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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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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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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주벽6-1 (기다림)


BY thumbh 2003-06-30

장마가 시작되었다고는 하나 비오는 날이 그리 많지 않았고 현장도 쉴새 없이 바빴고, 그런이유로 어머니가 일주일쯤 계셨다. 

 회식을 할 명분이 없기도 했지만, 노가다판이 그렇듯이 술먹을 기회는 많이 있었다.

하지만 술을 즐기지 않은 나였기에 어머니 핑계삼아 이른귀가를 일주일넘게 하다보니 왠지 술자리를 하는것이 귀찮아졌다.

 그리고 그때 이후, 아파트에서도 채팅사이트에서도 그녀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궁금하면서도 괘씸했고, 막연하게 기다려지는 얄미운 그녀였다.

그냥 그렇게 좋은얘기 듣고 왔다셈 치며 잊었다가도 몰래 도망가버린 처사에 고개흔들어졌고, 그러면서도 다시 한번은 꼭 보고 싶은 맘이 들었다.

 나는 그녀를 친구로 등록해 놓은 상태로 그렇게 며칠을 기다렸다.

그녀의 별명을 기억하고 있는 나는 그녀의 접속상태를 늘 확인했고, 들어오기를 고대하던 중, 접속알림 메세지가 떴다.

 그녀가 자신의 팬들중, 그러니까 자신을 친구로 등록해 놓은 사람들중 내가 접속한 상태여서 쪽지를 보냈다고 했으니 오늘도 잘하면 쪽지를 보내지 싶었다.

 게임을 하는둥 마는둥 하면서 한시간정도를 기다려 보아도 소식이 없어 보았더니 이미 나가고 없었고, 쪽지가 와있긴 했다. 게임중이라 깔려버렸나 보다.

 <일전엔 죄송했어요. 인사도 없이 왔네요...>

''참으로 간단한 사과군''

 하긴 그리 사과받을만큼 용서해줄만큼 죄를 지은것은 아니지만 이런 사과쪽지를 받고 나니 울화가 치미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도대체 뭘 기다렸던거고, 뭘 궁금해했었단 말인지......말이라도 해볼껄 하며 후회하고 있었나? 당신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이렇게 만난것이 우연은 아닌것 같다라고 말한번 붙여보지 못한것을 후회하고 있는걸까?

 맥주캔하나를 단숨에 들이키고 담배를 물었다.

커피메이커를 하나샀다. 물끓이고 녹이는 과정이 귀찮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원두커피를 내려먹을 생각역시 해본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난일요일에 할인마트에 갔다가 홍보도우미의 그럴싸한 광고멘트에 넘어가 원두를 사고나자 이게 없는것이었다. 

 작은걸로 하나 장만해서 방에두고 아침 저녁으로 내려먹으니 방에서 나던 찌든냄새도 가셔지고 여러가지로 좋았다.

 창밖에는 추적추적 바람한점없이 비가 수직으로 내리고 있었다. 늦은저녁부터 내린비는 한낮의 열기를 재우고 조용히 먼지와 하나되어 땅속으로 숨어들면서, 밤공기를 상쾌하고 투명하게 만드는 중이다.

 이렇듯 비가 모든세상을 덮은후의 밤의 냄새는 맑다. 커피와 담배와 함께라면 아찔하다.

 학생때 얼핏 이런류의 대화를 했었던 적이 있었다. 나더러 B형 티낸다고 하던 누나가 생각난다. B형이 감상적인데가 있나보다. 보편적으로......

 

친구와 함께 영화를 보고 여자친구와 만나는 자리에 나를 데리고 나갔다.

거기서 여자를 소개받았고, 그녀와 만난지도 사나흘 되었나보다.

서로 바쁜터라 전화통화는 하지 못하고 문자로 일과를 묻곤 하지만, 별다른 느낌이 통하지 않는것 같아 내쪽에서 뚱해하고 있는 상태였다.

 일상에 바쁘게 젖어들면서  내기억속에서 그녀의 그림자는 서서히 지워지고 있었고, 그후에는 다행히도 비가 내리지 않고있다. 쪽지를 받은날 이후에는.

 

 형내외가 내려와서 휴일을 함께 보내고 배웅하고 들어온 나는 습관처럼 컴퓨터를 켜고 커피를 준비하고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마우스를 잡는데, 그녀가 대화신청을 하는것이었다.

 은빌, 그녀가 말이다. 갈팡질팡하면서 망설일이유가 뭐있겠어 하는맘으로 응해주었다.

 그녀는 쪽지를 받았냐고 물었고, 다시한번 사과를 한다는 말과 날씨얘기 그리고 무척이나 즐거운 듯 기분이 좋아보였다. 그러다가 내게 만나자는 얘길 또 해왔다.

 그날 저녁처럼 일방적이었고, 시간역시 12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나역시 뭐가 그리 급했는지 바로 출발하겠노라고, 15분후에 도착할 수 있다고 얘기하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작업복이 아닌 외출복으로 얼마전에 어머니가 사주시고 가신 새옷을 꺼내입으며 이따보자는 말을 마지막으로 서둘러 컴퓨터도 꺼버렸다. 그녀의 대답은 듣지도 아니, 보지도 않은채......시동을 걸고 초조한 맘에 담배를 입에물고 그리고 불을 붙였더니 필터를 오래물고 있었던 탓에 담배가 빨리지가 않는다. 무슨생각을 하고있는지.

 그녀와 만났던 가로등이 보인다. 하지만 대형트럭이 주차되어있어서 길가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나왔겠지? 불안한 맘이 들었지만 내가 이토록 원하고 있으니 나왔으리라.

 아니 분명 따져야겠고, 나도 많은 얘기를 해야겠다. 오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