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한살을 더 먹어도 바뀐 것은 별로 없었다.
동네에 말썽꾸러기가 한명 더 늘었다는 걸 빼놓곤 ...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옆집 조카뻘 아이가 한살을
더 먹어 이젠 제법 소꿉놀이 상대가 되어 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민수야, 맘마 먹어"
"네-에, 엄마"
네살 아이치곤 말이 빠른편이 아니어서 조금 긴 대화는
나눌수가 없어서 그나마 대충 알아듣고 해석해야 했다.
하지만 없느니만 할까?
아이는 아빠가 되었다, 아기가 되었다 일인 다역을
해야 했지만 서로 놀이 상대가 없다보니 꼬맹이 고모의
맡겨주는 역할에 만족해야 했다.
그런데 두아이는 놀이상대가 생겨 좋을지 모르나 양쪽집
어른들은 골치를 앓아야 했다.
혼자 놀며 하던 말썽꾸러기 짓이 하나 더 합쳐 놓으니
자연 커 질수 밖에 없었다.
아궁이에 불기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라치면, 주변에
놓여 있던 불쏘시개들을 몰아 넣기 일쑤요, 개울에서
잡아온 가재며, 송사리며, 손에 잡히는 대로 던져넣기
예사이고, 마루밑 섬돌은 언제나 흙장난에 물기가 가실날이
없었다.
갈수록 더해가는 말썽으로 두아이의 눈에선 눈물 마를 날이
없고, 부지깽이로 얻어 맞아 몸이며 옷은 검뎅이가 무늬를
이루었다.
군인간 삼촌이 얘기 했던가?
잠을 자도, 밥을 먹어도, 응가를 해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고 했던가 ...
맞고 혼나고 소리를 들어도 두 말썽꾸러기는 날만 밝으면
발걸음 닫는 거리는 모두 헤집고 다녔다.
큰아이들이 캐다 말고 떠나간 자리에 손가락 굵기의 칡덩쿨을
욕심내고, 곶간 옆 창고를 뒤지다 호미가 눈에 들어오자
그걸 들고 냅다 뛰어 흙범벅이 되어 한참 후에야 얼마만큼의
길이를 획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대로 두고 먹기엔 너무 길어 한아이는 앞자락을
한아이는 뒷자락을 잡고 들며, 끌며 돌아오니 할머니는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질 않고, 할아버진 어린 손녀딸이
제나름대로 다치지 않고 무언가 해냈다는 듯 대단한 표정으로
흙범벅이 된 칡덩쿨을 꼭 끌어안고 있는 모습에 우습기도
대견하기도 했다.
이렇듯 할아버지와 손녀의 사랑이 커 갈수록 할머니는 손녀가
얄밉기만 했다.
무뚝뚝한 아들과의 사이도 별 정이 없건만, 며느리 또한
그러하니, 그나마 손주라도 보면 정이 좀 생길까 했는데
미운 것이 미웃짓을 하더라고, 3년이 넘어서야 겨우 아이가
들어섰는데 낳은 것이 초애였다.
늦게 들어섰으니 아들손주라도 얻게 되면 없는 정이라도
만들어 볼까 하였더니, 그것 또한 뜻대로 안되었다.
그래도 먹고 살만한 들판에서 신랑 하나 보고 산골로 들어온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하루 하루 살기 힘겨웠다.
물설고 낯설은 곳으로 시집이라고 왔는데, 신랑은 남의 일을
해주러 다니느라 사흘 걸러 한번이나 얼굴을 마주하고,
날마다 마주하는 시어머니는 따뜻한 말한마디, 웃는 표정을
한번 볼 수 없으니, 나름대로 해보지도 않았던 집안일까지
온몸이 파김치가 되어도 누구 하나 원정할 수가 없었다.
시어머님 성격을 잘아는 시아버지는 나름으로 감싸주려
애쓰시지만 그게 애만 쓴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떠오른 것이 분가였다.
하지만 그것도 마음뿐 입밖으로 내어 말을 할 만한 주변머리도
못되어 속앓이만 하여야 했다.
그런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오랫만에 집에 돌아왔던 남편이
또다시 시어머니와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고 선전포고를
했다.
그렇게 보기 싫어 하는 당신 어머니를 위해 자신이 안보이게
나가 살겠노라 분가를 선언했다.
시어머니로서는 생각도 못했던 일인지라 아들과의 쌓였던
미움이 며느리에게로 향했다.
"네년이 그랬지! 그렇게 다투었어도 한번도 이런일이 없었다.
네가 꼬드긴게 아니면 저놈이 저럴리가 없다...아-이-고,
저놈이 지 각시에게 미쳐서 부모도 버릴라칸다. 아-이-고"
집안은 온통 벌집을 쑤신듯 시끄러워졌고, 시아버지는 아들을
따로 불러 나무라며, 설마 하면서도 정말 며늘아이가 시킨것은
아닐까 물어보았다.
"아님니다, 아버지도 아시잖아요. 초애어멈 그럴 사람도
못된다는 거, 워낙 착해 빠져서 제가 어머니 성격 잘 알고,
아버지가 잘 아는데, 얼마나 힘들까 물어봐도 괜찮다고만
합니다. 그런데 도저히 안되겠슴다. 어머니가 저나 초애어멈
얼굴만 못잡아 먹어 안달이다 아닙니까?"
"네가 그러는게 아니다. 아무리 네어미가 그렇다쳐도 자식인
네가 그러는게 아니다. 못 들은걸로 알테니 다시는 그런 소리
입밖에 내지 말어라!"
"죄송합니다, 아버지! 하지만 저도 이번엔 제뜻대로 해야겠습니다.
꼭 저만 위한것이 아니고, 어머니께도 그게 편할지 싶습니다."
아버지는 뜻을 굽히지 않는 아들에게 화가 나면서도 어쩌면
그게 나을지 싶다 생각이 들었다.
한바탕 집안에 회오리가 지나간 뒤 얼마안가 아버진 곧바로
자신의 뜻을 실행시켜 읍내에 방한칸을 마련하였고, 어린
초애는 할아버지의 뜻과 부모의 형편에 의해 산골에 남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