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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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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2시


BY 르네 2003-07-03

''오늘밤 12시 까지 전화 안하시면 그냥 오빠가 절 버렸다고 생각할께요.''

 

전화를 걸면 그는 언제나 회의중이었다.

망할놈의 회의주의자들..

그 회의란 것은 항상 나에게서 그를 빼앗아 갔다.

하지만 때론 그의 목소리를 듣게 해 주는 작은 비상구 역할을 할 때도 있었다..

 

그는 왠만하면 내 전화를 받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에게 별로 할 말이 없어서...그리고 웃기게도 내 버릇이 나빠질까봐.

버릇이 나빠진다고?

나는 그에게 나이 10살 어린 귀여운 연인이 아니라.

그가 버릇을 뜯어 고쳐서 말을 잘듣게 만들어야 하는 애물단지였다.

하지만 그가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는것은 밤에만 가능했다.

낮엔 사람들 이목때문에 걸려오는 전화를 어쩔 수 없이 받아야만 했으니까..

그럴때 마다 낯설게도 그는 나에게 높임말을 쓴다.

"지금 회의중이니 메시지 남겨주세요..딸깍.."

 

그랬던 그가 낮에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배터리를 빼버리거나..

그의 심기가 불편해 질대로 불편해진 것이다.

하여간 지멋대로다.

하지만 그가 이런것이 어디 한두번인가...인내심을 갖기로 했다..

 

그나마 참으로 다행인 것은

그는 내가 아무리 전화를 많이 걸어도 그걸로 짜증을 낸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자고있는 중이라 할지라도..

10번..20번..1분이상 울리는 벨이 그렇게 많이 울려도 그는 다음날 내게 화내는 적은 한번도 없었다..

덕분에 난 한번해도 안받는다고 절대 바로 포기하는 일은 없었다...

사실 한번에 안받으면 그는 끝까지 안받는다는걸 난 알고 있다.

하지만 내 전화기 창에 그의 이름이 써지는걸 보는것만으로도 난 기분이 좋아졌다.

 

그가 바라는 것도 그런것이었다.

그의 목소리..이름만 들어도 감격해서 눈물을 흘리는것..

나는 그의 사이비종교에 열혈 신자가 되는것.....

그래서 그는 지금도 날 길들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