엄마도 허락해 주세요. 전 괜찮아요.  이 시골에 있는 것도 싫고 답답해요. 벗어나고 싶어요.


-미안하다. 난 너가 여길 그렇게 떠나고 싶어 하는 줄 몰랐다. 진작에 알았더라면......

-그러니까, 너무 걱정 하시지 마세요.

-그래, 하긴 널 언제까지 여기 붙들어 놓고, 살림만 시킬순 없어니까,......하지만, 힘들면 언제든지 편지 하거라. 바로 데릴러 갈테니까.


-네. 그럴께요.

-엄마가 괜히 미안하구나.

-아니에요.



-누나 어디가?

옆에서 엄마와 누나의 말을 듣고 있던 영수가 벌떡 일어나 영은 옆으로 다가왔다.

-응, 누나 공부도 하고 돈 벌러 가.


-왜

-응. 그건 누나도 공부도 하고 싶고, 돈을 벌어야 영수랑 형아가 좋아하는 고기 많이 먹을수 있으니까.

-응 그렇구나.


-영수야! 누나가 돈 벌어 올때까지 잘 있어야 돼. 부모님이랑말씀 잘 듣고 형아랑 잘 놀고....알겠지. 누나가 편지 할께.

-그러면 나도 같이 가면 안돼. 나 누나랑 헤어지는거 싫단 말이야.


-영수 보러 자주 올께. 돈 많이 벌어서 영수 좋아하는 진빵이랑 양과자도 많이 사 올께. 영수 그거 좋아하잖아.

-그래도 과자보다는 누나가 더좋은데........


-영칠인 누나 어디 간다는데 하나도 안 슬픈가봐


옆에 엎더려 아무렇지 않게 숙제를 하고 있던 영칠을 바라 보며 영은이 말했다.

그제서야 영칠은 하던 숙제를 그대로 내버려 둔채  방문을 세차게 닫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녀석 많이 섭섭한 모양이다. 괜히 그런거니까 신경쓸거 없어. 본래 제가 너희 아버지 닮아서 속정은 많아도 표현을 못하는거... 알잖니?

그런 영칠을 바라보던 영은모가 말했다.


그날밤, 영은은  늦게 까지 우는 영수를 달랬고,

영칠은 누가 볼까 몰래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영은이 떠나기로 한 아침,

새벽부터 일어난 영은은 목욕을 하고, 저녁에 미처 챙기지 못한 짐들을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낡은 책상서랍에서 네식구가 찍은 가족사진 한 장 꺼내 바라보고 있었다.



-밥 안 먹을 꺼여. 늦어면 어떡 할라구 그래.


밖에서 들려오는 영은모의 목소리에 영은은 알았다고 대답하며

급히 사진을 그 가방안으로 넣었다.



-우와 오늘 맛있는거 대개 많다. 고기국에다가, 생선도 많구......야! 신난다.

평소와 다른 아침 밥상을 본 영수의 말이었다.


-쯧쯧........지 누나 떠날는 것두 모르고.........철없기는........

금방이라도 눈물인 날듯한 슬픈표정으로 영은을 바라보며 영은모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래, 무슨일 있으면 편지 하구.

-네 아버지


영칠은 수저를 든채 밥을 먹지 않았다.

-영칠이 너 밥 안 먹어. 너 좋아하는 생선 고기 많으니까, 실컷 먹어

영은이 생선 쟁반을 영칠이 가까이에 두었다.


-아, 됐어. 배 아파서 안 먹을래요.

그러면서 영칠은 대문밖으로 나가 버렸다.



영은은 알고 있었다.  영칠이 배아픈 것은 거짓말인 것을.......

자신을 보내는 슬픈마음의 표현이란 것을.........


그랬기에 가족중 누구도 밥 안 먹어서 야단을 친 것도, 배가 어떻게 아프냐고 아무도 물어주지 않았다.



-영은이 떠날 준비 다 한거여

아침을 다 먹은 직후, 상구댁이 외출준비를 한 채 영은집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버스시간 늦겠네, 퍼뜩 가자구

-그래, 얼른 가거라. 버스 놓치면 안되니까,

영은모가 마루위에 있는 큰가방을 딸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영수야! 잘 있어 누나 돈 많이 벌어 올께.

영은은 엄마 치마폭에 안겨 있던 영수을 안아 주고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갈께요. 아버지

-그래, 일 있으면 편지 하구.

-네.


-상구댁 잘 부탁해요.

애처럽게 딸을 훔쳐보는 영은모


-걱정 말어.

그러면서 상구댁이 앞장을 서서 골목 밖으로 향했다.


영은은 바로 따라가지 않고 뒤돌아서, 주위를 둘러보며 아까부터 보이지 않던 영칠을 찾고 있었다.



-근데, 영칠이 어디 갔어요

-글쎄다. 방금까지 있었는데..........섭섭해서 그러는 모양이니까, 얼른 가라. 늦겠다

-네.



영은은 할수 없이 영칠과 작별 인사 하는 것을 포기한채 마을 입구의 버스 타는 곳까지 걸어 나왔다.


그때였다.

-누나아!

영칠이 버스타는 곳까지 거의 다다랐을 때, 영은에게로 뛰어 들었다.


-그래, 영칠아!

영은은 아무말 없이 울고 있는 영칠을 안아 주었다.


- 잘가.......편지 해. 꼭......그리고 이거

영칠이 뒷 주머니에서 하얀 조약돌 하나을 영은에게 건넸다.


-돌, 참 이쁘네.


-선물이야. 누나! 냇가에서 제일루 이쁜걸로 주운거야. 이거 보면서 내 생각 많이많이 해야 돼.

 

-그래, 알았어...........영칠아! 부모님 말씀 잘 듣고, 동생 잘 보살피고 학교도 잘 다녀야 돼.... 돈 많이 벌어서 영칠이 좋아하는 고기 많이 사 올께.


영은은 조약돌을 받으며, 영칠의 두손을 꼬옥 잡았다.


그때 저편에 덜렁거리며 버스 한대가 그쪽으로 오고 있었다.


-아 뭐해. 버스 오구 있는데, 퍼덕 오지 않구

상구댁의 말에 영은은 힘 없이 영칠의 손을 놓았다.


영은은 돌아서서 이미 와서 멈춘 버스위에 올라 탔다.


영은은 자리에 엉거주춤 앉았다.


곧 버스가 출발하자, 창문 너머로 멀어지는 소똥골의 일부와 영칠의 모습이 금세 스쳐 지나는가 싶더니 어느새 멀어지고 있었다.


영은은  영칠이 건네 조약돌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드디어 소똥골을 떠나는 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