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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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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회]


BY 프리 2003-06-09

-마흔다섯/


-45

상우는 정처없이 걷다가 문득 집생각이 났다. 왜 이럴 때 엄마랑 아빠 생각이 나는거지. 상우는 무작정 차를 타고 집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마당에서 빨래를 널고 계시던 엄마는 집앞에 서있는 상우를 보고 지나가는 사람이려니 하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곤 놀라서 바라보고 있었다

"상..상우 맞니?"

"엄마!"

"이녀석! 정말 맞구나 대체 이게 얼마만이니...."

"죄송해요. 바쁘단 핑계로 내려오지도 못하고..."

"어서와라 덥지. 들어가지 내 시원한거라도 만들어줄테니..."

오랜만에 상우는 엄마가 만들어주시는 시원한 냉콩국수를 먹기 시작했다. 집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한게 없는거 같았다.

"어...시원하다. 정말 엄마 요리솜씨는 쥑인단말에요. 맛있다."

"풋. 여전하구나! 혼자살다보면 아무래도 끼니도 못챙겨 먹지. 그래 밥은 먹고 다니는거냐?"

"그럼요 거기도 전기밥솥 다 있구요 요즘은 해먹기 싫음 햇반도 팔구 많이 파니깐 걱정마세요 굶진 않으니까. 또 회사에서 해결해도 되구요"

"그래. 어쨌든 굶지 않는다니 됐다. 바쁘더라도 꼭 챙겨먹도록해."

"네. 엄마!"

"무슨일 있구나. 뭐니 대체? 속시원히 말해봐."

"없어요."

"녀석. 아무리 오랜만에 봐도 엄마는 자식의 표정을 훤히 꿰는 법이야. 바로 그게 부모지. 넌 고민이 있어. 그렇지? 그래서 이렇게 내려온거구...무슨일이니?"

상우는 엄마의 통찰력에 혀를 내둘렀다. 엄마에게 이런 면이 있을줄이야...

"사실은...엄마. 저...회사 그만둘까해요."

"뭐?"

"왜요 솔직히 실망하셨나요. 아들이 사장이 아니라서?"

"그런게 아니란걸 잘 알쟎니. 무슨일이 있는거니?"

"엄마. 저 그리고...궁금한게 있어요.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엄마는 왜 아빠랑 결혼하신거죠. 그리고 아빠는 어떻게 미련없이 그자릴 버리고 오실수있었던 거에요? 그래서 지금 행복하세요 조금의 후회나 미련도 없으시구요?"

"녀석두..새삼스럽게 그런걸 묻긴...그래 쉽진 않았다. 그동안의 내 살았던 모든 것들을 버린다는거...부모님께도 죄송스러웠구...그것도 미래도 불확실한데 단지 사랑하날 믿고 그런다는게 쉽지 않은 선택이었어. 하지만 지금...후회하진 않아. 물론 많은걸 잃었지만 대신 너와..그리고 아빨 얻었으니까. 다 생각하기 나름인거 아니겠니...어떻게 보면 우리사는 모습이 조금 초라하고 부족할수있지만...난 이게 좋아...솔직히 네 아빠가 날 위해서 모든걸 버리고 왔을땐...미안했어. 이런데 적응한다는게 쉽지 않았을거야. 그런데도 니아빤 열심히 노력해주었어. 그게늘 고마워. 한편으론 미안하기도하고..."

"엄만 아직도 아빨 사랑하시는군요 진심으로..."

"그럼...이나이에 사랑 운운한다는것도 우습다만...아직도 사랑하고 있단다."

"고마워요 덕분에..많은 도움이 됐어요. 엄마 전 아빠랑 엄마 아들 맞나봐요."

"뭐?"

"전 두분을 닮은거같아요. 제가 어디에있든 무엇을 하든..그리고 어떤 선택과 결정을 내리던 엄마는 제편이 되주실거죠?"

"물론이지. 넌 내 아들인걸."

비로소 상우는 편안한 느낌을 얻었다.

"아,좋다. 진작에 내려올걸. 엄마도 제가오니 참 좋죠?"

"그래,좋다 이녀석아!"

상우는 엄마가 타주신 냉커피까지 느긋이 마시고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왜 갈려구?"

"네. 해결해야할 일이 있어서요."

"조금 더 있다 아빠보고 가지 않구서?"

"죄송해요. 조만간 꼭 내려올께요."

"그래, 그럼 어여 가봐라. 몸조심하고..."

"엄마두요."

아이처럼 상우는 엄마품에 안겨 엄마를 한번 꼭 안아드린 다음에야 엄마의 배웅을 받으며 차를 출발시켰다.




상우는 밖이 훤히 내다보이는 유리창이 있는 커피숍에 앉아 출입구를 계속 바라보았다 이제나 저제나...언제 그가 부른 사람이 올까싶어서 그는 눈을 떼지 못했다. 그가 지쳐 포기할때쯤...그가 기다리는 사람이 문을 밀고 들어서고 있었다.

"아..여기야!"

그가 손을 들자, 그녀가 서서히 그의 앞에 다가와 맞은편에 조용히 앉았다.

"무슨일이죠?"

쌀쌀맞은 음성. 그러나 상우는 그런 것은 개의치 않았다.

"아직도 화가 안풀린 모양이네. 그런거지?"

보라는 말이 없었다. 새침한 표정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뭐라도 마시지. 시원한게 좋을까? 냉커피는?"

"좋을대로요 그런데 불러낸 용건이 뭐죠?"

"누구보다 먼저...보라씨에게 해야할거 같아서...그래서 왔어. 난 이제 더 이상...나 자신을 속이고 싶지 않아졌으니까. 그런건 나나 보라씨에게도 별로 좋을게 없다고 생각해. 그래서 어렵게 결정한거요"

"무...무슨말이에요?"

이해가 안되는지 보라는 그의 말을 이해하려고 안간힘을 쓰고있었다. 상우는 조심스럽게 입을 떼기 시작했다.

"내말은..우리의 약혼을 이제 파기하자는거요"

"!!"

보라는 놀란게 틀림없었다. 믿을수없다는 듯이 그녀의 눈은 커다랗게 뜨여져 있었다.

"뭐...뭐라구요?"

"보라씨말이 맞아. 난 보라씰 사랑하고 있지 않아. 물론 결혼이 감정만으론 살수없다는거 잘 알아. 그치만..이건 아니야. 정말..아닌데 자꾸 이어간다는건...그리고 계속해간다는건 나도 그렇고 보라씨에게도 좋은게 못될거야. 서로 이쯤에서라도 빨리 돌아서 수습하는것이...더 좋겠단 결정이 섰어."

"상..상우씨 농담이죠. 그..그런 농담은 싫어요! 설마..설마..진..진심인가요?"

상우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역시 그의 표정에서 이젠 모든 것을 읽은 모양이었다.

"왜죠? 내가 어제...그랬기 때문인가요? 그럼 어떻게 하면 되겠어요? 내가 목련일 만나서 사과라도 할까요?"

상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자신의 심중을 정확히 읽지 못한거 같다.

"난...내가 가고싶은 길을 가고싶어. 미안하지만...보라씬 아니야. 거기엔 없으니까...미안하지만...나도 이젠 내 감정을 더 이상 어쩔수가 없어."

보라가 일어섰다. 그러더니 그를 향해서 마시라고 주었던 물을 얼굴에 쫙 뿌리곤 쏜살같이 커피숍을 빠져나갔다. 상우는 지금 즉시 그녀뒤를 쫓아 사과를 해야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앉아 손수건을 꺼내...얼굴과 옷에 튄 물들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이걸로 된건가. 그는 씁쓰레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다음날 아침.
상우는 회사로 가서 주변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예상했었지만 그 여파는 참으로 컸다. 할아버지는 쓰러지셨고, 보라네 부모님들의 반응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우는 일일이 대응하지도 않은채 묵묵히 사직서를 써가기 시작했다.

수많은 감정이 교차하고 있었다. 이곳에 처음 올때의 포부, 의욕들...그런데 지금 자신은 어찌보면 실패자였다. 하지만 미련은 없었다. 스스로가 선택한 실패이기에...

"팀장님. 정말이십니까? 회살 그만두신다는거."

"......................"

"거짓말이죠? 저는 이이상 정말 좋은 상사를 어디가서 찾을수 없을거같은데...안떠나심 안되나요 그냥 여기 쭈욱 계시면..."

"미안합니다. 건우씨. 그리고 여러분께도... 그렇게 됐어요. 또 좋은분이 오시겠지요. 지금처럼만 하신다면 새로오시는 분 역시 잘 대해주실것입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건우씨. 상사로서 제대로 할 일도 못해주고 떠나게 되어서 미안할 따름입니다."

"팀장님..."

"자자 여러분...동요하지 마시구. 일하세요. 지금은 업무중입니다. 저로인해서 안그래도 회사에 죄송한데 여러분까지 이러시면 제가 정말 얼굴을 못듭니다."

".............................."

상우는 자신을 향해 바라보는 직원들에게 미소를 보이곤 사장실로 향해 걸어갔다. 비서에게 사직서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상우군!"

보라의 아빠가 거기 와 계셨다. 상우는 그를 향해 인사를 하기위해서 고갤 숙였다. 그가 허리를 펴는순간 주먹이 그의 얼굴을 향해서 날라왔다.

"욱!"

"그렇게 널 믿었건만....날 실망시키다니..난 아들이상으로 널 대하고 아꼈어. 그런데...그런데 이런식으로 갚아? 못된놈! 어디 지켜보마, 니가 남에게 이렇게 못할짓을 하고 어디 얼마나 잘 사는지!"

그는 그말을 남기더니 뚜벅뚜벅 걸어가 버리고 말았다. 상우는 입술에서 느껴져오는 짭짜름한 피를 느꼈다. 그는 손을 들어 쓰윽 닦았다. 맞은건 아펐지만 충분히 보라아빠의 맘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그역시 정말 진심으로 그를 따랐었기에...죄송한 마음은 들지만 어쩔수가 없었다.

상우는 문을 열고 들어가 그를 보고 일어서는 비서를 향해 사직서를 내밀었다. 그것을 보고 그녀는 너무 놀라서 받는것도 잊은거 같았다. 그는 대신에 책상위에 그걸 올려둔채 자릴 빠져나왔다.

실직자. 무직자...이제 나는 직없이 없는 사람이 되는건가.

세상에 떠도는 이 말들을 듣긴했어도 막상 자신이 이런 신세가 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었다. 상우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정리한 물품들을 차에 실었다.

"상우씨..."

"무슨일입니까?"

"죄송해요 저때문에...그치만 그만두지 않으셔도 돼요. 제가 그만두겠습니다."

목련이 바로 곁에서 고개를 숙인채 힘겹게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상우는 그런 그녀를 돌려세웠다.

"잘들어요 목련씨. 아무리 협박이 오더라도 굴하면 안됩니다. 알겠어요? 자신이 결백하면...그리고 죄가 없으면 떠나는게 아니에요. 그럼 정말 사람들이 그렇게 아니까...결국 죄를 인정하는 거거든요. 버티세요 힘들고 어렵더라도...그러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오해는 풀어지고 진실은 밝혀지는거랍니다. 나는...강요가 아니라 순전히 나의 선택에 의해서 떠나는 겁니다. 알겠어요? 내가 가고싶은길은 이거니까...결코 후회나 미련같은게 없어요. 하지만 목련씬 아니쟎아요? 그리고 앞으로 대책도 안세우고 덥썩 그만두면 어쩔겁니까? 그만두더라도 뒷일은 계획하고 그만두세요 알겠어요 목련씬 똑똑한거 같은데..가만보면 여리고 그렇지 못해요. 그거 알아요?"

"상우씨..."

"뭡니까. 새출발하는 사람에게... 축하는 못해줄 망정...그 울음섞인 표정이라니..어휴끈적끈적해서 싫은데요..."

"미..미안합니다."

"목련씨 강해지세요. 혼자서도 우뚝 설수있도록. 그렇게 눈물이 많아선 이 힘든세상 헤쳐가기 힘들어집니다. 이제나는...더이상 목련씰 지켜줄수가 없어요 이제나는..아무 힘이 없어지니깐요. 이젠 스스로 지켜야해요! 그러니까 힘을 길러요."

"......................"

"목련씨....."

"네?"

"아...아닙니다. 잘지내요!"

그말을 남기곤 상우는 쏜살같이 차에 올랐다. 백밀러로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를 두고 온다는게 마음은 아펐지만 어쩔수 없었다. 상우는 한번더 그녀의 모습을 확인한곤 악세레이터를 밟기 시작했다. 점점...더 그녀와 사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점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