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이 양반이 밥때가 됐는데...... 왜 여직 안 오는거여
영은모는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파를 다듬으며 대문쪽을 쳐다 보고 있었다.
그때 옆 집에 살던 상구댁이 들어오고 있었다.
-아침 일찍 웬일이래요. 밥 먹으러 올 사람은 안 오구.....
-내가 언제 볼일이 있을 때만 왔던가........아직 식전인가봐.
그러면서 상구댁은 마당 가운데에 놓인 마루에 걸쳐 앉았다.
그시간, 영은은 정지(부엌)에서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상위에 반찬을 올려 놓고 밥을 퍼 고 있었다. 그러면서 밖에서 들려오는 상구댁과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저번에 얘기 했던거 생각해 봤어.
-저번에.........뭐요. 혹시 영은이 말이에요. 글쎄요. 전 그런데 관심이 없어요. 아무리 돈이 궁해도 딸년을 식모살이로 보내서 편해 지라구요.
아뭏든 지가 알아서 할꺼니까 이제 그만하세요. 영은이 듣겠어요.
-식모살이가 아니라니까......식모한테 돈 주는 거 봤어. 학교도 보내 줄수 있다니까, 이제 겨우 열다섯살인 애를 시집 보내겠다고......그래도 스물은 넘겨야지.
-..................
-그동안 가 있으면 되겠구만. 다 큰애를 이런 촌구석에 쳐 박아 놓는 것보단 도시로 나가서 이것 저것 눈도 넓힌후에, 시집보내는게 더 낫지 않겠어.
말을 안해서 그렇지, 영은이 지도 얼마나 답답하겠어.
아마 그럴 것이여 ............
-집을 떠나 보내더라도 식모살이 그런건 안 시킬꺼에요. 공장에 보냈으면 보냈지
-평양감사도 지 싫다면 그만이니까.....알았어.
그럼 이만 가봐야겠네. 난 일부러 생각해서 다시 말해 본 건데......
상구댁은 마루에서 일어섰다.
그때, 영은이 밥상을 들고 나와 마루에 올려 놓았다.
-왔는 김에 밥이나 먹구 가지 그래요
파를 다 다듬은 영은모는 일어서서 옷을 털며 밥상을 내려다 보며 말했다.
-아 됐구먼. 많이 들 먹어라구.
그때 영은부가 집으로 들어섰다.
-밭에 일이 좀 많아서요. 식전이면 아침이라도......
-아 됐구만.......서방 아침 굶을까봐 세빠지게 기다리던데......어서 가서 아침 많...이 드시구먼.
-저 양반이 식전부터 왠일이래.
손을 씻고 수건에 닦으며 영은부가 말했다.
-아.....아무일도 아니어요. 집에 가다 들렀겠죠. 뭐
영은모는 굳이 그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알게 된다면 펄쩍 뛰며 쓸데없는 소리한다고 야단칠게 뻔한 일이었다.
네식구가 둘러 앉은 밥상위에는 시래기국, 구운 고등어 생선반마리,호박나물무침, 김치가 전부였다.
구운생선에게로만 향하는 영칠과 영수의 젓가락질에 영은모는
슬며시 생선쟁반을 끌여 당겨 생선를 조금씩 떼어내어 아이들한테
고루 나누어 밥그릇위에 올려주고 남은 것은 남편 앞으로 밀어 놓았다.
-치. 엄마는 우리보다 아버지가 더 좋은가봐. 맨날 고기 큰 것은 아버지 다 주고......
입을 삐죽거리는 영칠
-누가 밥상에서 인상이여.
그런 어머니를 보던 영은은 자기 밥그릇위의 생선을 영수와 영칠에게 올려 주었다.
-이것 먹어. 이젠 됐지.
그래도 미련이 남는지 영칠은 아버지앞에 놓인 생선의 큰 조각에서 시선에서 눈을 떼지 못 하며 밥을 넘기고 있었다.
얼마후, 집에는 영은이 혼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손은 그릇을 움직이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복잡했다.
'그래 언제구 여기서 설거지나 하면서 이러구 살순 없어. 돈을 벌어야 해.'
좀전에 상구댁이 한 말이 가슴속에 깊이 박혀 떠나질 않았다. 그 얘기를 들은 후부터 영은은 자신도 혼자서 갈등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릇을 그대로 내버려 둔 영은은 정지 밖으로 나왔다.
영은은 마당의 마루위에 누워 두팔을 머리뒤로 하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그녀가 하늘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그저 하늘이 내려다 보일 뿐이었다.
그랬기에 7월의 아침 햇살이 그녀의 뺨을 비추고 있었지만, 느끼지 못했다.
아침에 밭으로 나가시는 뒷모습 ........
영수와 영칠이 생선을 맛있게 먹던 모습......
애처롭게 아이들을 바라보던 어머니........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자리 잡고 있던 자신에 대한 허전함
국민학교 졸업한지 이미 일년이 지나고, 어머니 대신 집안일을 하고 있던 자신이 한심해 보였다.
-부모님은 계속 늙어가고, 동생들은 조금씩 커가고 있는데......
영은은 뭔가 결심을 한듯 벌떡 일어서서 상구댁으로 향했다.
-아줌마, 계세요
-어, 너 영은이구나. 그래 너가 어쩐일이냐?
-저 다른게 아니구요...... 식모살이인가 뭔가 그거 할께요.
-정말이냐. 근데 그게 얼마나 힘든일인줄 아냐.?
-힘들어도 괜찮아요. 집에서 늘 하던일을 그집에서 하는 것 뿐인데.......대신 학교도 보내준다며요. 이제 집에 있는 것도 싫고....... 아무렴 집보다는 낫지 않겠어요.
아주머니, 저 갈 수 있게 해 줘요.
-그야 힘들지 않지만..........너희 아버지하구 엄마도 아시냐.
-......네.
영은은 망설이다 그렇게 대답해 버렸다..
-정말이냐. 너희 엄마두 웃긴다. 아침엔 그렇게 펄쩍 뛰어니.......별일이구만.
-제가...... 설득해서 괜찮아요.
-어그래, 남보다 역시 자식이 낫긴 낫구먼. 그럼 그렇게 알고 얘기해 두마.
조만간에 떠나야 된텐데...... 그래도 괜찮냐.
-네. 상관없어요. 그럼 갈께요. 안녕히 계세요
-그래 알았다
영은은 그집을 나오면서 갑자기 마음이 허전해 오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15년동안 지내왔던 이 소똥골을 떠나야 하다니.........그것도 얼마후에 ...........
그래 어차피 떠나야 하는 거라면......
동생들과 헤어질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파왔다.
그래도 영은의 마음에 흔들림이 없었다. 하지만, 그 작은 선택 하나가 자신의 인생에 얼마나 많은 큰 영향을 주었는지는 그땐 모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