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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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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회]


BY 프리 2003-04-23

[내가 사랑한 그녀]

-제 28편

"상우야 맛있었지 그치. 여기 너무 괜챦다. 니가 있는곳에서도 그리 멀지 않고 우리 여기 종종 오자 응?"

보라의 애교어린 말을 들으며, 상우는 대답대신 보라가 먼저 목련이 이야길 꺼내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보라는 아무래도 그럴 마음이 없어보였다. 그녀는 내내 다른 화제들을 꺼내고 있었고, 게다가 웃고있는터라 거기에 대고 화를 낼수도 없었다.

난감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상우는 턱에 손을 괴고 보라를 바라보았다.
먼저 이야길 꺼내기도 그렇다고 자존심이 상해서 상우는 어찌해야좋을지 갈피를 못잡고 있었다.

"저, 보라야...아까 그 이야기 말인데..."

"그 이야기? 어떤얘기 니가 나한테 혹시 무슨말했니? 내기억으론 난 열심히 말했구, 넌 열심히 들은거 같은데 말이야"

'에잇, 안되겠다 솔직하게 말하는게 낫겠어!'

상우는 마음을 다잡은후 보라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따지고보면 일부로였지만 그동안 너무 목련이 소식을 몰랐었다. 의식적으로 그는 일부러 더 한국에 전화를 걸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보라의 말로 '혹시 목련에게 무슨일이...?'라는 생각이 그를 조금 조급하게 만들어 버리고 있었다. 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보다는 궁금증해결이 우선이었다.

"저, 목련이 말이야...너 나한테 무슨...상의한다고 하지 않았어?"

"에휴, 샌님. 그봐 관심없다더니 너도 할수없구나? 목련이한테 아직도 미련이 남은거니? 사실 뭐...별일은 그렇게 없어 용하씨랑도 잘지내는거 보고왔구...다만 한가지 걱정인 것은..."

"걱정..그게 뭐지? 그게 뭔데?"

"용하씨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던가봐. 약혼자가 있긴하지만 아직은 많이 힘든가보더라구. 그래서 조금 걱정이 되었을뿐이야."

"그...그래."

"누구는 참 행복하겠다. 너무 부럽네. 나도 누군가 날 그렇게 생각해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상우는 보라의 말이 사실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래도록 미뤄왔던 목련에 대한 기억이 가슴을 헤짚고 올라와 그의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만들어버렸다.

'그바보가...그 마음약한 바보가 얼마나 힘들까. 아마 표현도 못하고 울고있진 않은지 몰라.
내가 곁에 있었다면 조금이래도 그녀가 웃도록 신경써주었을텐데.
내성적인 성격탓에 친구도 잘 못사귀던 목련이...지금은 그래도 잘 살고 있을까'

상우가 그런 생각에 착잡해 졌다. 식사와 후식까지 마치고 보라를 배웅하고 나서도 내내 그의 마음은 그게 너무 걸렸다.

상우는 회사로 돌아와 자신의 데스크앞에 있는 전화기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할까 말까 몇 번의 망설임 끝에 그는 결국 감성의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띠리리릭.

몇 번의 신호음이 울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쉽사리 전화를 받는 사람은 없었다.
그냥 끊어버릴까 하는데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여보세요

"........"

-누구시죠? 어라, 장난 전화네. 맘도 심란해 죽겠는데 대체 누구람.

수화기를 통해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너무나 그리운사람의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듣는순간 상우는 가슴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올라와서 잠시 심호흡을 한 채 어떻게든 목소리를 가다듬어 말을 해보려고 노력했다.

"끊...끊지마, 목련아....나 상우다!"

-어...너...! 정말 상우...권상우맞니. 정말이구나 세상에! 얼마만이니. 그동안 잘지낸거야.

"그래, 나 상우맞다. 틀림없는...정말 오랜만이다. 난 잘지내고 있어."

- 그래도 그렇지 너...나뻤어. 정말 나쁜놈이야!!

뜬금없이 오랜만에 전화를 건 사람에게 나쁜놈이라니, 그런 그녀에게 화가 나기는커녕 그 목소리에 웃음이 나고 말아 버렸다. 여전하구나...그런 마음에 한편으론 안심이 한편으론 반가움이 그리고 또 한편으론 걱정이 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미안...미안해. 목련아. 별일은 없지?"

-별일, 참 일찍도 물어봐 준다. 무지무지 고맙다. 별일은...없어. 그리고 너, 바쁜건 알겠지만 너네엄마께도 좀 신경좀써. 아줌마 많이 너 보고싶어 하신단 말이야. 아들하나 달랑인데 나몰라라 하면 어쩌니...

"아!"

그제서야 상우는 울며 자신을 보내주던 엄마를 떠올렸다.

"울엄마는 잘 계시니? 아픈덴 없으시고?"

-참,내 왜 그걸 나한테 묻는거야 궁금하면 니가 전화해 보면 되지. 안그래?

"그래, 그럴게. 그리고 목련아...정말 별일은 없는거지?"

"상우야...아니...그래...별일은 없어. 그러니 걱정마. 너 몸 건강하고 그리고 무사히 하는일 잘하고 빨리 돌아오길 바래."

"고맙다. 끊어야겠네. 목련이도 잘있고...그리고 건강해!"

수화기를 이제 그만 내려놓아야 함을 안다. 그렇지만 왠지 상우는 금방 끊어버릴수가 없었다. 그는 잠시 수화기를 들고 가만히 있었다.

"상..상우야....혹시 끊었니?"

"아,아니...왜? 아직 끊지 않았어. 할말이 있으면 해."

"용하선배, 결혼해. 이번주 일요일인데...장소는...."

-콩당콩당.

상우는 더 이상 목련의 말을 들을수가 없었다. 그는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억지로 가다듬어 가까스로 말을 꺼냈다.

"미...미안해. 나 지금 좀 바뻐서...지금은 안될거 같다. 내가 다음에 다시 전화할게."

"어,그래? 그럼 할 수 없지 뭐.... 일하는 중인가보구나 그래 알았어. 잘지내고... 안녕!"

"음, 너두...안녕!"

-딸칵

전화가 끊겼다. 상우는 멍하니 수화기를 내려놓고 의자에 몸을 푹 파묻어 버렸다.
상우선배가 결혼한다고 그것도 이번주에...
목련의 말이 귓가를 뱅뱅 돌고 있었다.

상대를 알고싶지 않았다. 아니 더 솔직하자면 그사람이 목련이란 말을 듣게 될까봐 그는 두려워졌다. 그래서 얼른 못나게도 황급히 전화를 내려놓고 말아버린 것이다.

그것은 결국 그녀를 보내야하고, 그리고 영원히 다른 사람의 아내로 인정해야하는 걸테니까. 그것이 그를 너무 혹독하고 비참하게 만들고 있었다.

'제기랄!'

상우는 책상을 꽝소리가 날정도로 내려쳤다. 주먹이 욱씬욱씬하고 있었다. 오후내내 그는 그런 생각으로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말아버렸다.

'차라리 전화를 하지 말걸 그랬나봐. 그랬다면 몰랐을텐데...그랬다면 이렇게 괴로울일도 없었겠지.......'

참을수 없을만큼 그에게 고통이 엄습해오고 있었다. 상우는 일어서서 외투를 집어들곤 쏜살같이 사무실을 나와버렸다. 그곳에 있고싶지 않았다. 답답한 생각이 들자 그는 무언가 의지할수있는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결국 바를 찾아서 가고 있었다.


독한 술을 마셔도 왠지 취기가 오르지 않았다. 그것이 상우를 더 절망적으로 만들고 있었다. 상우는 핸드폰을 꺼내서 보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그는 그녀에게 올수있으면 이곳으로 오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보라가 반기듯이 정확히 십오분안에 가겠다는 말을 하자, 상우는 핸드폰을 꺼버렸다.

막상 그녀가 정확히 십오분전 바의 유리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그는 잠시 후회를 했다. 괜한짓을 한것만 같은 생각이 그를 괴롭혀 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상우야. 와우~! 무슨일이야. 세상에 이렇게나 독한술을 마시고..."

보라가 상우의 술병의 도수를 확인하더니 놀라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오늘은 그냥...취하고 싶다. 아무말 없이 마시면 안되는거니? 혼자보단 그래도 둘이낫을거같아서 너나 나나 솔로니까...그래서 불렀다."

"잘했어. 혼자 술마시는것도 조금은 청승스러워보여. 나랑 함께 마시자."

다행히 보라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상우는 내내 그녀가 물어오면 어떻게 말을해야하나 걱정이었다. 거짓말을 한다는건 정말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솔직히 이야기하기도 꺼려졌기 때문이다.

상우는 잔이 비기 무섭게 술을 달라고 하기 시작했다.

"상우야 왜그러는건데...묻지 말랬지만 그래도 이유나 좀 알자."

"보라야. 내맘이..너무괴로워 내가...힘들다. 용하선배, 결혼한다더라. 알고있었니? 이번주 일요일이라는거 같던데"

"너..너...그거 어떻게 알았어? 혹...혹시 너...목련이에게 전화한거니?"

"어, 그랬다. 했어...정말 오랜만에...목소릴 들었다. 그래서 알았지."

"그..그래서 결국 두사람이 결혼하는구나 그렇지, 맞구나!"

상우의 표정을 보면서 보라역시도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상우는 고개를 푹 숙였다.
아무리 마셔대도 자신의 마음보다 이 독한술도 결국 달콤한 맛일 뿐이었다.
그만큼 그의 상처가 깊게 쑤셔오고 있었던 것이다.

"술이나 마시자...취하고 싶다 그래야 잠들 수 있을거 같아."

"상우야. 왠만하면 말 않할려고 했는데, 안되겠어. 지금 너는 너무 많이 취했다구!"

"안취했어. 오늘은 정말 술이 취하지 않는 날인가봐. 난 너무 취하고 싶은데......술이 안취한단 말야...나 좀 취하게 해줘. 나좀..."

말과달리, 상우의 머리가 아래쪽을 향해 꼬꾸라지고 있었다. 그는 얼른 고개를 들어보려고 했으나, 마음과 달리 그래지지가 않았다. 게다가 맘한구석 그아까의 소리들이 그의 기운을 빼앗고 있었다.

'제길 될대로 되라지!'

상우는 모든걸 포기하고픈 심정이 되어 버렸다.