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 섶 위에 떨궈진 다시는 못 돌이킬 엇갈림의 핏방울..............
꺼질 듯 보드라운 황홀한 한 떨기의 아름다운 정적........
펼치면 일렁이는 사랑의 호심아.......
계절이 엇갈리듯이 꽃도 숨죽일 때가 있지......>
컴을 켜자, 띵하는 가벼운 벨소리와 함께 <박 두진>의 <꽃>이 메모로 둥실 떠 있었다.
<기혁씨, 당신..시계바늘이고 싶어.... 그래서, 당신 주위를 계속 맴돌고 싶어.....그래서, 시시
콜콜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기혁씨에게 관한 한 모든 것을 알고 싶어...>
나경은 오랫동안 가슴에 담고만 있던 마음을 화면상으로 올려놓고서도 끝내 그런 자신의 마음을 전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것이 서러워 또 다시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승규 아닌 기혁에게 그녀의 속마음을 있는대로...솟구치는 대로 드러내 버리고 싶은 충동에 연신 잇몸을 아프게 깨물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무서워졌다.
거울 속에 내비치는 나경의 얼굴은 무슨 일이고 저질러 버릴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확연히 느껴졌다.
언제부턴가 거울에 비쳐지는 자신의 얼굴에 나경은 섬찟섬찟 무섬증을 느끼고 있었다.
언제 어느 때고 일상에서 이탈해버릴 것 같은 다짐같은 것이 느껴지곤 했었다.
"얼마나 아팠길래 얼굴이 그 모양이야? 약은 먹은 거야?"
"어? 어..응...이젠 괜찮아."
아주 사소한 거짓말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남자를 끼고 하는 거짓말은 처음이라 그녀의 가슴은 주책없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나경은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얼굴 표정의 변함 없이 거짓말을 주절거리고 있었다.
띠띠.......
에구머니나! 놀래라....
"니 핸드폰인 것 같은데?"
"어? 어...그러네..."
나경은 가방 속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상대방의 전화번호도 없이 음성으로 메시지가 남겨져 있었다.
"아무 때고 네게 전화해 나야하며 말을 꺼내도 누군지 한번에 알아낼 너의 단 한사람..쇼윈도에 걸린 셔츠를 보면 제일 먼저 네가 떠올릴 사람..너의 지갑 속에 항상 간직될 사람..네게 그런 사람이 나일 순 없는지....."
<김 경호>의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이란 노래가 말 한마디 없이 남겨져 있었다.
누구인지 생각해 낼 필요도 없었다.
틀림없이 분명히 기혁 일테니...그와 전화 통화를 할 때면, 늘 김 경호의 노래가 들려오곤 했으니..
"누구야?"
"으응...친구...노래를 보내왔어..."
"좋겠네. 그렇게 노래를 보내주는 친구도 있으니 말야."
"저기 레코드 가게에서 좀 세워줘... 잠깐이면 돼,."
레코드 가게로 달려들어가 나오는 나경의 손에는 기혁이 좋아하고, 즐겨듣는...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좋아지기 시작한 김 경호의 테이프가 쥐어져 있었다
"누구 노래야?"
"김 경호..."
"김 경호라...그 친구를 좋아하게 된거야?"
"좋아하게 됐다기 보다...뭐...그냥..."
"난 그 친구 노래는 이해할 수가 없어...."
"왜?"
"사랑해선 안될 여자를 사랑한다는 류의 노래가 많잖아."
"요즘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의 스타일 자체가 그런 걸, 뭐..."
"그렇기도 하지만....그 친군 특히 농도가 짙어. 그리고 난 락은 싫어."
싫고 좋은 것이 너무나 분명한 승규를 쳐다보면서, 나경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일찍 좀 자라."
"응?"
"너, 컴에 너무 매달려 있는 것 같다고 어머님께서 걱정하시더라. 그리고, 요즘 니 얼굴이 핼쓱하니 아픈 사람 같아 보여."
"응...."
"들어가 쉬어라."
무슨 의무나 되는 것처럼, 나경은 시야에서 멀어져 승규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때까지 서 있었다.
따르릉.
"나야, 뭐해?"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이 받으면 어쩌려구........
곁에 있지 않아도 ''뭐해'' 라고 묻는 그의 음색에서 역한 알코올 내음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오늘도 술 마셨어요?"
"야, 정말 미쳐버릴 것 같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에요?"
믿고 있던 절친한 친구의 배신으로 사업에 빚만이 남아 그저 숨어살다가 이제 간신히 일을 시작하게 된 사람인데.......
"무슨 일이냐구? 너 말야. 왜 그렇게 냉정한 거야? 왜 난 너처럼 냉정해지지가 않는데 말야. 넌 엄청 냉정하다. 그거 알아??"
이 사람아. 그런 척하기가 더 힘든 거란 것을 왜 모르는 거야? 꼭 말을 해야 하는 거야?
"널 만나면 말야. 어떨까 생각했었지. 그리고, 널 만나고 나서도 그 전처럼 널 좋아하고 사랑하게 될까 생각했었다구......내 말 듣고 있는 거야?"
"듣고 있어요."
"난 니가 보고 싶어서 미쳐버릴 것 같은데 넌 아니지??
"기혁씨...."
"내 이름이 장 기혁이라는 건 나도 알아. 말해, 말해봐...넌 어떤지. 내가 싫어진 거니? 왜 전화 안 하는 거야? 왜 컴에도 들어오지 않는 거야....."
한 마디의 대답으로 모두 끝나버릴 장황한 기혁의 질문은 집요하게 계속되었다.
"나에 대한 환상이 끝나 버린건가?"
차라리 그렇게 됐다면 얼마나 좋겠어...애초에 당신에게 무슨 환상이 있었던 것은 아니야...
나경의 볼에 떨어지는 눈물에 쳐다보기라도 한 사람처럼 기혁이 말했다.
"전화상으로 코멩멩이 소리를 낼 때 참 잘 우는 구나 생각했었는데....너, 정말 잘 울더라. 무슨 말만하면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잠시만 말을 않고 생각에 잠겨있어도 이내 울어버리고...."
"......"
"난 니가 ...나 이상으로 날 원하고 있다고 생각했어. 내 생각이 틀린 거였니??"
그녀 자신도 그에 못지 않게...아니, 그가 바라는 것에서 열 배는 더 그를 원하고 있었다고 말해주고 싶은 것을 참으면서 나경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렇다면, 이거 하나만 물어보자. 나랑 자기를 원하는 여자가 있다...그 여자랑 자도 돼??"
이 인간이 도대체 무슨 말을 듣고 싶어서...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람 염장을 지르는 거야!!!!!
그의 말은 사랑할 수 없다는 비애감에 젖어 있던 나경을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다는 절망감으로 내몰아 그녀의 가슴을 갈갈이 찢어 놓았다.
"왜 말이 없어? 어머니라도 들어오신 거야?"
"아니...."
"근데, 왜 말이 없어?"
"기혁씨가 이렇게 잔인한 사람인 줄 몰랐어....."
"뭐?"
그 앞에서 더 이상 울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 앞에서 더 이상은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러나,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물이 주룩 흘러내리고 있었다.
안돼, 가지마 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새삼 절실해지면서 기분이 말할 수 없으리만큼 서럽고, 서러웠다.
"사람이 왜 그렇게 잔인해? 하고 싶으면 말없이 해버리면 그만이지, 그걸 묻는 저의가 뭐예요? 내가 무슨 자격이 있다구...."
"난 충분히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는데....내가 사랑하는 여자니까...날 사랑하는 여자니까...."
"알았어...안 나갈께."
"나가고 안나가고는 기혁씨 마음이야.....하지만, 정말 너무해...내 입장을 훤히 아는 사람이 어쩜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화내지마..."
"화라도 낼 수 있는 입장이라면 좋겠어....화라도 낼 수 있다면..."
가슴이 갈갈이 찢겨지는 느낌이었다.
눈에서는 쉴새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그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부분이 한정되어 있었던 나경은 안경에 얼룩이 지도록 울어대었다.
남자치고는 부드러운 그의 살결이 다른 여자와 맞닿는다는 생각에 다다르자, 작은 여자의 가슴은 무너져 내려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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