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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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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기행 기사를 맡고


BY 아지매 2003-11-02

토요일, 편집회의가 있는 날

두려움과 설레임으로 신문사 문을 열고 들어섰다. 여전히 자욱한 담배 연기가 그녀를 반겼다.

담배 연기에 찌든 퀘퀘한 냄새가 그녀의 미간을 찌푸리게 하였지만 새로이 시작할 일에 대한 호기심으로 역겨움을 꾸욱 누른 채 편집회의에 열을 올리고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팀장이그녀를 반갑게  맞았다.

 "아, 오셧군요. 이번에 새로 들어온 리포터 000십니다. 앞으로 여러분과 함께 일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협조바랍니다."

 팀장의 소개가 끝나고 나자 그들은 다시금 열띤 토론에 들어갔다.

 편집장인듯한 남자 기자는 지난 주 신문을 펼쳐놓고 기사의 문제점과 시정해야 할 점들을 일일이 지적하였다. 그러나 오늘 처음 들어온 그녀로선 무얼 뜻하는지 알수 없어  편집회의를 뒤로한 채 빙 둘러 앉은 기자와 리포터의 탐색에 들어갔다. 

 날카로운 눈매에 마치 아나운서를 연상하는 듯한 목소리로 조근조근 문제점을 지적하는 편집장의 냉철함, 바가지를 엎어 놓은 듯 불룩한 배를 실룩거리는 팀장의 후덕함.말끝마다 개00들 하는 욕이 태반인 두꺼운 검은 안경테의 비윗살, 까르름으로 실수를 모면하려는 한 미모하는 40대 초반의 여자 리포터의 능청스러움, 나름대로 주관을 갖고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긴생머리의 30대 초반의 리포터.......

 모두 그녀의 망막 레이저에 걸려 귓전을 울리는 편집장의 목소리의 울림 따라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참 보기 좋았다. 무언가 열심히 한다는 것이..

 '나도 저들처럼 자신만만하게 나의 생각을 피력해 본 적이 있을까.'

  문득 이런 생각에 씁스런 미소를 지으며 열띤 토론을 하는 그들을 부러운 듯 바라보았다.

   자욱한 담배연기 속에서의 열띤 편집회의는 두 시간이 지나서야 끝이 났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마침 신문사에서 특집으로 나갈 맛기행 취재가 주어졌다.

  편집장은 냉철한 생김새와는 다르게 맛기행의 경우 자신이 느끼고 경험한 맛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므로 식당을 방문하여 느낀대로 쓰면 된다는 위안의 말까지 해주었다.

  이튿날 처음 취재한다는 설레임으로 팀장이 추천해 중 한정식 대화정을 찾았다.

 40대 초반의 여자 주인이 별로 내세울 것이 없는데 맛기행까지 나오게 되어 쑥스럽다며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내실로 안내했다.

 매,난,국,죽 사군자가 그려진 나직한 병풍이 둘려져 있고 긴 식탁이 여러개 놓여30-40명을 충족하고도 남을 것 같았다.

 이런 내실이 장미, 난초, 매화라는 이름으로 세 방이 더 있어 많은 손님이 와도 걱정이 없을 정도인데도 송화차를 내온 종업원의 말을 빌린다면 저녁 시간 때에는 예약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손님이 많다고 한다.

  그녀는 송화차의 은은한 향을 음미하며 취재에 돌입했다.

 "송화차가 참 맛있네요. 은은한 송화의 향기가 혀 끝을 맴돌다 가는게 다시 이 집을 찾게 될 것 같은데. 이 외에도 대화정에서 권하고 싶은 별미는 무엇인지요."

"손님들 대부분이 대통밥에 된장찌개를 맛보고 칭찬을 많이해요. 쫀득한 찹살과 밤,대추,콩,현미 등 곡이 들어간 대통밥은 맛을 넘어 건강에도 좋아요. 또 두부, 청량고추, 조개, 호박, 버섯이 재래 된장과 어우러진 된장 찌개는 마치 잊혀진 어머니의 손맛이라며 즐겨먹지요. 이 외에도 토하젖, 전어밤젖은 싸 달라고 할 정도지요. 특히 이런 밑 반찬은 손수 담궈 저희 지하 저장고에서 2년 이상 삭힌 것이라 아무도 흉내내지 못하지요."

 내세울 것이 없다던 여주인은 처음과 달리 음식 자랑에 열을 올려 그녀는 잠시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저도 큰 며느리로 김치며. 일반 음식은 손수하는 편인데 젖갈이나 장류는 정말 어려워 어리굴젖 외에는 거의 사 먹는 편이지요. 이런 어려운 밑반찬을 손수하신다니 부럽군요. 이렇듯 손맛이 담긴 음식은 누구로부터 전수받았는지요."

그녀의 질문에 여주인은 눈까지 가늘어지게 미소지으며 방 한가운데 걸린 할머니의 사진을 가리켰다. 주름이 가득하지만 인자해보이시는 그런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여주인은 종손 며느리로 늘 손에 물 마를리 없던 어머니를 보며  어머니처럼 살지 않을 거라 다짐했단다.그래서 늘 편한 것 쉬운 것만을 고집하여 인스턴트 음식에 맛들어  살았는데 마흔을 넘기고 나서부터 이상하리만치 짠 젖갈과 구수한 된장찌개가 생각나고 인스턴트 음식이 싫어지더란는 것. 그래서 처음엔 어머니가 담아논 것을 가져다 먹었는데 차츰 연로하신 어머니의 손을 바랄 수가 없어 어머니께 비법을 배워 지금에 이르게 된것이란다. 한정식 식당도 가끔놀러오는 선배가 밑반찬을 먹어본 후 별미라며 식당을 운영해보라는 권유에 시작하였는데 이렇듯 2-3년 사이에 번창할 줄은 몰랐다고 한다. 앞으로 5층 빌딩을 지어 1-2층은 김치,젖갈, 밑반찬 등 우리 음식을 판매하고 나머지 층은 한정식 식당을 경영하는 한정식 타운 운영의 포부를 비쳤다.

   그녀는  몇가지의 자잘한 인터뷰를 더 한 뒤 대표 음식 및 외부 촬영으로 설레이던 한정식 대화정의 첫 취재를 마쳤다.

 처음하는 취재였는데도 이상하게 편한하였다.그녀는 아마 같은 나이의 여자 주인이어서 그런 것이라 생각하며 한정식  대화정 주인의  당찬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어머니의 인고의 세월을 새롭게 인정하고 그 맛을 익혀 세인들의 잊혀진  맛을 전달해 줌을 넘어 자신의 특별 사업으로까지 이끌어 가는 신세대 여성의 힘이 느껴졌다.

  집에 도착한 그녀는 대화정 여주인과의 인터뷰를 기틀로 원고지 3장 정도의 기사를 써 편집장의 이메일로 보낸 뒤 잠시 눈을 감으며 생각에 잠겼다.

  '내 처음 기사를 읽을 편집장은 날 어떤 여성으로 평가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