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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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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주벽3-1(주접)


BY thumbh 2003-05-30

사흘간 계속 되는 비로 꼼짝도 하지 않은채 이틀을 집에서만 보냈다.
어둠침침한 집안에서는 왠지 곰팡내가 나는듯 했다. 맥주를 한잔하고 싶다는 생각을 오전부터 계속하면서 컴퓨터를 켰다.
메일을 확인하고 준비하고 있는 시험에 대한 자료도 받고, 인쇄해야 할 것들을 점검해보고....
비소리와 컴퓨터 기계음만이 날뿐, 내집은 너무나 조용하다.
조용하고 쓸쓸한 내집의 내눈앞에서 펼쳐지는 컴퓨터 세상은 요란하고 화려하기 그지없다.

밤깊은 홍등가의 네온사인처럼 현란한 색채와 넘실거리는 불빛들이 눈앞을 어지럽게 만든다. 여기저기서 갖은 아양으로 유혹하는 배너광고의 몸짓에 이끌려 몇군데를 둘러보고있는 내주위를 어느새 어둠이 감고있었다.

시간은 벌써 8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잔잔하면서도 일정하게 두드려대는 빗소리가 나의 청각의 감흥을 일깨운다. 일제히 감각들이 살아나는것 같았다. 입맛을 다셔 보았다.
단내가 나듯 텁텁한게 시원한 맥주를 한잔했음 좋겠구나싶었다.
반나절 이상 정신을 뺏기고 있던탓에 배고픔도, 고단함도 잊고 있었다. 어깨가 뻣뻣한게 좀 누워야지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저녁마저 걸르면 안되겠다 싶어 먹을것을 먼저 찾기로 했다.
빗소리가 제법 요란해진다. 비로인한 한기까지 더해져서 내몸은 덜덜 떨리기까지 한다.
이쯤에서 재워야겠다 생각하고 재운다. 하루종일 지쳤던지 웅웅~~요란한 소리를 내며 컴퓨터가 잠이든다.


잠이 덜깼는지 자꾸만 접속이 되질 않는다.
몇번은 재부팅하고 접속시도해보아도 재시도라는 메세지만 계속 나오고 있었다. 술발만 더 받게 만들고 있다.
일어나란 말이야, 깨어나봐, 빨리....보여줘....응?
접속되었다. 쪽지터진다. 비와서..할일들 없어서....
나이 30
직업 회사원.......날씨얘기부터 시작해서 몇차례오간 쪽지로 봐서 말이 잘통할 것 같다는 생각에 대화신청을 받는다.
<어디세요?>
<집이에요..>
<ㅎㅎㅎ> <전 PC방인데...뭐하셨어요?>
<맥주한잔 하고있어요>
<맛있겠다>
<같이 마셔요.> 맥주잔 이미지를 띄워보냈다.
<재밌는 분이시네요. ㅎㅎㅎ>
<그런가요? 전 슬픈데요..>
<속상한 일 있으셨나봐요.>
<딱히...뭐...그런건 아니구요>
<비오니까..우울하신건가보네요>
<.....>
<랑은요?>
<네?>
<신랑이요..남편..아직 안들어오셨나봐요>
<그러게요> 길게 말하기 뭣해서 그냥 나오는데로 답했다.
<그래서..쓸쓸하신거군요?>
<아니에요>
<그러지말고...저기 ..우리 만날까요?>
<.....>
<술같이 마셔요..우리..저도 한잔하고 싶었던 참인데..>
<.....>
<안주는 먹고 있나요?>
<그럼요..땅콩도 있고..소세지랑..>
<소세지..좋아하세요?>
<네...>
<ㅎㅎㅎㅎ>
<왜그러죠?> 물으면서..혹시 하는생각을 해보았지만, 역시 아는체 할순 없는 노릇이었다. 괜한 맥주만 연거푸 두어잔 마셨다.
비도 오는데다 취기마저 오르니 오한에 졸음까지 겹쳐와 눈꺼풀도 무겁고 손가락에도 힘이 죄 빠져버리는 것 같았다. 몇번이나 잔을 떨어뜨릴뻔 했다. 오늘은 이쯤에서 그만두고 자야겠다.
<그럼이만...>
<말씀도 없으시더니...왜 갑자기..> <제가 실수라도 한겁니까?>
<아니에요..자야겠어서...즐거웠어요>
억지로 깨워놓고 벌써 자야되는거냐고 그르렁그르렁 소리내며 눈을 감는 모니터를 보고 가여운 생각에 네모난 얼굴한번 쓰다듬어 주었다. 비틀거리며 짚었는지도 모를일이다.
피시~~피슈우욱~~조용히 눈을 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