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 시작되면서 재인이가 하고 있는 알바를 잠시 하기로 했다.
방학을 이용해서 이태리로 견학여행을 하고 싶었는데........독감에 걸린 재인이가 간곡히 부탁하는 바람에 싫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떠맡게 된 알바였다.
유학생이나 현지인들이 많이 한다는 관광가이드 였다.
재인인 이 알바가 수입도 짭짤하고 고국의 소식도 들을수 있고 해서 고교때도 대학생이라고 속이면서 알바를 했다고 한다.
여행사와 연계해서 하는 알바인데......수입의 70%가 팁이여서 관광일행을 잘만나면 많이 받을수 있다며.....신혼여행 일행은 좀 짜고 40~50대 중년분들이 오는 팀이 팁이 많이 나온다 했다.
교포라고 안하고 국비로 온 유학생이라고 하면 좀더 많이 팁이 나온다며 자기만의 노하우하고했다.
그날 이후로 부쩍 친해진 석영인 내게 굳이 그런 알바를 해야 하냐며 못마땅해 했지만 재인이가 이 알바 자리를 놓치면 다시 일을 잡기가 쉽지 않다고 해서 부득이 하게 내가 맡게 된거였다.
사실 나도 한국어만 하루종일 할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하니까.....석영인 내게 일부러 영어로 말하고 있었다.
자기 발음이 원어민 과는 너무 틀리고......강의 내용중 알아듣지 못해서 놓치는 부분이 많다며 내게 영어 공부를 따로 배웠으면 한다고 했다.
그것도 알게 된지 3개월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고백했다.
생각보다 맘이 여리고 숫기가 없었다.
재인이 요즘 석영이에게 열을 올리고 있는데......너무 적극적인 재인이의 대시에 석영인 감당이 안된다고 했다.
아직 헤어진 여자친굴 잊지 못하고 있어서 이기도 하고.......오래전에 알았던 사람처럼 허물없이 대하는 재인이가 편하면서도 부담이 간다고 했다.
그에 비해 재인인 석영이가 남자치고 너무 순진하고 고지식하다고 하면서 한국의 남자애들은 저런 수준이냐며 어떻게 하면 석영이의 관심을 살수 있냐고 물어왔다.
내 보기엔 둘은 감성이나 생각면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어 잘 맞지 않는것 같지만....석영일 아주 맘에 들어하는 재인이 앞에서 차마 말을 못하고 있었다.
요번에 맡은 팀은 가족팀이였다.
조부모.부모.형제 자매팀 이였는데......모두 12명이였다.
3명의 어린이 까지 포함한 대 가족이였다.
대구에서 과수원을 경영하시는 부모님을 모시고 온거였다.
호주을 경유해서 뉴질랜드로 간다고 하는 가족은 여유롭게 생을 즐길줄 아는 분들이셨다.
본다이비치를 시발점으로 잡고 블루마우틴.한인타운......젊은 며느리들은 벼룩시장 같은델 가고 싶어했다.
그건 여행목록에 없는 건데.......코스에 꼭 들어가 있는 한인타운의 선물가게엔 가고 싶지 않다고 노골적으로 말을 하기도 했다.
바가지 쓰기는 싫다며.......사실 나도 전에 한번 재인이가 꼭 코스로 집어 넣어서 가라고 해서 여행객을 모시고 갔는데......생각보다 비싸게 값을 부르는걸 보고 괜히 내가 양심에 가책을 느꼈다.
나중에 여행객 몰래 내게 건네주는 돈을 받지 않고 나오긴 했지만......같은 동포끼리 폭리가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은 그래도 한인 가게에 들러서 선물을 준비해야 제대로 된것을 산다며 가길 원했고 며느리들은 벼룩시장을 원했다.
벼룩시장 보단 오히려 주마다 열리는 장이 있다며 그리로 데리고 갔다.
물론 코스가 다 끝난 내 개인시간을 할애하면서 데리고 간거였다.
그들은 거기서 핸드메이드인 엽서와 악세서리....주로 원주민들의 토속품등......그릇을 샀다.
알뜰시장에 나온 물건은 거의가 집에서 쓰다가 싫증이 나거나 필요없는 물건들을 내놓는 거라서 값을 싸게 매겼다.
다른 나라의 물건이니 색다른 맛이 나니까.....그릇을 보며 아주 만족해 했다.
남자들은 역시 양주였고......아이들은 쵸코렛등 먹는종류......선물사는 시간을 가장 즐거워 하는것 같았다.
열대과일이 많이 나는 호주인지라....싱싱한 야채며 훈제연어 구이 랍스터등 해산물을 맘껏 즐길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코스대로 움직이길 회사에선 바랬지만......웬지 여행하기가 쉽지 않은 분들 같기에 저렴하게 여러가지를 볼수 있도록 하고 싶어 시내 관광이 끝나고 나서 야시장 구경이며 음식을 싸게 먹을수 있는 가게를 함께 다녀줬다.
나중에 팁을 듬뿍 주려고 했는데......일정한 금액만 받고 다시 돌려주었다.
전문 알바가 아니라 친구대신 이라고 설명을 해가며.....
나중에 재인인 내가 회사 사람들 에게 찍혔다고 했다.
한인타운 상점에서 말이 들어 왔다며......눈을 곱게 흘기기도 했다.
조금이나마 한국사람을 이국땅에서 만나서 실컷 한국 얘기를 해서 인지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그분들이 주고가 김치며 고추장.된장......나이가 드신 분들을 위해서 며느리들이 가지고 온거 였는데.....해산물과 과일에 반해버리신 어른들이 가지고 온것들을 거들떠도 안봤다며 필요하면 주겠다고 해서 팁대신 그걸 달라고 했다.
집에서 담궜다는 김치와 된장은 정말 일품이였다.
석영이를 불러다 맛있는 된장찌게을 끓여서 함께 먹었다.
우현이 대신 자기가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는거냐며 석영인 우현이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제발 이젠 만날때마다 우현이 얘길 하지 말아달라고 했것만 틈만나면 석영인 우현이 얘기였다.
아마도 내가 우현일 잊을까봐 우려하는 뜻에서 그러는것 같았다.
2년 교환 수업이 끝나고 한국으로 들어가면 바로 우현이에게 내 소식을 알릴 애 같았다.
벌써 여기 온지 2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집에서 겨울에 잠깐 들어오라고 연락이 왔다.
큰집은 신정을 세었다.
영국에 있는 연수언니도 들어온다며 다 같이 모여서 보내자는 어머님의 전화가 있었다.
연수언니가 이젠 철이 났는지.....가끔 내 안부를 물어본다고 했다.
정말일까......?
믿음이 안가는 얘기지만......어머님이 내게 허튼 말씀을 하실리는 없을테고......
가을에 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갔던 진수오빠가 호주에 잠깐 왔었다.
이틀 정도 머물고 갔는데.......내가 생각보다 적응을 잘하고 있는것 같아 안심이 된다고 했다.
정말 친오빠 같았다.
택배로 한달 간격으로 어머님이 김치며 다른 밑반찬을 부쳐주는데.....진수오빠가 한국에 들렀다 오는 길이라며 커다란 병에 고추장과 된장을 가지고 왔었다.
일년 내내 한국의 밑반찬이 떨어지는 날이 없는 내 식품 저장고를 보고 다른 유학생친구들이 부러워 했다.
재벌은 이래서 틀리다며....
그애들에게 선심쓰며 사는 요즘이였다.
이태리 밀라노로 견학여행을 준비했다.
석영인 방학동안 제 보충한다며 단기과목을 신청해서 공부한다고 했다.
열심히 하는 학생이였다.
칼라의 나라라는 이태리의 견학이 기대가 되는 나날이였다.
재인이와 사키도 함께 가기로 했는데......교포자녀들 이여서 인지 나와 같은 유학생들과는 달리 놀러간다는 목적이 더 컸다.
이태리남자들이 모두 다비드 상 처럼 생겼다는데 정말 그럴까 하면서 기대가 한창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