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희를 한번 곁눈질로 보며 말했다.
"임신입니다."
"네~"
대답하고 돌아서는데 간호사가 희의 뒤 통수에 대고
"안 낳으실 거지요"
그런다.
"아니요 낳을 겁니다."
당당한 목소리로 간호사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사무실로 돌아온 오후 내내도록 어지러웠다.
퇴근 후 희는 집으로 돌아 오는 길에 마트를 갔다.
눈에 보이는 먹을 것 들을 잔뜩 샀다.
왠지 그래야 될 것 같았다.
그게 뱃속의 아이에 대한 예의 같았다.
오래 전 희는 대학교 다닐때 잦은 하혈 때문에 산부인과를 다닌 적이 있었다.
의사는 희가 임신은 어려울지 모른다고 그랬다.
한쪽 나팔관이 막혔고 정상적인 배란이 안되고 있다고…그런데 지금 임신을 했단다.
낳아야 한다든가, 낳지 않겠다든가, 보다 희는 자신도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것 만을 감사했다. 자신에게 삼일만 시간을 주기로 했다. 결정은 그 뒤에 한다고 혼자 정했다.
회사에는 월 차를 냈다.
전화는 받지 않기로 한다.
요즘 들어 날카로워 지는 자신이 두렵기 까지 하다.
병원으로 간다.
모든 것은 운명으로 돌리며
이 세상의 모든 신에게 용서를 구하며 희는 침대 위에서 아이에게 눈물로 용서를 빌었다.
하나 둘 세엣…희는 더 이상의 숫자를 세지 못했다.
희가 정신이 들었을땐 회복실의 전기장판 위였다.
"정신 드셨네요. 어지러우세요?"
간호사가 말을 건네고 나간다.
이제 모든 상황은 끝나 버렸다.
한 병의 링거가 끝나기 전 희는 간호사에게 빼 달라고 했다.
"집에 가서 편하게 누울래요?"
택시를 타고 집으로 오며 희는 휘청이며 어지러움에 힘들어 했다.
전화기에도 핸드폰에도 남겨진 남자의 목소리.
남자가 싫었다.미웠다. 희는 며칠을 혼자서 아파야 했다.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린다.
"차 희 있니?. 왜 그래 집에 있으면서 전화도 안 받고, 이상해서 내가 왔어, 근데 너 어디 아픈거야?"
희는 고개를 반대 쪽으로 돌려 버린다.
소리 없는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가 어서. 너네 집으로 가 버려"
남자는 의아한 표정이다.
탁자 위의 약 봉지를 보았다.
"차 희 너. 혹시…바보야 말을 하지?. 너는 항상 그래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하고 넌 그게 나뻐 알어"
남자는 담배 한 개피를 들고 베란다로 나간다.
희는 묻고 싶었다.
당신이 알았으면 뭘 해줄 수 있었는데? 라고 말이다.
남자는 그 날 밤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