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현이와 헤어져 들어온 일요일 오후였다.
아무래도 큰집에서의 생활이라 귀가 시간은 10시를 넘기지 않고 있었다.
외박이나.....그외의 눈밖에 날 일은 하지 않고 있어 두분은 내게 별다른 말씀은 없으셨다.
거의 얼굴 마주할 시간이 별로 없어 나도 불편하다는 생각은 없이 지내고 있었다.
아버진[?]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늘 바쁘셔서 거의 들어오는 날이 없으시다.
요즘은 다섯째 부인에게 자주 가 있으시니까......한달에 3번 이상 보지 못한다.
어머님도 나름대로 사회활동이며......개인 소유의 갤러리를 가지고 계서 늘 외국으로 다니시기에 얼굴 보기가 힘이 든다.
그러니 요양원에 가있는 연수나 지방의 대학에 겨우 붙어 지방에 내려가 있는 민수나...둘다 내 주변에 없기에 난 힘들고 눈치 보이는 생활은 아니 하고 지낼수 있었다.
그래서 일까.....?
날 아는 내 처지를 알고 있는 친구들은 내가 많이 밝아지고 명랑해 졌다고 했다.
며칠전 만난 난희도 내가 많이 좋아보인다고 했다.
우현이 덕이 가장 크지만........자유로운 환경 탓도 있었다.
가끔씩은 엄마가 생각이 나지만........차츰 그것도 기억에서 지우려고 해서 인지...
요즘은 전 처럼 자주 떠오르진 않았다.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이층 방으로 올라서려는데 거실의 불이 켜지면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오는 거냐....?"
이태리에 가신다고 하시더니......오늘 오셨나보다.
"네.....여행은 잘 다녀오셨어요...?"
올라가길 멈추고 다시 아래로 내려왔다.
연한 갈색으로 새로 코팅된 머리의 어머님 이셨다.
여독이 안 풀렸는지 좀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였다.
"잠깐 앉아봐라.....얘기좀 하자..."
내가 들어오길 기다렸다는 말투.....
여독이 역력히 묻어나는 얼굴인데......
무슨 중요한 일일까....?
"너.....요즘도 세일그룹의 막내하고 어울려 다니는 거냐...?"
갑자기 우현이 얘기가 나왔다.
말못하고 고개만 숙이는 날 보더니 어머님은 얼굴을 조금 찌뿌렸다.
"일전에도 한번 언급했지만......너희들 그냥 친구사인거냐.....?아님.....둘이 사귀기라도 하는거냐......?"
"............친구 인데요....."
꺼져가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그런 날 잠시 가만히 보시던 어머님은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하셨다.
"친구사이라니까......넌 허투른 짓 하는 애도 아니고.....아줌마 말론 요즘도 가끔 집에 드나들고 한다던데......그애하고....막내 고모 딸 민정이와 전부터 약혼얘기가 있었다.....넌 민정일 잘 모르겠지만......사교클럽에서 둘이 잘 어울리나 보던데......길게 말하지 않아도 무슨 얘긴지 잘 알겠지.....?네 엄마같은 전철을 밞고 싶지 않거든 처신 잘 하거라..."
'쿵'
커다란 바위 덩어리가 머리위로 떨어지는 느낌이였다.
막내고모?
얼굴 마주 대한적은 한번도 없다.
하지만......재현 그룹의 할아버님이 늦게 보신 딸이라 자식들 중 가장 어여삐 여기시는 분이라는 말은 들은적이 있다.
그분의 딸....?
서민정이라는 이름도 첨 들었다.
사교클럽 이라니....?
우현이가 그런델 나간다 말야....?
"아무리 친구지만.....남녀가 유별한다는 말도 있는데.......이젠 둘다 철부지 어린애도 아니고....적당한 거리를 둬....."
".........."
"......전에도 말했듯이......여기서 조용히 학교 마치면 결혼도 알아서 좋은자리 봐줄 테니까....넌 지금까지 처럼 얌전히 학교나 잘다녀......네가 괜찮은 남잘 데려와도 좋구.....하지만 우리 집안 이름이 있으니......신중하게 잘 골라야 할거야....."
"..............."
"아직 .....좀 이른 얘기 같다만.....아무튼 세일그룹 자제와는 친구로도 지내지 말아.....괜히 막내 고모 귀에 들어가면 너도 그렇지만......내 입장 이라는 것도 있으니까......알아 들었니....?"
정말 기막혔다.
어머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들......
지금까지 내가 겪었던 행복이 여기서 끝이라는 생각이 들 마큼......내겐 충격적인 얘기 였다.
하필.....일이 이렇게 꼬이는 걸까....?
그럼.....어머님은 첨 부터......우현이와 그 서민정이라는 아이 일을 알고 계셨던 걸까...?
그래서 내가 우현이와 만나는걸 탐탁지 않게 여기셨던 걸까....?
그래.....그랬나 보다......
아무말도 못하고 있는 날 잠시 지켜보시던 어머님은 늦었다며 먼저 일어나셨다.
아무 미동도 없이 앉아 있는 날 보며 들어가시면서 마지막 말을 하셨다.
"정리는 빠를수록 좋아......민정이가 너에 대해서 눈치 체기전에 말이다...."
다 알고 계셨구나.....
나랑 우현이에 대해서 이미 다 알고 계신거였다.
이럴수가......
한동안 잊고 있었던 내 처지가......이렇게 다시 뼈아프게 다가오다니....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아까부터 울리는 삐삐소리.....
집으로 들어오면서는 진동으로 바꾸고 있는데......
입고 있는 마의 주머니에서 계속 울리고 있었다.
우현이 일것이다.
늘 헤어져 돌아오면..... 집에가서 바로 삐삐치니까....
어떻게 해야하지.....?
정말 이젠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
머리속이 하얗게 텅 비어 버렸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왜 난 이렇게 태어난 걸까....?
나이도 어린데........왜 이런 아픔이며.....고통을 알아야 할까.....?
단지.....선택해서 태어나지 못한것 뿐인데......
내가 왜 이런 고통의 맛을 알아야 하는건지.....
아무생각이 안들었다.
어차피 결론이 지어진 건데.....
날 지켜주고......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내게 힘이 되어주는 사람은.......이 세상천지 아무곳에도 없는데.....
우현인.......
내 삶에......단 하나....살아가는 이유가 되어버린 아인데....
그앨 내게서 지우라구.....?
내가 살아가는 이유인데?
그런앨 내게서 지우라구....?
정말 너무 한다.
엄마 마저 내게서 떠나게 하더니.....
이젠....겨우 붙들은.....그 하나마저 내게서 가져가려하는 운명이라는 게......
너무 한다.....정말이지......너무하는것 아냐...?
밤새 그렇게 뒤척였다.
자다가 깨다가.....
하얗게 새벽이 밝아오는걸 느끼며 지쳐서 잠든 아침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