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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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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후유증


BY 안젤리나 쫄티 2003-07-21

 

다음 날, 그렇게 우린 축제의 여운을 안고 등교를 했다.


어제의 사건은 어느 샌가 전교에 쫙 퍼져버렸고 등 뒤로 무수히 쏟아지는

시선들을 견뎌내야 했다.

 

젠장, 소원한번 들어준 것 가지고.......

 

쉬는 시간 이었다.

 

“캡짱, 누가 찾는데”


엥?

난 자리에서 일어나 교복 치마에 손을 꽂고 복도로 나가 보았다.


“누가 날 찾아?”


“저......선배님.....”


복도에 1학년생 두 명이 서 있었다.


“늬들이니?  누구지?”


그러자 뒤쯤에 서있던 아이가 앞에 섰던 아이의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앞에 섰던 아이는 얼굴이 빨개진 체 금방이라도 울 듯한 얼굴로

손에 든 걸 내민다.


“이거 받아주세요..”

하고 선물상자 하나를 내밀더니 돌아서서 정신없이 뛰어가 버리는 것이다.


“뭐하자는 액션이냐?”    내 참......

교실로 돌아서니 아이들이 후다닥 창문 곁에서 떨어지는 것이다.


어제일이 그렇게 충격적이었나?

하룻밤 새 변해버린 교실분위기,  영 접수 안되네....


자리에 앉아 선물을 열어보니 초콜릿 상자가 나오는 것이다.

거기에다 분홍색 편지봉투까지......

오 마이 갓!!


맛있어 보이는 초콜릿 하나를 입에 물고 편지봉투를 집어 드는 찰라,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미정이가 봉투를 확 나꿔 채갔다.


“재영이 너 절대 안돼.”


그러더니 쫙쫙 찢어버리는 것이다.


“손미정, 뭐야?  왜 남의 편지를 찢어?”

“글쎄, 안된다면 안되는 줄 알아.  우....더 힘들어졌어....”


“뭐야?”

내 말에 아무 대꾸 없이 미정인 자기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희정아, 미정이 한 말, 무슨 뜻이냐?”


가만히 보고만 있던 짝꿍 희정인 한숨을 푸욱 쉬더니,


“너 어제 엄청난 일을 저질러버렸잖아.  하긴 미정이가 실수했지만......

그 댓가치곤 파장이 대단한 걸?”


“야, 빨리 알아듣게 설명해라,  내 인내심 테스트하지 말고.”


“재영이 너 어젯밤에 공개적으로 커밍아웃 해버렸잖아. 

애들 난리났다, 이제.”


“자세히 말 안할래?”   주먹을 불끈 들어보이자,


“그동안 우리랑 미정이가 중간에서 다 컷트하고 있었는데.......

또 네가 무서워 다들 참고 있었어.   너, 얼마나 인기 많은지 모르지?”


희정이 말은 너무 뜻밖이라 아직도 어리둥절.......


“에고.....미정이 고년 소원성취 하더니 이제 죽었다.  재영이 너 우리학교

캡 우상 아니냐.   미정이한테 키스한거 확실히 책임지지 않으면 미정인 이제

전따 당하게 생겼어.  전교 따돌림.”


“우상?”


“그래, 바보, 너만 모르고 있었지?  네가 레즈 기겁할까봐 애들이 선뜻

대시 못하고 있었던 거야.  휘유......이제 우리 손을 벗어나버렸어.

겨우 막고 있었는데......”


“????”


“네가 레즈 혐오한다고 우리가 엄청 구라 치고 다녔거든.

또 너가 진짜로 싫어하는 줄 알고 있었고.   경쟁자들 없애고 우린

네 옆에 친구로라도 남고 싶어서......“

 

희정이 말은 확실히 충격이었다.


그리고 담날부터 진짜로 구애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조용하던 사물함이 고백편지들과 선물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그 정도로 아이들이 동성에 대해 거리낌 없이 생각하고 있었는지 놀라울 뿐이었다.


그러나 정작 기대했던 얼음공주의 반응은 냉랭하기 그지없었다.

난 답답해 미칠 것 같았다.


내 상처에 대한 보상심리로 닥치는 대로 아이들을 만났다.


그래봤자 단순히 같이 분식집가거나 사진 찍고 영화보는 정도였지만.....

이상하게 아이들은 그 정도에도 굉장히 기뻐하는 듯이 보였다.


다행히 더불어 미정이도 아이들의 표적에서 차츰차츰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미정인 가끔 날 원망 섞인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전처럼 내게 들러붙지도 않고 말도 잘 걸어오지 않았고.


민지 또한 그전보다 훨씬 더 차가운 눈으로 대했다......


그럴수록 난 더 가슴을 비워갔고 아무에게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재영아,  이제 그만해.  내가 잘못했어.”

점심시간에 담배를 피우고 있던 내게 미정이가 다가와 사과를 하는 것이다.


피식......

“뭘 그만하라는 거냐?”


“그때 축제 때 네게 키스한거 정말 후회하고 있어.

네가 이렇게까지 상처받을 줄 모르고...... 미안해.  

그만 예전의 캡짱 모습으로 돌아와 줬음 좋겠어.”


미정이의 말에 난 아무말 없이 담배연기만 내 뱉고 있었다.


‘내가 뭘 어쨌다고 이러는 거야?

나 좋다는 애들 만나준거 뿐인데.....  그런 일이 어떤 기분인지

궁금해서 그런 거 뿐인데.   내까지게 뭐가 대단하다고 그 애들에게

상처 줄 수 있겠어?    뭐가 대단하다고.....

젠장, 별거 아니더만.’

 

"........."


“캡짱이 너무 방황하는 거 같아서......정말 미안해.  제발 예전의

캡짱 모습으로 돌아와줘, 제발.”


가만히 미정이 눈을 바라보았다.

사실 미정이가 다시 예전처럼 나를 봐 준다는 게 뛸 듯이 기뻤다.


난 담배를 입에 물고 검지손가락을 세워 미정일 가까이 불렀다.

미정이가 불안한 얼굴로 가까이 다가가 앉자,


“너 또 나보고 캡짱이라 불렀지?”


“우웩, 내가 언제?”


우린 서로 마주보며 크게 웃었다.

 

벌렁 누워 흘러가는 구름 사이로 길게 담배연기도 쫒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