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이름은 김아름 입니다.
아, 아니다. 원래 학교출석부에 올라있는 이름은 김 복희입니다.
저희 할머니가 어디가서 지어오신 이름이래요.
이름이 촌스럽죠?
첨에는 친구들이 많이 놀렸는데요, 지금은 안놀립답니다. 아름이라고 불러주거든요.
저는 초등학교 5학년이구요, 근데..지금은 잠깐 학교를 안가고 있어요.
아니 못가고 있어요.
하지만 뭐.. 금새 다시 학교에 갈 수 있을거에요.
저는 얼마전까지 서울 강남의 아파트에서 살았어요.
34평인데 그동네에선 작은 평수였어요.
우리 반 친구들은 거의다 50평 넘는데서 살았는데요, 모이면 너희집은 몇평이야 ? 하면서 물어보고서 놀기 시작하구..그랬어요.
저는 애들답지 않게 조숙하다는 소리를 종종 들어요.
근데요.. 저는 조숙하다는게 무슨말인지 모르지만 그소리가 싫어요.
전 몸은 작지만 어른하구 별로 다를게 없다구 생각하거든요.
어른이 별건가요.
어른들은 옳지 않은 일은 안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횡단 보도도 아닌데서 막 길을 건너구,
술취해서 비틀거리구,
막 욕하면서 싸우구...
어른들이 그러잖아요..
전 얼마전까지는 아빠하고 엄마하고 셋이 살았답니다.
근데 지금은 엄마하고만 살아요.
여기는 어디 시골인데, 도시 이름은 잘 모르겠어요.
제가 사는 집은 전원일기라는 드라마 있었잖아요?
거기에 나오는 집이랑 비슷해요.
집 주변은 차소리가 안나서 밤이면 엄청 조용하답니다.
첨에는 귀에 차소리가 안들리니까 정말 이상했는데요, 지금은 잘 들으면 개구리 소리도
들리고 ..그래요.
우리집 뒤로는 작은 밭이 있어요.
엄마는 거기에 호박을 키우시는데 저는 호박꽃을 처음보구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못생긴 사람한테 호박꽃이라면서 놀리는데 그 꽃을 보니 노란게 얼마나 이쁜지 저도 모르게 와아~ 했더랍니다.
왜 못생긴 사람을 호박꽃이라구 했을까요? 정말 이상하죠?
저희집에는 대문이 없어요.
대신 뾰죽뾰죽한 작은 나무들이 집을 에워싸고 있는데 나무 이름을 엄마가 말해줬는데
잘 기억이 안나요.
마루에 걸터 앉아서 다리를 흔들흔들 하고 있으면 참 재미 있어요.
아파트에선 살적에는 이렇게 마루가 시원한건줄 몰랐거든요.
근데 바람이 살랑 불어와서 옥수수를 먹고 있는 내 얼굴로 지나가면 에어콘 바람보다
훨씬 기분이 좋아요.
꼭 내 얼굴을 쓰다듬어주고 달아나는 것 같아요.
마루는 걸터 앉아서 벌렁 뒤로 누우면 머리가 방문에 닿을 만큼 좁지만
아주 반들반들 윤이나게 엄마가 잘 닦아 놓아서 전 여기를 참 좋아해요.
전 요즘 학교를 못가서 심심하지만, 낮에는 책도 보고 이것저것 공상도 많이해요.
점심은 엄마가 차려놓고 가신 밥을 물에 말어서 깻잎 장아찌에 먹거나
오이를 고추장에 찍어 먹어요.
서울서 살때는 먹어보지 않은 것들이라서 그런지 참 맛있어요.
엄마는 제가 맛있게 잘 먹는걸 보시면 엄마는 드시지도 않구서 저를 한참 쳐다만 보세요.
사람 부끄럽게스리..히히
왜 먹을때 가만히 쳐다보면 어색하잖아요.
우리 엄마 취미가 그거라서 절대 그만두시질 못할거 같아서 문제에요.
그냥 제가 모른척 쩝쩝 잘 먹는 수밖에 없어요.
심심은 하지만 곧 학교도 다니게 될거고 전 요즘이 참 좋아요.
밤마다 엄마하구 둘이서 속닥속닥 재밌는 이야기도 하구요, 엄마가 해주시는 동화며
옛날 이야기두 재밌구요..
아..참 우리엄마는 옛날 이야기를 참 잘하시거든요.
무엇보다 좋은건 밤마다 혹시 아빠가 술마시고 들어올까 조마조마 안해도 되서 제일 좋아요.
저희 아빠는 술을 좋아하시는데 술 마시고 들어오시면 엄마를 못살게 굴어요.
어떤때는 방문도 걸어 잠그고 있는데 그때마다 엄마가 소리를 지르셨어요.
엄마는 제게 말씀을 한번도 안하셨지만 저는 .... 다 알고 있었어요.
아빠가 엄마를 때린다는 걸요..
다음날이면 엄마의 팔뚝에 시커먼 멍이 들어있는걸 저는 다 알고 있었어요.
....
여기로 처음 오던날은 토요일 저녁이었어요.
엄마는 전화를 몇통 하시고 가방을 싸서 현관에 놓아두시고 저한테 옷 갈아입고 책가방
챙기라구 하셨어요.
저는 알았어요.
엄마가 도망갈거라는걸.. 날 데리고 갈거라는걸...
난 친구들하고 갑자기 헤어지는게 아쉽긴 했지만 엄마하구 둘이 놀러가는 기분이었어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집이란 걸 알았지만 하나도 아쉽지가 않았어요.
밤마다 내방 침대에 누워서 이불을 머리꼭대기까지 뒤집어 쓰고서
하느님.. 제발 오늘은 아빠가 술 안마시게 해주세요. 하면서 빌지 않아도 되니까..
그까짓 침대쯤은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엄마의 비명소리를 안들으려고 스피커 소리를 크게하고 겜을 안해도 되니까 컴퓨터 쯤 없어도 하나도 아쉽지가 않았어요.
집을 나와서 여기 시골에 도착해 엄마와 저는 배가 고파서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엄마가 너 짜장면 먹을래 하셨어요.
전 아니...나는 짜장면 안좋아해. 그랬어요.
짜장면... 사실은 저 좋아해요.
세상에서 젤 맛있는거 같아요.
근데요..엄마가 그날 기차에서 저금통장을 한참 들여다 보시는걸 저는 봤거든요.
그래서 짜장면 안좋아 하기로 했어요. 그날부터요..
우리는 그날 작은 분식집에 들어가서 라면 한그릇을 둘이 나눠먹고도 조금 남겼어요.
배가 많이 고팠는데 다 먹지 못하고 남겼어요.
지금..
침대도 없고 컴퓨터도 물론 없어서 아주 가끔 생각이 나기도 하지만
밤마다 무서운 꿈을 꾸지 않아서 너무 좋아요.
뒤뜰에 핀 호박꽃이 밤이면 더 노랗게 빛나는걸 아세요?
그 호박꽃 생각을 하면서 자면 무서운꿈을 안꾸더라구요.
오늘은요 아주 특별한 날이에요.
엄마 생신이거든요. 아까 저의 보물인 돼지 저금통에서 천원을 꺼냈어요.
아까 낮에 수퍼차가 왔었는데.. 아.. 이동네는요 며칠에 한번씩 수퍼차가 와요...큰 마트가 없거든요. 읍내나 나가야 큰 마트가 있어요. 우리엄마도 거기서 일하시구요.
그 수퍼차에서 봉지짜장면을 두개 샀어요.
엄마는 짜장면을 좋아하세요. 그래서 제가 생일 선물로 짜장면을 끓여 드릴거에요.
엄마는 밤에나 오시지만 그래서 피곤하시지만 지금은 언제나 웃는 얼굴이에요.
서울 살때는 엄마가 웃는건 잘 볼수가 없어서 웃는 엄마 얼굴이 그렇게 이뻣는지 몰랐어요
뽀시락 뽀시락 ..
저는 지금 손에 짜장면 봉지를 아까부터 만지작 거리고 있어요.
이소리가 얼마나 듣기 좋은지 아세요?
엄마가 제가 끓여준 짜장면을 좋아하실까요?
에게...이게 생일 선물이야 하시면 어쩌죠?
이담에 제가 크면 근사한 중국집에서 짜장면도 사드리고 더 좋은 것도 사드려야겠어요.
서울 친구들에게 밤이면 더 노랗게 빛나는 호박꽃이랑 개구리 소리랑 수퍼차가 오면 얼마나
재미있는지도 보여주고 싶답니다.
오늘은 시간이 참 안가요..
이렇게 짜장면 봉지를 들고 기다리는데도 해가 질려면 아직 멀었나봐요.
빨리 해가 졌으면 좋겠어요.
저 멀리서 엄마의 모습이 얼른 나타났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