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어떤 한 여자의 60생을 얘기하려 한다.
먼저 빛바랜 사진첩을 수북히 쌓인 먼지를 훌훌 불어내고
한장 한장 넘겨본다.
빛바랜 흑백사진 속에 털쉐타에 털목두리를 두른 두눈이
동그란 평범한 아이가 앉아 있는 사진부터가 눈에 들어온다.
시골 장날 이 사진 하나를 찍기 위해 산골짜기 둘러진 길을
돌고 돌아 노인네는 지팡이 하나를 의지하고, 짐과 아이를
지게에 올려놓고 힘겹게 사진관을 찾았으리라---
물론 아이는 지금부터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 속 주인공인
지금은 흰머리가 희끗희끗 나기 시작한 여자이고, 노인네는
그녀를 끔찍히 위했던 그녀의 할아버지다.
남들은 손자도 아닌 손녀를 그리 위하는 노인네를 별나다
했지만 노인네로선 딱히 손주가 아니라도 자신의 피붙이라는
것과 어린것이 제부모와 떨어져 사는것이 안쓰럽고, 한편
사랑스러울 뿐이었다.
봄이 되면서 부터 주변산에는 먹거리가 어딜가도 흔했다.
진달래를 따 항아리에 담아 술을 부어 그 색과 맛을 즐겼으며,
지천에 널린 봄나물이 그 향기를 밥상에 실어 나르노라면
몇 안되는 쌀에 온통 보리뿐인 거무틔틔한 보리밥도 어린
밥쟁이라 하여도 머슴공기 반공기는 비운다 했다.
여름이면 그늘진 나무 그림자를 따라 개울물을 첨벙이노라면
들어내는 돌밑마다 가재란 놈이 웅크리고 있다 선잠 깬 표정으로
집게발을 곧추세우고 앙칼지게 덤볐다.
밑터진 소쿠리를 무기삼아 온 사방을 위아래로 휘젖고 다니노라면
해가 산밑으로 기울어진 줄도 모르고 굴뚝 연기를 보고서야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깡통에 담긴 것을 추워들고 냅다 밥짓는
부엌으로 달려가 마지막 몸을 불사르는 아궁이 속에 사납게
발을 곧추세운 가재놈을 훌훌 던져놓고 새암으로 달려가 미끈거리는
손발을 씻곤 하였다.
가을이면 가을만이 주는 풍성함에 무얼 먹어야 할지 몰라 할
정도로 기쁨에 겨운 목소리가 들녘에 퍼져나갔다.
겨울이라고 별나지 않았을까----
떠지지 않는 게슴츠레한 눈을 비비며 섬돌위에 놓인 신발속까지
점령한 수북한 하얀눈을 탁탁 털어내고 마당에 내려 서노라면
산골에서만 느낄수 있는 차가운 냉기가 온몸을 휘감곤 했다.
하지만 곶간 시렁에 차곡차곡 놓인 고구마며, 밤이며 겨울이라
해서 먹을 주접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