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볕도 잘 들지 않는 낡고 좁은 빌라 한구석에서 채 3개월이 안된 아이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눈에 익혀 두려는듯 샅샅이 보고 또 본다.
아무리 봐도 누굴 닮았는지 모르겠다. 내모습도 그의 모습도 없다. 아니 내가 아는 눈에 익은 누구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한겨울에도 꽤나 후덥지근하고, 시큼한 냄새로 가득했던 친정의 안방을 아이와 단둘이 차고 누웠을때 내복을 사들고 한참이나 들락이던 친척들은 저마다 자신들이 아는 사람들을 대며, 그네들을 닮았다고 한마디씩했다.
눈썹도 제대로 없고 늘상 잠만자는 쭈굴쭈굴한 그 아이가 대체 누굴 닮았는지 낳아놓은 나 조차도 모르겠는데, 알은체 하는 그들의 말은 이 딸아이가 자신들의 핏줄임이 틀림없고 나아가서 내 남편의 아이임이 틀림없음을 강하게 증명해주려는듯해 남편은 꽤나 속편히 좋아하는듯했다.
오늘 본 그 아이의 얼굴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이가 뱃속에 있을때 누군갈 미워하면 그 사람을 꼭 빼닮는다고 친정 엄마는 늘 '사람 함부로 미워하지 말아라. 너 그 사람 닮은 아이 낳고 싶니?' 하고 한숨을 쉬듯 말해왔다.
그 때 마다 난 "미워하는 사람, 족히 100명은 넘는데, 그럼 그 100명 얼굴이 다 있나? 아님 그중 가장 미워하는 사람 얼굴을 닮나?"하고 말도 안되는걸 믿는다고 엄마에게 퉁박을 주었다.
예전에 장마때면 천장에서 늘상 빗물이 새고 곰팡내가 가실때가 없었던 건넌방에 세들어 살던 새댁이 없는 살림에도 1년에 한번씩은 꼭 보일러공이었던 남편을 위해 굿을 하고 가까운 시댁에 가기 보다 먼 무당집을 더 자주 찾아다니며 집안 대소사를 의논하러 다녔다.
그때마다. "왜 젊은 년이 그렇게 점에 미쳐 사는지... " 늘 교양있고 남에게 싫은 소리 하기 싫어하며, 과학적이고 현대적인 것만 믿어 종교도 가지지 않는 그녀는 뒤에서 혼잣말을 했다.
그런 그녀가 내가 20살이 되어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그렇게 보이지 않는 힘에 매달리고 싶어했다.
그녀는 자주 꿈자리가 뒤숭숭했으며, 꿈에서 어떤 계시를 받는듯했다. '꿈자리가 뒤숭숭하니 요번에 엠티는 가지 마라. 뭔일이 날려나 보다' '꿈에서 니 죽은 할머니가 얼굴빛이 않 좋으시더라. 오늘은 일찍 들어와라.' 단호하지도 강하지도 않은 음성으로 늘 이렇게 내게 길고 귀찮은 줄을 매어 놓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줄은 내게 너무나도 약하고 느슨했다.
난 작은 읍내를 벗어나 그보다 큰 도시에서 말이 험한 아버지가 늘 지칭했던 그 "사내새끼"들을 만나는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아니 혼신의 힘을 쏟았다. 캠퍼스안 모든 남자들이 나처럼 모두들 "연애"에 대한 생각들만 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난 그들을 어떻게든 유혹하고 싶었다. 영화에서 본것처럼 소설속에서 보여졌던 여자들 처럼 그들을 만나고,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다음은 막연했다.
아무튼 그들에게서 알수 없고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아주 기분 좋은 느낌을 받아야만 했다. 그들은 그것을 해줄것이다. 끊임없이 날 붕 띄워줄 것이고 매일 밤,낮으로 내게 서프라이징 파티를 열어 줄 것이다.
난 너무나 흥분이 되어 밥도 넘어가지 않고, 물도 넘길수 없었다.
내 스스로 일으킨 열로 인해 몸무게는 39킬로로 줄고 길거리를 걷는것 자체도 너무 힘이 들었다. 혈관 하나하나 붉고 걸죽한 피가 아닌 휘발유 냄새가 나는 푸르고 투명한 액체가 흐르고 있는것 같았다.
눈은 알수 없는 열기로 늘 흔들렸고 거친숨을 내어 쉬느라 콧구멍은 늘 커져서 벌렁거렸다. 빨리 빨리 어떤 일인가가 벌어져야만 했다.
밋밋하고 심의 규정 까다로운 티비 방영 드라마 같은 일이나 예쁘기만 하고 늘 뻔한 착한 동화 같은 일 말고 화끈한 소설같은 영화같은 일이 말이다.
하지만 가끔 내게 "너 참 귀엽다."하는 남자 선배 외에는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무언가 벌어져야 할 일이 빠져 있었다.
일찌감치 스팀이 꺼진 냉랭한 시멘트 강의실 찬 플라스틱 의자위에서 훈장 만큼이나 늙어 버린 교수의 전공 수업을 열심히 듣는 시골 유학생들의 뒷통수를 보는게 하루의 반이었고, 나머지는 몰려다니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계집애들과 가끔 까페 한구석에서 카푸치노, 아이리쉬, 파르페 등등의 세련되려고 노력한 흔해 빠진 음료들을 홀짝이는 걸로 보냈다.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나갔다.
내 혈관속 냄새나는 휘발유는 알수 없는 불기를 원했다.
그게 몸을 흉하게 태우든 재만 남기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