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연락처도 알수없는 그녀를 향한 나의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일고 있었다. 오랜만에 갖어보는 설레임에 가슴떨림도 있었지만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안타까움에 화가 나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뾰족한 수도 없으니 답답할 따름이었다.
그녀연락을 내내 기다리다가 업무가 끝나면 헬스장을 다녀와서 저녁도 거른채 컴퓨터 앞에 앉아서 9시가 되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리는것이 하루중의 클라이막스라고 할정도로 내일상이 정해져버렸다.
그리고 한두시간동안 나누는 대화는 가끔은 유치하고 또 가끔은 우습기도 하고 나혼자만 느끼는 감정일테지만 더러는 숨이 막혀오기도 했다.
한삼일을 만나달라고 애걸하다가 겨우 약속시간을 얻어냈다. 비가 촉촉히 내리던 토요일 6시, 그녀의 아파트 근처의 초등학교 후문앞에 차를 주차해두고 기다리는데 아무래도 그녀가 내차를 나를 알아보지 못할것만 같은 초조한 맘에 내려서 기다리는 성의까지 보였는데, 6시가 되기 한참전부터 기다린탓이었을까? 한시간은 족히 기다린것 같은 지루함에 시계를 보니 15분이 지나고 있었다.
왠지 석연찮게 대답을 준것으로 보아 바람을 맞을수도 있겠구나 싶어 안타깝고 아쉬웠다.
그런맘이 들어서인지 맞을만하던 빗줄기도 왠지 거세어지는 듯했고, 아마도 20분은 족히 넘게 맞고 서있어서인지 옷도 머리도 제법 젖은듯 느껴졌다.
별생각없이 그녀가 올법한 방향으로 걸었다. 해가 구름어딘가에 숨어있어서인지 비는 내리지만 제법 환했다. 하늘을 올려다 보니 내리는 비모양은 내얼굴을 피해서 내려주는 것 같지만 눈은 뜰수가 없었다. 비가 내얼굴로만 떨어지는것처럼 차가웠다.
누군가 우산으로 날 치더니 우산아래서 날 올려다 보았다.
"영화좋아한다더니 이런것도 해요?"
무슨얘긴지 모르기도 했지만 환한곳에서 그녀를 얼른 못알아본것과 늦었지만 나와줘서 반가운맘에 멍해있는 날향해 그녀가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 그러고 있지 않았음 모르고 지나쳤을거예요. 차만 찾았지 사람은 눈여겨 보지 않은채로 왔거든요. 근데 후후...이상한 사람같아보여서 피해갈려고 보니까 눈에 익네요. 그리고는 아는사람이니까 좋은쪽으로 해석해준거에요. 영화주인공 흉내한번 내보나보다 라구요."
"그래. 무슨 영화주인공같던가요?"
"그러고 있었어도 주인공같진 않았구요. 후후...흉내내나보다 했다니까요?"
우린 자연스럽게 그녀가 쓰고 오던 작은박쥐모양처럼 보이는 검정우산을 나란히 쓰고 걷고 있었다. 하지만 워낙에 우산을 높이 받친나머지 어깨를 스치거나 팔을 감을수는 없었다. 또 비도 그리 많이 오지도 않았다. 아쉽게도......
어느새 차앞에 당도하자 문을 열고 타는 바람에 대화는 거기서 끊기고 내가 무슨영화의 누구같았는지는 들어보지 못했지만, 어렴풋이 짐작은 할수 있었다.
아마도 쇼생크탈출의 마지막장면을 생각하고 있었던게 아니었을런지하고......
그렇게 비내리는 거리를 벗어나서 한적한 곳을 찾을양으로 30분을 넘게 헤매고 다녔지만 익숙하지 않은 지역이었고 또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두리번 거리던 나는 어느새 외곽쪽에 새로생긴 신도심으로 들어서고 있었고 말없이 음악만 들었다.
신도심의 번화가인 그곳은 음식점과 여러종류의 바와 DVD방이 많이 있었다.
적당한 곳에 주차를 하고 그녀에게 묻자 밥보다는 가볍게 맥주한잔 하는것이 좋겠다고 하자 그러자며 찾은곳은 젠느라는 이름의 제법 근사한 바였다.
많은 얘기를 했지만 얘기내내 우린 서로 토라졌고 또 그렇게 달래주며 웃어가며 시간을 채워나갔다.
무슨조화인지 그녀는 내애인도 아니었고 성적매력을 뿜어내는 그런여자도 아니었건만 굶주린 탓이었을까 자꾸만 내의지와 상관없이 나의 남성은 자주 내게 아는척을 해왔고 제법 쌀쌀한 날씨임에도 에어컨까지 켜져있는 실내에서 여러번 땀을 닦아내야하는 곤역을 치뤄야 했다.
서로의 전화가 연달아 왔고, 서로 눈치봐가며 그렇게 서둘러 끊고 나자 어색함이 어느새 우리자리에 찾아와 있었다.
" 누구에요? 집이에요?"
" 네... 지훈씨는요?"
" 친구들이네요. 모임한다는것을 깜빡했네요."
" 네...가셔야하쟎아요?"
" 이미 늦었는걸요. 자기들끼리 다 먹었겠죠 뭐. 사실 알았는데...님만나려고요..하하.."
가볍지만 너무나 환하게 웃으면서 날 곁눈질하는 그녀...
" 근데, 진짜 이름 안가르쳐 줄거에요?"
그녀는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으면서 계속 날 놀렸고, 궁금해 하는 날 재밌어하면서 피하는데 정말 화가났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내여자로 만들고 싶었다. 그녀의 모든것을 알고싶고 갖고 싶었다. 함께이고 싶었다.
용기를 내어서 진하게 한번 화를 내보자 하고 연기를 시작한지 채 5분도 되지 않았을때 그녀가 서둘러서 말했다.
" 진희..."
" 진짜?"
"....아니"
" 아...뭐에요? 정말..그만두죠"
" 후후후 진희 맞아요.."
" 성은요? 나는 신지훈.."
" 맞춰봐요. 숙제에요."
" 김진희, 이진희, 박진희?"
" 힌트줄께요. 좀 특이한성인데..."
" 특이하다...황진희? 이거네...딱이네. 맞죠?"
" 하하하...아니에요."
" 한진희? 함진희, 현진희, 공진희, 엄진희, 또 채진희..."
연신 고개만 흔들어댈뿐 말도 제대로 잇지못하고 웃기만 했다. 그모습에 그만 화가나서 그만두기로 했다.
시계를 자주 확인하는 그녀를 보내줘야 겠다고 생각하고 자리를 접고 나왔는데 비는 추적추적내리고 있었고, 9시를 향하고 있는 시계를 보고는 아직은 괜찮겠지 싶은 맘에 근처여관도 많았지만 그쪽으로 억지로라도 가고 싶었지만, DVD방을 가보자고 10분은 조른후에야 엘리베이터를 탔다.
좁은 공간에서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재밌게 웃어보이는 그녀를 데리고 무얼 할수 있을까 하면서도 깊은곳에 숨어있던 또다른 나의 남성은 아마도 쾌재를 부르면서 얼굴을 내밀고 있는듯 했다. 염치없게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