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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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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공주의 오해


BY 안젤리나 쫄티 2003-07-18

 

대걸레를 들고 화장실 바닥을 빡빡 닦고 있었다.


젠장,

시팔,

담탱이 새끼......뒤지게 팬 것도 모자라 화장실 청소까지 시켜?



“장재영, 넌 오늘부터 정학 5일 동안 하교시간에 맞춰 학교 나온다.

그래서 화장실청소, 화단청소 깨끗이 해 놔라!!

니가 니코틴으로 더럽힌 신성한 화장실과 화단을 원상태로 되돌려놓길 바란다.

알았나?”


신성은 개뿔~~  쵯!!   화장실이 신성하단 소린 머리털 나고 첨이다. 

암튼 담탱이 대가리나 닭대가리나.... 

  

으휴....  이 지겨운 걸 5일씩이나 해야 된다니.....

허리를 펴고 둘러보니 제법 바닥이 반짝이네.

찍.

대걸레를 어깨에 메고 뒤돌아서서 침 한번 뱉어주고 화장실을 나왔다.


“재영아, 어떡해....... 내가 너무 늦었지?

축제때 독창연습 때문에,  음악 샘이 붙잡고 놔줘야 말이지....”

 

그러면서 손미정은 내 어깨에 걸쳐있는 대걸레를 냉큼 가져가는 것이다.


으휴..... 귀찮아.


손미정은 그때 그 사건 이후로 더 내게 들러붙기 시작했다.

 

저번처럼 내게 (감히!) 기습키스를 하던 황당한 접근 방식이 아닌 완벽한 수족노릇을 하며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했던 것이다.

 

“야, 손미정.   너 집에 안가냐?”

으, 지겨운 저 화상.


“너 고생하는데 내가 어떻게 집에 갈 수 있니?  화단 청소 아직 안했지?

자, 가자.  얼른 끝내고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응?”


미정이에게 손목을 잡힌 체 텅 빈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복도를 걸어가며 교실을 들여다보니 축제준비들로 어수선하다.


흠.....한동안 학교 전체가 들썩이겠군.


교정을 돌며 화단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고 잡초를 뽑기 시작했다.

미정인 옆에서 쉴 새 없이 수다를 떨고 난 그 수다 때문에 귀가 멍할 지경.


“야, 손 미정.  제발 입 좀 다물어.  넌 입도 안 아프냐?  네 수다 땜에

시끄러워 골이 울린다, 울려.”

 

내가 짜증을 내자 미정인 갑자기 의미심장하게 나를 바라본다.


“흐음..... 사실, 나 입이 좀 근질거리거든,  내 입 좀 자세히 봐줘봐, 나 정말 병났나 봐.”

 

그러면서 입을 앞으로 쏙 내민 체 내 얼굴 가까이 들이대는 것이다.


으휴.....   “야!! ”

 

웃는 얼굴에 화낼 수도 없구....  내가 씩씩거리자 미정인 깔깔대며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  재영이 너 진짜진짜 귀엽다 귀여워.  이 얼굴이 어디 그 무시무시한 캡..(읍!)  얼굴이냐구.   낄낄낄..”


어휴..... 난 너무 화가나 벌떡 일어났다.

 

“너 빨리 집에 안가?”  소리치자,


“큭큭큭...그래 그래 알았어.  물 떠올게.  화단에 물주기는 내가 할 테니까

얼른 들어가 담탱이한테 보고하고 와.”

 

미정인 어느새 물 조리개를 들고 뛰기 시작했다.


으 휴.....  저게 자꾸 놀리고 있어.


난 목덜미의 땀을 닦으며 굳어졌던 머리를 뒤로 젖혔다.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허리를 주먹으로 톡톡 치고 있는데 누군가 3층 건물에서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듯한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응??

내려쬐는 햇살을 피해 실눈을 뜨고 자세히 바라보니... 저쪽은 우리 교실인데??


민지였다.

민지가 창가에 서서 나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다.


민지임을 안 순간 어느새 또다시 쿵쾅거리기 시작하는 내 심장.

얼굴이 벌개진 체 고개를 돌린 난 민지의 시선 때문에 당혹스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숙제 때문에 매일 남는다더니.....


윽.....미치겠네.

잊으려고 정신차릴려고 그렇게 노력했건만.....

민지가 나를 바라보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기가 흐르는 것 같다.

십만 볼트의 전기가.....


민지는 날 얼마나 한심스럽게 생각할까.....

아니, 관심 밖 중에서도 한참이나 관심 밖이겠지.


에고.....어서 정신 차리자.  장. 재. 영.


머리를 쾅쾅 쥐어박으며 1층 본관 교무실로 향했다.

교무실이 텅 빈 체 담탱이 얼굴이 보이지 않자 혹시 교실에 있나? 교실로 발길을 돌렸다.

인간이 꼭 똥개훈련 시켜요~~


실내화를 질질 끌며 3층 교실로 향했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민지혼자 책상에 앉아 공부 중이었다.


조용히 나가려고 문 쪽으로 향하는데,

“야, 장재영.”

민지가 부르며 내게 걸어오는 것이다.


난 문고리를 잡으려 손을 내밀다 주춤거리며 뒤돌아 섰다.

 

“왜?  최민지?”


“청소 다 했니?”

 

“으...응... 담샘한테 얘기할려고 했더니 교무실에 없길래 혹시 교실에 있나

찾아보러 왔어.”

 젠장, 구구절절 설명하는 꼬락서니 하고는....


난 가슴을 쭈욱 펴고 고개를 뻣뻣이 세웠다.   될 수 있는 한.....


민지는 내 앞에 서더니 팔짱을 낀 체 나를 노려보는 것이다.


윽.....가까이서 보니 민지는 굉장히 예뻤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그리고 집에 있던 동안 내가 민지를 무지 보고 싶어 했었던 것도 생각났다.


순간 난 나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야, 최 민지.  근데 넌 왜 자꾸 날 야리는 거냐?”


내 물음에 민지는 대답도 않은 체 계속 바라보기만 하는 거다.


“씨팔, 남말 쌩 까는 게 네 취미인 걸 깜빡했다.  쳇!!.”


민지의 시선이 너무 부담스러워 얼른 자리를 피하고만 싶었다.

돌아서서 문을 열려는데,


“너도 그런 취미가 있는 줄 몰랐어.  지난번에 본 게 잘못 본건 줄 알았는데

오늘 확실히 알았어.”


뭔 소리??


“야, 뭘 잘못 봤다는 거야?”


“너 손미정이랑 어떤 사이니?   늬들, 아무리 그렇고 그런 사이라 해도 좀

심한 거 아니니?  아무대서나 더럽게 키스나 하고.....더구나 넌 지금 정학중 아니니?”


뭐...뭐...뭐....키..키스???


황당한 말에 대답도 못하고 입만 벌리고 서있었다.


민지는 더러운 짐승 보듯 한동안 째려보더니 예의 그 얼음장막 속의 공주 표정으로 뛰어가 버리는 것이다.


누가 누구랑 키스했다는 거야?


씨팔,

젠장,

 관심받기는 커녕, 짐승취급 당했어.....’


발에 걸리는 의자를 세차게 걷어 차버렸다.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그것보다 가슴이 너무 아파 제대로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그때 복도 쪽에서 날 찾는 미정이 목소리가 들렸다.


주먹을 움켜쥐었다가 슬며시 내려놨다.

‘저렇게 잘해주는데.... 미정인 날 피하지도 않고 진정으로 위해주는 고마운

친군데....’


미워할 수가 없다.  원망할 수도 없고.....


얼음공주의 차가운 시선과 비웃는 듯한 말투가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혔다.


그래, 난 여자야.  내 까지게 감히 널 좋아할 수 있겠니.

명도여고 제일의 퀸카 얼음공주를......

숨 막혀 죽을 정도로 널 좋아하지만 난 남자가 아니잖아.

 

"........."


교실 문을 닫고 복도로 나왔다.

눈물이 뚝뚝 실내화 위로 떨어진다.


그런데 복도 앞쪽으로 물방울이 방울방울 떨어져 있는 게 보였다.


미정이가 날 찾으러 왔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