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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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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상황들2


BY 민아 2003-08-16

남편이란 사람은 이성을 잃었다.

그 자리에 고대로 서서 핸드폰을 열었다.

부인인 내가 지켜보고 있는 그자리에서...

나의 얼굴은 쳐다보지 않았다.

번호를 눌러댄다.

[말해봐...뭐라고 했는데....] 남편의 침착한 목소리가 나의 가슴을 갈기갈기 찟는것만 같았다.

[응......응...........]

[미안해...내가 잘 못해서 그런거야...미안....]

남편은 차분한 목소리로 계속 그여자에게 미안하다는 말만 한다.

도대체 뭐가 미안하다는건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핸드폰만 붙잡고 있다.

그여자가 울고 있나보다.

남편도 아무말을 하지 않는다.

난 더이상 볼수가 없었다. 참을수가 없었다. 내가 있는걸 잊은 모양이다. 저 남편이란 사람...

애들은 지네들 방에서 나오질 않는다.

쥐죽은듯 조용하다.

겁먹은것 같다. 가서 다독거려주고 싶지만...할수가 없다.

지금 남편이라는 인간이 그년과의 통화를 끝내고 나한테로 와서 날 안아주고 미안하다고만 하면 난 다 용서 할수 있을것만 같다.

남편을 기다리고 서 있다.

전화를 끝내기만을 눈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쳐다보지 않고 대화만 하고 있는 남편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다.

20분이상이 흘렀다.

남편이 무슨말을 하는지 내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다리가 후들거려도 난 계속 서있었다.

눈에 보이는건 오직 남편의 얼굴 뿐이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남편이 통화를 끝내고 날 쳐다본다.

'제발..날 안아줘요...나 너무 힘들어요...제발....'

아무말 하지 않고 아이들 있는 방으로 날 지나쳐 간다.

아이들에게 슈퍼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라며 동전을 건네준다.

아이들은 슬리퍼를 신고 현관을 나선다.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아이들도...얼마나 불안할까....

아이들이 나가는 뒷모습을 보니 눈물이 주루룩 흐른다.

 

남편은 아무말 하지 않고 냉장고에서 찬물을 꺼내 마신다.

"다 정리 됐어? 그여자가 그래도 자기가 좋대? 내일 만나기로 했어?

만나서 다시 위로해줘야해? " 난 소릴 질러댔다.

날 쳐다보지도 않는 남편의 뒷통수에 대고 ...

 

"그만해...그냥...자초지종이 듣고 싶었어. 궁금했다고..."

짜증스러운 말투다.

"우리 그만살어...난...난 자기한테 아무것도 아닌존재였다구..."

아무말도 아무 댓구도 하지않는 남편이 너무 싫었다.

그여자 걱정만 하는 남편이란 인간이 이젠 너무나 혐오스러웠다.

난 안방으로 가서 가방을 쌌다.

속옷과 여벌의 옷가지들... 주섬주섬 가방에 넣었다.

눈물이 앞을 가려서 아무것도 볼수가 없었지만...

가방을 싸면서도 남편이 나에게 달려와 미안하다고 왜 그러냐고...말려주길 바랬다.

그러면 나도 용서해줄수 있을것만 같았다.

남편은 거실 쇼파에 앉아서 티비만 보고 있다.

"잘있어. 당신이 이렇게 날 처절하게 배신 할줄은 몰랐어.

애들...당신이 경제력 있으니까..당신이 당분간 맡아...힘들면 그년보고 도와달라고 해봐..."

난 ...나와버렸다.

남편이..뭐라고 하는 소릴 들었지만...

날 잡지는 않았다.

다행이도 아이들을 만나지는 않았다.아이들과 맞부딪혔다면 아마 난 그자리에 주저 앉았을거다.

택시가 날 기다리고 있다는듯이 서있다.

망설임 없이 택시를 탔다.

"부산역이요..." 눈물이 너무나 마니 흘렀다.

택시 운전사 아저씬 백미러로 힐끔힐끔 쳐다불뿐 묻지 않는다.

어딜 가야하지 망막하다.

머릿속엔 온통 그 생각만 났다. 그에게만...

친정에 가도 부모님 걱정에 잔소리에...견딜수 없을것만 같았다.

시댁도...

부산역에 내리자 마자... 천안행 새마을표를 샀다.

20분 후에 출발하는...

남편에게서는 전화가 오질 않는다.

무심한 사람...

너무나 억울하다. 복수하고 싶다. 당한만큼 복수하고 싶다.

아이들이 보고 싶다.

너무 울어서 눈은 퉁퉁 붓고 얼굴은 벌겋다.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사람들이 피하고 싶을정도로...추했다.

대충 머리를 다듬고...

파우더로 얼굴을 가렸다.

모르는 사람들조차도 날 알아볼것만 같았다. 남편에게 배신당한 여자라고 놀리는것만 같았다. 가슴이 조여온다.

서두르듯 화장실을 나왔다.

사람들은 벌써 줄을서서 기차를 타려하고 있다.

내 자리는 창가이다.

난 핸드폰을 가방에 넣지 못하고 손에 쥐고 있다.혹시라도 남편에게서 전화가 오지 않을까해서... 난 아직도 남편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바보처럼...

부산에서 천안까지...3시간 20분...

너무나 멀다.

울었던 탓인지..머리가 깨질듯이 아팠다.

기대고 눈을 감고 잠을 청해보지만 남편의 행동들이 자꾸 눈에 아른거린다.

눈을 감기가 두려웠다.

한손엔 핸드폰을 꼭 쥐고...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덧 천안역은 어둑어둑 해졌다.

처음 와본 곳이라 무척 낯설었다.

부산역과 서울역만 보다가 천안역을 보니 너무나 아담했다.

겁이 났다.

그에게 아직 연락을 하지 않았기때문에 천안역엔 나를 마중 나온 사람이 없다.

낯선 사람들이 두리번 거리고 있는 나만 쳐다보는듯 했다.

 

작은 대합실에 비어있는 의자에 가서 얼른 앉았다.

괜히 온것같다. 차라리 그냥 서울로 갈껄....

전화를 했다.그에게...

그가 이제는 다시는 연락하지 않을거라고 하면서 헤어졌는데...걱정이 되었다.

만나주지 안으면 어쩌나...

내가 너무 헤퍼 보인다...내가 불쌍하다고 동정하면 어쩌나...

 

[네...여보세요...] 그의 태연한 목소리다.발신번호로 내 번호가 뜰텐데...

[나야.....]아무렇지도 않은것처럼 대답을 했다.

[어..그래...안그래도 전화하고 싶었어...잘들어갔는지..궁금해서....무소식이 희소식이겠거니..했지....전화해줘서 고맙다...]그는 무척 반가와 했다.

[여기...천안이야....] 내 목소리는 떨리기 시작했다.

[응? 어디? 천안? ] 그가 무척 놀랐나보다...

[천안 어디야? 혼자왔어? ] 그는 너무나 다급하게 묻는다.

[응...천안역....혼자야...근데..아는곳이 없어...나좀 도와줘....]

도와달라는 말을 너무나 하기 힘들었다. 난 말을 마치자 마자 엉엉 울었다.

[그래..나 지금 나갈께...여기서 역까지는 10분 거리니까...조금만 기다려...]

그는 날 안심 시켜주느라 애쓰는듯 보였다.

[응...천천히 와... 고마워....정말....]

10분..

낯선사람들의 움직임이 부산스러웠다.

밖은 벌써 어두워 졌다.

몇끼니를 걸렀는데도 배고픈줄 몰랐는데..뱃속에서 요동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물한모금 마실 기운도 없었지만....

지금은 앉아있기조차 너무 힘들었다.

아직도 내 핸드폰엔 남편의 전화가 오지 않고 있다.

불안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는 기분이다.

어디로 어느쪽으로 그가 오는지도  알수 없다.

눈을 감았다.

차라리...아무것도 안보는게 나을것 같다.

 

"경아...." 그의 목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