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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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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주벽5-4 (그와..그녀는)


BY thumbh 2003-06-26

어떤속셈일까? 이여자......쳇을 여러번 해보았지만, 먼저 불러내는 여자는 첨이었다.

그래서 더 궁금하고 더 애가 달았다. 아무래도 밤깊은시간에 술까지 먹고 불러내는 것으로 보아 별다른 이유있겠냐 싶은 맘에 몸이 달아올랐다.

 오늘밤에 내가 이곳 항구도시의 밤의 첫역사를 장식해 나간단 말이지?..흐흐흐..

별별 생각이 다들었다. 그런 중에 그녀가 말하던 T자 가로등이 멀리서 보였고, 저들 중에 하나에서 그녀가 기다리고 있으리라......

 아마도 내생각이긴 하지만, 먼저 만나자고 당당히 말할수 있는것이 박색은 아닌듯 싶다. 좀생기지 않고서야 어찌 여자가 먼저 만나자고 하겠냐 하며 미지의 그녀의 인물에 대해 안심하고 싶은 내맘이 그렇게 부추겼다. 그래 그럴거야......

 드디어 10미터앞...하지만 가로등 밑에는 휭하니 빈벤치만 불빛아래 있었고, 거기를 지나쳐한참을 달려보았지만 다른가로등 어디에도 여자의 그림자는 없었다.

 속았구나 싶은맘에 일주도로를 한바퀴 돌고 들어가자 하면서 담배에 불을 당기는데, 작은 아주 작게 검은 그림자가 밝은 벤치에 나타났다.

 신호등 아래서 유턴하여 돌아가보았다. 여기저기 살피고 있는 폼이 약속한 여자인듯 보였고, 어쩔수 없이 지나친후 그자리로 돌아가보니 그녀는 또 없었다. 좀전까지 보이던 여자의 흔적이 없어 아쉬운 맘에 주차하고 내렸다.

  벤치마다 뿌려지고 있는 가로등은 작은 무대를 여러개 만들고 있었고 어디에도 주인공은 없었으며 관객역시 없고 쓸쓸한 공원만 무대로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내차에서는 줄곧 배경음악만 흘러 나올뿐이었다. 내가 빈거리의 주인공이었고......

한참을 머뭇거리다 운전석으로 돌아서 문을 열려는 순간, 작은그림자 하나가 다가오더니 순식간에 조수석쪽에서 내게 말을 붙였다.

 " 저기...전데요"

 담배에 불을 붙이려다 고개를 돌려 본 순간, 흠칫하며 소리라도 내지를뻔 했다.

어디에도 없었던 사람의 흔적에 놀랬던 것도 있었지만, 또 내가 본 그녀는 한달전쯤 보았던 바로 며칠전에도 늘 내주위에서 내게 존재를 알리던 그녀였다.

 그모습 그대로의 치마츄리닝이었다.

 놀란 나머지 아무런 대꾸도 못한채 담배에 불을 붙이고, 빤히 그녀를 내려보았다.

희미하게 그녀는 웃었고, 내게 어색하게 대답을 바라는 눈빛으로 한번 바라보았을 뿐 다른 말은 없었다. 그리고 숨을 깊게 들이쉬는 듯 멀리 지나가는 차만 눈을 크게 뜬채 건너보고 있었다.

 그때서야 정신이 수습된 나는 아무런 말도 못한채 빨아보지도 못한 담배를 서둘러 끄고 차에 탔고, 탄후 그녀의 옷자락에 들릴까 말까 하는 목소리로 뭔가 말을 했다.

 몇번을 크게 얘기한다고 했지만 그녀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고, 그제서야 나는 차에서 내린후 말로 했는지 몸짓으로 했는지 모를 신호를 그녀에게 했다.

 내차에 그문을 열고 타라고......

 그녀는 아무말 없이 탔고, 그리고 내내 소리없이 웃으며 나를 보았다.

 나는 아무말 없이 또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고, 괜한 볼륨만 높였다.

 말없는 나를 그녀역시 한참을 보았고 나와 눈이 마주치기를 기다렸던 것 처럼 마주치자 어색하게 웃으며 아니 어색하지만 환하게 웃어주며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내리기를 재촉해왔고, 들켰을지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느긋한척하며 천천히 담배불을 끄고 차근히 뒷자리에 있었던 손가방을 챙겨들고 그녀보다 훨씬 천천히 그녀가 한참이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음을 느끼며 나도 따라 내렸다.

 " 가요? 오뎅먹으러......"

 "어디로?"

 고갯짓으로 가르킨곳은 집앞상가에 흔하게 있는 꼬치구이 호프집이었고, 저런곳에서 오뎅이 팔까 싶었지만 이미 그녀가 길을 건너고 있던 터라 말도 붙이지 못한채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정말 그녀는 어묵을 주문하였고, 술을 하겠냐는 질문을 먼저한 후 생맥주 두잔을 시켰다.

그때까지 아무말 없이 그녀행동을 가만 바라보고만 있던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아주 작게 싱긋 웃어보였다.

 " 어떻게 둘다 츄리닝을 입고 나왔네요? 매너없게... "

 그러고보니 서둘러 나오느라 잠바는 챙겨입고 나왔지만 남자옷이 윗옷을 잠바로 입었지만 하복이 츄리닝이니 별다르게 체육복으로 밖에 보이질 않은것이다.

 그녀는 내게 많은 얘기를 해주었다. 지갑 여기저기서 나오는 가족사진과 아들사진 그리고 단란한게 찍은 부부사진......

 충분히 기분이 상할수도 있었지만, 무슨 의무감이라도 있는양 열심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녀의 모든얘기들을 들어주었다. 그러던 중 그녀가 벌써 몇분이 지났네라며 삐죽였고 맥주를 반잔쯤 들이켰다. 그녀가 얘기하는 동안 아무얘기도 할 수 없었고, 아니 딱히 할 얘기도 낄얘기도 아니였을 뿐더러 그녀도 내가 얘기하는걸 반기지 않을 것 같았다.

 참으로 많은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공허할 뿐이었다. 그녀의 모든 얘기들이 빈울림 같았다.

내느낌이었으리라. 그녀는 사랑을 얘기했고 행복을 자랑했으며 미래를 내게 선보여주었다.

 불러냈을때부터 지금까지 내내 공주인양 모든것을 주도하고 혼자 얘기하고 어묵만 열심히 먹던 그녀가 대뜸

 " 어~1시가 넘었네? 우리 만난지 한시간 됬는데요?"

 무슨의민지 또 무슨말이 나올지 사뭇 기대하면서 그녀 얼굴을 들여다 보고 있는 내게 서슴없이 말했다.

 " 그만 나가죠."

 서둘러 소지품을 챙긴후 계산을 마치고 화장실을 다녀왔다. 그리고 호프집 밖으로 나와보자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어디에도 없었다. 길건너는 8차선으로 차들이 빈번히 다니지는 않지만 그냥 건너기에는 매우 위험한 도로이고, 육교로 건너기에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아 보일듯도 싶은데 어디에도 그녀는 없었다.

 늘 그랬듯이 어디에도 그녀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